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가치와 의미는 누가 만들어가는가: 인덕원 489 영인님 인터뷰②
대전 충남대에서 진행하는 <건물주 학교>라는 포럼에 일본 DIY리노베이션 팀이 참석한다고 해서 갔었어요. 규슈, 오사카에서 건물주들이 왔는데 시모노세키에서 온 재일교포 3세 하시모토상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에너지가 엄청난 분이었죠. 이 분들이 전달이 되는데 듣는 내내 통역이 틀린 건 아닌데 뉘앙스가 달라 추가 설명을 듣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었어요.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관련 자료를 일본어로 찾아보기 시작한 거죠.
그러고 DIY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게 된 건가요? <기웃기웃> 프로그램이죠?
처음부터 <기웃기웃>을 시작한 건 아니었고 2024년에 인덕원 비그라운드 아키텍츠 건축사무소가 운영하는 공유공간인 도시공상가에서 <모닝 북클럽>을 시작했었어요. <기웃기웃>은 도시공상가에 있는 도시, 건축 관련 책들을 읽었는데 문득 제가 알아가고 있는 내용(DIY관련)을 건축가도 알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무엇보다 이분들이 '지역건축가로 인덕원에서 역할을 하면 너무 좋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단순하게 들었어요. 얘기를 나눠보니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지점들이 있더라고요. 저는 건축가 혹은 지역 건축가가 어떤 직업인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은 몰라요. 다만 ‘설비와 대형 건축 사이의 어딘가, 동네에 있는 고만고만한 규모의 건축물들을 좀 더 복합적인 시선으로 접근해 줄 사람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던 거죠. 마치 증상을 고치는 서양의술과 원인에 집중하는 동양의술의 중간 어디쯤 같은. ‘동네 설비 아저씨들 뿐 아니라 건축가가 마을에서 중간 역할을 하면 좋겠는데…'싶었으니까요.
사람들과도 일본에 가서 DIY리노베이션 사례를 보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지인과 먼저 일본에 답사를 갔었어요. 놀러 갈 겸 해서 간 거죠. 야마구치 조세이 탄광에 갔다가 시모노세키에서 하시모토상을 만나고 곧 다시 오겠다고 했죠. 그러고 3월에 기웃기웃 팀과 같이 간 거고요. 그때만 해도 DIY 리노베이션이 뭔지 잘 몰랐어요. 다녀오면 이해가 더 잘 될 줄 알았는데 쉬운 개념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다들 평생 기억으로 남을 거라며 너무 좋아했어요. 저는 이전부터 아시아 로컬 분들과 같이 일한 경험이 많은데 기웃기웃 팀 멤버들은 일본 로컬 경험이 처음이라 그 농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을 거 같아요. 매년 11월 둘째 주에는 규슈에서 DIY 리노베이션 위크를 진행하는데 2024년에는 줌으로 보고 정리한 내용을 2025년 기웃기웃 1탄을 시작하면서 공유했었어요. DIY리노베이션에 대해 한번 정리한 거죠.
제가 가장 주목했던 것은 사례였어요. 이론은 하나로 정립할 수 있지만 이론을 적용한 모델이 정말 다양했거든요. 특히 제 사례와 가장 비슷한 사례를 보는 것이 적합할 것 같았어요. 가장 비슷한 입지, 비슷한 도시 상황의 사례는 뭘까 찾아봤죠. 스페이스 R 디자인 대표 요시하라상이 첫 번째로 진행했던 냉천장 사례가 가장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규모는 다르지만 후쿠오카 도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이고 그분도 건물에 투자해도 회수가 어렵다고 판단해 시도한 방법이 DIY 리노베이션이었거든요. 하지만 제 오판이었죠. 모든 게 너무 달랐어요. 큰 규모의 건물을 소유해 3대째 임대업을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자산규모가 아주 달랐고 또 저와 비교할 수 없는 요시하라상의 철학과 지식, 정보와 네트워크력은 제가 몇 년 공부한다고 얻을 수 있는 그런게 아니였어요.
사례를 통해 차이점을 알게 된 건데 일본 답사 이후 새롭게 알게 된 점도 있었나요?
