도시의 가치와 의미는 누가 만드는가? 사례1) 인덕원 489
보통은 건물주라는 말을 듣게 되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근본적인 물음보다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인지 좀 더 관심을 가진다. '저 사람은 어떻게 건물주가 되었을까? 원래 돈이 많아서 건물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투자해서 건물을 갖게 된 것일까? 건물 임대료로 얼마나 벌었을까? 건물은 몇 채나 소유하고 있을까?' 등 건물과 관련된 궁금증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또 건물주의 건물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그 쓰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떤 가치가 있는지보다는 '건물 가격은 얼마일까?' '몇 년을 가지고 있어야 차익이 생길까?' '매매가와 현 시세는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등의 경제적 가치로 접근한다.
건물주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소유한 건물이 경제적 가치를 넘어 어떤 사회적 가치와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지역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 심도 있게 고민하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특히 부동산을 소유함과 동시에 사유재산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또 건물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기에 수익성 이외의 다른 경우의 수를 생각해 내는 것도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계약기간에 따라 건물의 임차인과 임대료도 매번 달라지니 변수가 많다. 그러니 애초에 건물 자체를 잘 관리해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 가며 운영한다는 건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 다르게 접근해 건물을 임대하거나 운영하는 사례는 임대인이 경제적•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이거나, 정부 지원 정책으로 예산을 확보해 실험과 시도를 하거나, 남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 경우였다. 보통은 의미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여유도 없을뿐더러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그런 걸 왜 생각해야 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건물임대업자가 임대료로 수익을 창출하고 그것에 충실하게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서 '건물주'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보다는 돈이 먼저 보이고 두 눈과 귀가 번쩍 뜨이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만나왔던 대부분의 건물주가 그랬다. 부동산, 투자자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우연히 너무나도 당연한 건물주들의 상황, 생각에서 조금은 다른 생각과 다른 시도를 하는 사람, 영인님을 만나게 되었다. 현재 인덕원에 거주하고 있으며 아직은 부모님이 건물을 소유하고 있어서 건물주는 아니고 부모님 대신 건물 관리인의 위치에 있는데 건물을 운영하는 방식에 있어 부모님과 달랐다. 이 사람이 다르게 생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계기로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건물을 임대하고 운영하려 하는 것일까? 온갖 궁금증이 생겨나는 가운데 처음에는 '어떤 다른 생각', '어떤 차이'에 대해서만 생각하다가 '어떤 사람'인지가 궁금해졌다. 또 한편으로는 건물주는 아니지만 건물주의 자녀로 성장한 배경이나 환경, 조건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다른 방향성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100억, 1,000억의 경제적 가치를 가진 건물이 아니더라도 불로소득으로 삶을 이어간다는 점에서는 직장 다니며 월급을 받는 사람과는 시작점이 다르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경제 상황이 다른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서로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는 이상 아마도 간극을 좁히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꾸만 시선이 가고 그 이유를 알고 싶어지는 건 평소 이 사람의 가치관이나 삶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접해보았기 때문이다. 100% 이해할 순 없지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계기나 경험에 대해 들어본다면 현재 이 사람의 행보가 자연스럽게 연결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단순히 경제적 가치만이 아니라 임차인과의 관계, 지역과의 연계성 즉 '관계성'을 염두에 두어 임대 방식을 택한 이 사람의 선택에 관심이 생겼다.
그렇게 하나둘씩 쌓여가던 궁금증과 호기심이 발동되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는 건물에 관련된 질문 외에도 한 사람의 전반적인 삶을 들여다봐야 현재가 보일 것 같아서 삶에서 경험한 것들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다. 그리고 인스타그램 계정인 colorful.induckwon 에 건물과 연관된 기억과 건물을 손수 한 땀 한 땀 수리하면서 했던 고민, 지역 주민들과 함께했던 활동, 건물이 위치한 인덕원이라는 장소가 어떤 특성을 가진 곳인지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 있어 살펴보았다. 인터뷰와 기록을 통해 중점을 두었던 포인트는 세 가지였다. 첫 번째, 이 사람은 살면서 어떤 경험을 해왔는가? 두 번째, 그 경험이 건물을 관리하는 데 있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가? 세 번째, 삶의 경험과 건물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생각을 했는가? 이 세 가지가 서로 연결되어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 게 아니었을까? 인스타그램 기록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해 공유해 본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colorful.induckwon 에서 볼 수 있다.
"지금은 없어진, 일본 문부성 일본청년봉사협회가 운영한 V365 Asian Exchange Program에 지원했었거든요. 뽑혀서 도쿄에서 2주간의 연수를 받고 일본 전역의 활동지로 파견되어 10개월간 자원활동을 하는 거였어요. 그때는 자원활동이란 것 자체에 관심이 많아 더 알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마침 알게 된 정보에 무작정 신청했던 거예요. 저는 무카이 하라라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의 히토하작업소로 파견되었어요. 장애인 주간보호센터 같은 데에요. 주 5일 나인투식스로 직원과 똑같은 환경에서 일을 했죠. 장애인 센터에 여러 그룹이 있는데 가장 장애가 심한 이용자 그룹에서 일했어요. 대학 때 장애인 시설 방문 활동을 했어서 하는 일 자체는 오히려 수월했어요. 돌아보면 이때의 경험이 제가 지역을 일상의 기반으로 하게 되는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지역을 일상의 기반으로 하는 것에 영향을 준 것은 '교통수단과 라이프스타일과 관계'와 연결됨
"서울에서는 이동이 수월하거나 많아서 일상의 폭이 넓었는데 일본에 있을 때는 시골에 사니까 일상의 폭이 좁았어요. 일도, 생활도 그 지역. 자전거나 도보, 차를 얻어타거나 식재료도 얻어 먹는 일이 많고. 또 지역에서 한국어도 가르치고. 요리교실도 하고. 오코노미야키 파티도하고. 직원들도 멀지 않은 동네 살고. 그러니 지역 중심이 자연스러웠던게 아닐까싶어요.
한국에서 지역을 일상의 기반으로 하는건 인덕원 와서 본격적으로 가능했어요. 인덕원 전 고양시에서 살 땐 동네에 아는사람이 없어서 회사 중심으로 살았죠. "
인덕원 489 건물은 영인님 할아버지가 1983년에 지은 상가주택이다. 영인님이 20대 초반까지 살다 이사한 뒤 한 동안 올일이 없다가 2023년쯤 엄마가 털어놓은 걱정과 고민으로 오랜만에 왔다고 한다. 그렇게 건물을 조금씩 살피고 손수 수리하고 정리하면서 DIY리노베이션이라는 개념과 활동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건물과 연결된 경험과 기억을 떠올리고 현재 시점에서 이 건물을 어떤 방식으로 잘 활용할 수 있을지, 기존과는 다른 성격으로 임대를 놓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또 이전에는 직장 때문에 서울에 살면서 회사나 활동 관련 사람들을 주로 만났지만 현재는 인덕원에 살다 보니 어떠한 방식으로 인덕원(혹은 안양)사람들과 관계 맺고, 지역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글과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니 어쩌면 영인님의 현실적 상황과 고민들이 건물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방에 한참 서 있다 보니 문득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어요. 부모님이 셋방 도배하실 때 옆에서 풀 묻히고 벽지 잡아주던 장면들이요."
"이 집에 열한 명이 살았었어요. 고모들, 삼촌, 친척까지 북적북적했죠. 열아홉 어린 나이에 시집온 엄마가 위로는 어르신들 모시고 아래로는 아빠 형제자매들 돌봐 출가시키고 마지막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저, 동생 이렇게 여섯 식구가 남았었죠. 명절이면 이 좁은 집에 30명씩 모여서 먹고 치우고 또 먹고 다 같이 쪼그려 자고"
"부엌은 추억도 많은 곳이에요. 제 배엔 손바닥만 한 데인 자국이 있는데요. 열 살 많은 막내 고모가 첫 조카 라면 끓여준다고 물 끓이다가 엎어서 생긴 영광의 상처래요. (그날 고모는 큰오빠인 저희 아빠한테 엄청 혼났다고 하더라고요.) 남동생이랑 둘이 집에 있을 때 꽤 완성도 높은 쿠키를 구웠던 기억도 나고요. 희한하게 할머니랑은 부엌의 기억이 없는데, ‘부엌’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할머니예요. 뭔가 있었겠죠? 다시 뵙고 싶네요."