처음에는 DIY리노베이션이 스스로 혹은 같이 작업하는 걸로 보였기 때문에 쉽게 ‘이 방법을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근데 알고 보니 DIY는 아주 작은 수단일 뿐이었어요. 저는 저비용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과 기술을 계속 찾았거든요. 예를 들면 단열은 어떻게 하는지, 하수구 배치를 어떻게 해야 될지, 철거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등 보통 시공, 설비라고 해야 되나? 이런 부분에 집중했어요. 심지어 독일에서 시작했다는 패시브 건축 관련 자료까지 찾게 되고 근데 일본에 가서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거죠. ‘어떻게 하면 이 건물에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갖게 하고, 어떻게 하면 이 건물의 가치를 더 올릴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생각해야 되는 거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비용을 줄여서 고칠 수 있을까?’에서 ‘이 건물이 잘 되려면 인덕원도 같이 잘돼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연결되고 사고가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 거죠. 지금 생각하면 임대업의 기초 중의 기초를 거기서 배운 거 같아요.
보통은 '건물이 잘 되려면 지역도 같이 잘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진 않는데 좀 다르게 생각하시네요.
‘지역이 함께 잘돼야 한다’는 생각은 전부터 있었어요. 인덕원에 와서 혼자 일만 했었던 것이 놀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어서였어요. 그런 찰나에 우연히 포스터를 보고 건축가가 운영하는 공유공간인 도시공상가를 찾아가 지역에서 놀 사람과 공간을 찾은 거잖아요. 지역에서 잘 살아가려면 놀거리나 만날 사람이 있어야 해요. 지역살이를 안정적으로 하는 청년들도 얘기하더라고요. '이 사람들이라면 같이 살 수 있겠다.’라는 의미가 생기는 휴먼 커뮤니티가 있을 때 오래 거주하거나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인덕원에 술만 먹으러 오는 게 아니라 재미있는 공간이나 슬며시 환영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인덕원에 살아도 좋겠다.’ 하면서 사람이 유입되고 그 사람들이 모이면 ‘저 집처럼 임대하는 곳에 살아봐도 좋겠네.’생각하는 거고. 건물 주인이 좀 괜찮은 곳에 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인덕원에 ‘뭔가 계속 되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거고 그런 의미에서 도시공상가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한 거죠.되게 단순해요. 같이 잘 되어야 하는 거잖아요. ‘일상에 소소한 재미있는 일이 많으면 좋겠다.’는 바램의 연속이기도 하고요. 인덕원에서 쌓는 다양한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인스타나 온라인에서, 위치가 안 좋아도 뭐 하나 잘 되면 찾아가잖아요. 옆으로 확산되기도 하고요. 인근 주민들에게 피해 갈 수 있고 젠트리피케이션도 일으키지만 그건 진짜 주목을 받았을 때 경우로 일반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요. 조금 소박하게 자기가 사는 지역에 대입해 보는 거죠. 그렇게 공상해 보는 거예요. 지금도 인덕원에 많은 변화가 있지만 단란주점이나 호텔의 흐름을 살짝 중화시키면서 전환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저희 건물은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거든요. 오래된 건물에 와보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경험이 될 거고 오래된 것의 가치 중 하나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잖아요.
여기는 출·퇴근 인구가 많고 퇴근하면 다 서울로 간대요. 안양이 서울과 가까워서 좋고 잘될 거 같은데 오히려 가까워서 안 되는 것 같아요. '서울 가면 다 있는데 뭐 하러 안양에 있어?’ 이런 느낌인 거죠. 처음에는 그 생각을 못했었어요. 나이가 들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동네에서 노는 게 좋아요. 여기도 놀거리, 즐길 거리가 생기면 굳이 서울 안 가고 누릴 수 있으면 좋지 않겠어요? 문화공간은 더욱 없으니 동네에서 편하게 멋내고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되면 좋죠.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이전보다 일상적인 문화경험을 많이 하잖아요. 그러니 일상적 이벤트가 더 있으면 좋겠어요. 소소하게 주변에 있는 것, 마치 사사로운 굿즈가 일상의 기쁨이 되는 거 같은 것 처럼요. 예술 또한 일상적인 것이 되려면 가까운 곳에 많이 있어야 그만큼 누리고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 간에 편차가 작아지지 않을까요.
좀 다른 얘기일 수도 있는데 옛날에는 살면서 겪는 큰 행사는 가족 중심으로 집에서 했었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이 서비스와 재화로 바뀌어 돈이면 다 해결할 수 있게 되어버렸어요. 심지어 생일도요. 이런 서비스를 반대하거나 나쁘다거나 혹은 과거로 돌아가자는 건 아니에요. 어린시절 집에서의 경험으로 지금도 사람들과 집에서 같이 밥 먹는 것이 좋고 집에서 뭐든 만드는 정서가 있다보니 다르게 느끼는 부분이 있는 거죠. 그 시절 삶의 형태가 정서적으로 좋은 것 같은데 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환경으로 바뀌면서 그런 정서가 없어지니까 어려워 지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어요. 사회문제는 여러가지 면에서 해석되어야겠지만 제가 일상에서 느끼는 건 그런 거예요. 뭐라고 논리적으로 설명도 안 되는데... 이것은 공간을 고치다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 같아요. 일상에서 느끼는 지점들을 하나씩 손대면서 직접 바꿔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에요.