"부모님 방과 화장실 사이에는 제가 10대, 20대를 보낸 작은방이 있어요. 열 살 차이 나는 막내 고모와 방을 같이 써서 어릴 때 고모 덕을 참 많이 봤죠."
" 40년 전 건물을 짓고 처음 도배했던 그 연한 녹색 문양의 벽지까지 고스란히 붙어 있었다는 거예요. 그 순간 잠깐 울컥하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고모들에게 전화해 할아버지가 하신 도배가 그대로 있다고 전하니, 보고 싶다고 당장에 달려오셨죠. 셋이서 그 엉망인 방, 뜯겨 나간 벽지 앞에서 울고 웃으며 옛날 얘기를 나눴습니다. 마음속 작은 댐이 무너져 물이 넘쳐 쏟아지는 기분이었다랄까요."
" 저 어릴 적에 짐 가득한 다락에서 제 몸만 한 강아지 베개 갖고 동생이랑 올라가서 투닥투닥 자주 놀곤 했었거든요. 옛 추억을 살려 조카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주기로 하고 손을 좀 봤어요."
"오후에 부동산 사장님 두 분이랑 인근 공사장 반장님이 같이 오셔서 둘러보시는데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게 맞는 일이라 생각이 들었어요. 전에 거주하던 중국인 노동자분들도 지하 단란주점에서 올라오는 소음 때문에 나가신 거라 하니 그럼 안 되겠다며 바로 발길을 돌리시더라고요. 부동산 사장님들께도 당분간은 세를 놓지 못하겠다고 말씀드리고 돌려보냈습니다."
"그전에 분들은 어떻게 사셨지? 나중에 들어 보니 한 가정은 작업실이 2층이라 편하게 1층에 거주하셨고, 그다음 모녀분은 역세권에 저렴한 월세가 좋아 소음은 크게 신경 안 쓰셨다네요. 사람마다 사정이 다르고 집을 선택하는 기준도 다 다른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됐죠."
"40년 넘은 25평 구축. 기준은 명확했어요. 옛것을 최대한 살리고 비용은 최소화한다. 있는 거 궁리해서 다시 쓰기, 버려진 거 쓰기, 당근 활용하기"
"임대인-부동산-임차인. 이 미묘한 관계와 각자의 역할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어요. 도대체 부동산은 무엇을 하고 수수료를 받는 곳일까? 전문성이란 게 있긴 한 건가?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만 제 경험상 동네에서 그런 전문적인 분을 뵙기가 어려워 나온 한탄이에요.) 얘기가 너무 샜는데, 이 주제는 나중에 따로 풀 기회가 있겠죠."
"인테리어에 특별히 관심이 있지는 않아요. 좋은 것보다 싫은 게 명확한 편이라 ‘아닌 것만 아니면 된다’ 랄까요? 인덕원 집은 계획이나 콘셉트를 딱 정하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원래 집의 분위기가 확실히 남아있으니 그걸 따르는 게 콘셉트라면 콘셉트겠네요. 그래도 몇 가지는 꼭 하고 싶었어요. 집 앞에 이름 붙여주는 거랑 마루 색에 맞는 액자 몇 개 거는 거, 그리고 돌과 쇠 소재의 무언가를 두는 정도요."
"오래된 것에 가치를 두는 마음도 있지만 건축과 인테리어가 쓰레기를 너무 많이 만들어내는 게 싫거든요. 가급적 버려지는 것을 최소화하고 싶었어요."
"뭐니 뭐니 해도 집에 가장 중요한 존재는 공간을 채워주는 사람들이죠"
"이때부터 건물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인덕원 가정집 환경 개선을 하겠다고 계획 없이 작업 시작해서 동시에 여러 일들을 처리하며 오느라 건물 안 공간에만 머물고 그 공간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2층 상가가 빠지고 1층 가정집이 집의 모습을 찾게 되며 건물 전체를 보게 된 거죠. 그리고 이 동네에서의 삶도 같이 생각하게 되었죠. ‘오래된 건물의 쓰임’은 무엇일까? 특히 유흥업소 많은 지역 끝에 있는 인덕원집의 쓰임은 무얼까."