사람들은 제가 하는 일이 돈이 안 된다고 해요. 알아요. 그래서 더 조심스럽기도 해요. 또 책임져야 할 자식이 있었으면 솔직히 이렇게 하기 어렵죠. 경제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상황이니까 시도하는 것이긴 해요.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소비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삶이 흐르고 있어요. 소비를 줄이는 훈련도 스스로 했던 거 같아요. 단숨에 라이프 스타일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요.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매 순간 궁리하고 있어요. 돈을 쓰며 만족도를 높일 수 있지만 그게 또 전부는 아니잖아요. 사람마다 삶의 만족도가 다다르니까 이 지점은 잘 생각해야겠죠. 그래서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해요.
제가 장애인이나 인권 쪽 활동을 했다 보니 환경을 볼 수밖에 없더라고요. ‘이동권이나 접근권에 있어 열려있는 디자인이냐 아니냐.’이런 것들이요. 건물에 ‘턱이 없으면 모든 사람이 편하구나.’라는 것을 경험해 왔고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살면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잔소리 같지만 중요한 지점이었던 거죠. 예를 들어 에너지 아끼는 것, 음식 남기지 않는 것, 들이요. 아껴 쓰고 다시 쓰는 것 같은 거요. 나만 편한 삶이 아닌 같이 사는 환경에 대해 생각하게 되잖아요. 어릴 때 경험이 저한테는 여러 가지로 영향을 주고 있어요.
그럼에도 서울과 거리가 멀지 않아 놀거리나 만날 사람을 지역에서 찾는 건 쉽진 않은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지금이라서, 지금 이 나이와, 지금까지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고 시대가, 사회가 로컬이라는 키워드가 익숙한 때라 ‘지역’ 중심의 생각을 더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미 서울에서 많이 놀아봐서 그럴 수도.
할아버지가 인덕원에서 살게 된 건 어떤 연유였었나요? 사진 속 2층 건물에서 살았던 건가요?
사진 속 건물은 저희 집이 아니고 세 들어 살았대요. 거기 살 때는 증조할머니도 계셨어요. 열세 식구였고요. 아빠는 인근 방직공장에서 일하셨어요. 할아버지가 어렵게 모은 돈과 아빠 퇴직금을 합쳐 땅을 사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할아버지가 벽돌을 등에 져 나르며 일하던 장면이 기억나요. 인부들이 있지만 할아버지도 같이 벽돌 올리고 시멘트를 바르신 거죠. 1층에 작은 가게 3개가 있었어요. 하나는 할아버지가 하시던 ‘형제상회’. 할아버지 가게에서 엄마도 남대문 시장에서 옷과 잡화를 떼다 팔았기 때문에 저도 엄마 따라 새벽 장에 가곤 했었어요. 형제상회 옆에는 낚시가게가 있었는데 사장님을 낚시가게 언니라고 불렀어요. 그 옆에는 아귀찜 집인가? 식당이 있었어요. 내부는 좁았고 식사를 한번 했던 거 같은데 어린애가 좋아할 메뉴는 아니라 그런지 거의 기억이 없네요.
건물 2층에는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바로 공동 샤워실이 있었어요. 공동 샤워실도 아니죠. 옛날에 수도만 있고 그냥 물 퍼 쓰는 식으로 되어 있었던 거 같아요. 2층 안쪽 왼쪽 벽으로 방이 서너 개 있었어요. 그 방도 할아버지가 만들었던 것 같아요. 집마다 드르륵 여는 문이었던 것 같고요. 다 혼자 사는 아저씨들이 거주하셨던 거 같아요. 명절 때마다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올라가서 아저씨들한테 ‘식사하러 오시래요.’ 하면 다 내려오셔서 같이 밥 먹고 그랬었어요.
당시엔 도로가 2차선이었고 플라타너스 나무가 있었어요. 동네에는 애들이 별로 없었어요. 아랫집 명학이 정도만 기억나고 또래 친구가 없었어요. 그리고 방앗간이 있었죠.그 방앗간이 현재 도시공상가 맞은편에 있는 새마을 방앗간이에요. 도로변에 있었는데 안쪽으로 들어간 거죠. 인덕원역에서 오다 보면 철거하려고 천막 쳐져 있는 곳이 있는데 상명전기라는 전기가게였거든요. 거기도 40년 정도 있었어요. 기억나는 건 두 군데 밖에 없네요.
중고등학교 다니면서는 새벽에 학교 갔다가 밤에 오니까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서 기억이 없는 거 같아요. 딱 1층 가정집만 주로 생각나요. 그러고 나서 2000년대 초에 의왕에 있는 박 씨 집성촌으로 이사 갔어요. 인덕원 건물은 세 주고 한 번도 와본 적 없다가 수십 년 만에 온 거예요.
여기 공사하며 역에서 큰 도로를 따라 집 앞까지만 왔다 갔다 했지 여태 마을 안에 들어갈 일이 없었어요. 주택이 많은 줄도 몰랐어요. 초등학교 다닐 때는 대로에서 한 블록 안, 대로변 큰 건물 바로 뒤쪽이 되는 거죠. 거기에 주택가가 있었어요. 그중 한 집에서 피아노를 배웠는데 마당이 꽤 넓은 적벽돌 주택이었어요. 교장 선생님 댁이었던 것 같고 자녀분이 피아노를 쳐서 배우러 다녔어요. 주택가에는 이후에 여관이 들어왔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호텔이랑 스크린 골프장이에요. 이렇게 바뀐 지는 몇 년 안 됐대요. 이런 변화에 대해서는 25년쯤 전 마을로 이사 오신 인덕원 터 사회적 협동조합 사무국장님한테 들었어요.
왜 유흥업소가 많이 생긴 건가요?
집 앞 대로 건너에 신성고등학교가 있었어요. 1996년에 학교가 수락산 인근으로 이전하면서 우후죽순으로 늘어난거예요. 과천시에는 정부종합청사가 있고 비싼 동네여서 유흥업소 허가가 안 나니까 이쪽으로 몰렸고요. 업무차원에서 접대가 많은 곳이랄까요. 교통이 편하거든요. 대리운전을 하거나 택시를 타면 일산 같은 경우 1시간도 안 걸릴 정도로 사통팔달이 뚫려있으니까요.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까지 전성기를 누리다가 코로나 때 많이 축소됐다고 해요.
인덕원 지역과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문득 도시공상가처럼 지역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드네요. 더군다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으니 그만큼 계속 지속되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도시공상가에서 어떻게 프로그램이 시작된 건가요?
혼자 공사하다 너무 지루해 하천변을 따라 산책을 했었어요. 가다 보면 인덕원 성당이 있는데 그 맞은편 1층 식당 문에 파란 포스터가 부착되어 있더라고요. 보니까 ‘인덕원 지도 전시회’였어요. 다음 날 곧장 도시공상가를 찾아갔어요. 그때 기억이 생생하게 나요. 문을 열고 들어가서 소개를 한참 하니까 윤소장님이 당황해서 앉으라고 하셨어요.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눈 뒤 식사초대를 했죠. 도시공상가를 방문한 날이 7월 초였고 3주가 지난 금요일에 점심 식사를 하러 오셨어요. 그때 안양에서 공간을 운영하는 팀도 같이 왔었어요. 밥을 먹으며 도시공상가에서 운영되는 정기적인 프로그램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아직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공간이 오래 지속하기 위한 정기적 프로그램으로 <모닝 북클럽>을 3개월 정도 운영 해보는 건 어떨지 제안했어요. 8월부터 시작해 3개월 정도 해보고 연장을 계속한 거죠. 그러다 어느새 1년을 했네요. 지인인 알서점(울산에 있는 책방)운영자가 예전에 망원동에 있는 리사이클 카페 지하공간을 빌려 6시부터 10시까지 모닝 북클럽을 운영했었어요. 그래서 조언을 구한 뒤 시작하게 된 거예요. 인쌓북이라고 작명도 해줬어요. 인덕원에서 덕을 쌓는 북클럽! 인쌓북은 책을 같이 읽고 나누는 게 아니라 각자 보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보는 식으로 운영했고요.
반응이 어땠나요?
참여도는 낮았죠. 애초부터 사람이 많이 올 거라 기대하지 않았고요. 중요한 건 인덕원에서 ‘아침에 뭔가 계속되고 있다’라는 것을 인지하게끔 하는 거였어요. 사람들은 참여하지 않아도 ‘뭔가 있네, 뭐를 하네.’ 예의주시하잖아요.