"왠지 스스로 고립된 느낌이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정리된 공간을 다음 단계로 넘겨야 한다는 건 감각적으로 아는데 그 구체적인 방법을 몰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새로운 방식, 대안적인 시도들을 찾았던 것 같고요. 제 상황과 비슷한 사례를 찾다 보니 정보는 넘쳐나는데 정작 이런 대화를 나눌 사람은 없고… 저는 팀플레이가 체질인 사람이라 혼자서 파고드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서울에 살 때는 갈 곳도, 만날 사람도 많았는데 인덕원 근처에서는 통 안 보였거든요. 가까운 곳에 금방 만나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사람들은 참여하지 않아도 다 알잖아요. ‘어? 여기 이런 게 있네. 뭔가 꾸준히 하네.’ 하물며 앞집 슈퍼 주인 어르신들께라도, 도시공상가가 주로 비어있고 가끔 쓰이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꾸준히 머무는 공간으로 인식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동네 공간이 활성화되고 지속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무래도 ‘자주 쓰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한국에서는 건물 소유자 혹은 임대업자, 특히 선대에게 물려받은 건물로 재생했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두 가지 경우이지 않을까 싶어요. 하나는 그런 사례가 드물거나, 있지만 건물 소유자가 본인이 소유자라고 밝히지 않아서 알 수 없는 경우가 두 번째. 한 번은 부모님께 건물을 여럿 물려받은 젊은 소유자에게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는 걸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교육받았다고요. 이제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왜 그런 걸까요. 가진 것을 숨겨야 하고,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 각자 다른 환경의 삶을 살아가는 것일 뿐인데. 시모노세키에 갔을 때 우연히 일본에서 수십 년 사시며 김치 가게를 운영하시는 한국 아주머니들과 한참을 수다했어요. 대화 중에 기억나는 것이 “여기서는 동네 부자랑도 다 친해요. 돈이 많든 적든 이웃이에요. 그이들은 사업해서 생활하고 나는 김치 팔아 생활하는 거고 같은 건데 뭘. 근데 한국 가면 피곤해요. 적게 벌면 없는 사람 취급하고 스스로도 당당하지 못한 것도 이상하고. 한국에 가면 좋으면서도 그런 게 피곤해서 집에 오고 싶더라고요.”
"한국은 예부터 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개인이 그 안에서 잘 살아야하잖아요. 너무 튀어도 안 되고. 집단적이면서도 아닌듯한. 저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죠. 같이하면서도 따로가 익숙하고 편하고. 개인의 일상이 중요해지는데 인덕원은 그 프로그램에 충실하게 전통적인 분위기가 오히려 개인의 참여를 제한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개인에게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삶이 지역을 구성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게 쌓이면 지역이 더 다채롭게 재미있어지고요. 그 일상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강한 공동체성을 갖고 있다면 접근이 어렵잖아요. 개인을 반영하는 프로그램이 되도록 살짝 틈새가 생기면 좋겠어요. 공동체는 이제 개인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커뮤니티가 아닐까요."
"DIY 리노베 초창기 자료와 기사들을 찾아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했는데, 건물의 규모와 환경이 다르고 한일의 관련 법, 사회적 분위기가 다른 점, 특히 사람들이 다른 걸 인지하며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을 찾으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DIY라는 형식을 먼저 사용하며 수단으로 접근하다 보니 큰 그림을 나중에 보게 되어서 역으로 찾아가느라 시간을 많이 허비했죠. 나중에 돌이켜보며 현실적으로 제일 먼저 필요했던 공부는 한국 부동산에 관한 것이었는데 하지 않았던 게 실수가 아닐까 싶어지기도 했고요.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했어야 했나 싶고요. 공부해서 되는 게 아니고 감이 있어야 한다고 누군가 말해줬는데 그걸로 저를 합리화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