덕분에 동네 청년도 만났고요. 그 청년이 도시공상가에서 <코코아 북클럽> 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어요. 운영자가 이룬 게 아니라 그 청년이 도시공상가를 지지하고 모습인 거죠. 도시공상가가 말하는 지향대로요. 기웃기웃 프로젝트도 DIY리노베이션에 대해 많은 사람이 같이 알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거예요. 스터디와 투어를 포함해 <기웃기웃>이라는 이름으로 1탄은 4회차로 기획하고 진행했어요. 타이틀은 도시공상가 차 소장님이 기발하게 작명했죠. ‘영인 씨가 맨날 기웃기웃하니까 기웃기웃 어때요?’라고. 그렇게 프그램명이 ‘기웃기웃’이 된 거예요. 3탄까지 했어요.
1탄부터 3탄까지! 대단해요.
참여자 모두 일본 로컬에 경험이 없어 그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라 좋아했어요. 일본답사에서 재일교포 3세 하시모토상을 만나 지방소멸 문제와 그것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자세히 보고 대화할 수 있었던 것, 모지코 현립아파트의 신박한 사용법 등을 보며 생각의 전환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일본집에서 대가족처럼 며칠을 같이 지낸 건 평생의 기억일 거고요.
여러 모로 의미가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을 인덕원 489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요?
DIY 리노베이션에 대해 혼자 공부한 것을 <기웃기웃 1탄>에서 공유하고 인덕원 489에서 적용해 본 게 <기웃기웃 2탄>이에요. 그 외에는 안양을 기반으로 하거나 안양에서 거주하며 다른 지역에서 커뮤니티나 문화 예술 활동을 하는 분들을 인덕원 489에 초대하는 모임을 여러 번 했고요. 한일교류프로그램을 연속적으로 하고 있는 것, 일본 고베 DIY 리노베이션팀에게 인덕원집을 숙소로 내어주는 일도 크게는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공간이 있으니 그저 열어 둔 것이긴 하지만요. 그 덕에 사람들이 인덕원집에 대한 기억을 함께 남길 수 있잖아요. 임대업의 관점에서 DIY리노베이션 적용은 아직 명확한 방법이나 정답은 모르겠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여 보고 있어요. 부모님 세대 감각으로는 공간을 비워두는 게 말이 안 되니까요. 싸게라도 무조건 채워야 하는데 엄마도 저도 서로 불안해요. 그냥 전처럼 하자니 그렇고 다르게 해보려니 막막하고.
근데 이거는 해봐야 알 것 같아요.
맞아요. 근데 겁이 나니까요. 제가 건물 임대관리를 잘 모르니 비슷한 상황의 구축 소유자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죠. 정보교류도 하고 구축의 가치나 정서를 나눌 수 있겠다 싶어서요. 그래서 수소문해 구축 소유자 분들을 만나 얘기했는데요. 저의 무지와 부족함에 수치감이 들더라고요. 모임이 생기면 서로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 건 너무 순진한 제 생각이었어요.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손해를 피하는 게 당연한데. 즉 모임에 오는 사람들이 가진 정보의 편차가 클 경우에 모임이 형성되지 않는거죠. 제가 정보의 키를 쥐고 공유하는 사람이 되어야 가능한 일처럼 보이더라고요. 하지만 여전히 '그렇기 때문에 그런 모임이 더 필요한 것 아닐까?' 생각해요.
소유의 격차에 상관없이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으로 교류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관계. 특히 구축 건물은 경쟁시장이 아니라 함께 그 가치를 올려야 하는, 그것만의 고유한 시장과 때가 아닐까. 그렇다면 협력의 장이 있어야 유리한 것이 아닐까.. 혼자 생각하다 보니 자꾸 합리화만 하는 건 아닌지. 계속 자문자답만 하네요. 제 안의 답이 정리되어야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이런 고민을 같이 할 사람이 갈급한 마음이네요.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이런 상황 자체가 드문 것 같아요. 혹은 정보를 노출하지 않아 쉽게 알 수 없거나.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도 같아요. 결국 수익이 발생해야 하는 거잖아요. 일본 DIY리노베이션 답사 갔을 때 임대업자, 즉 건물 소유자 모임 중 한 분이 슬쩍 물어보신 게 ‘돈의 흐름이 있냐’는 거였어요. 건물이 부모님 소유라 설명이 좀 복잡해질 것 같아 그냥 '건물 외 수입으로 생활비 정도는 만들 수 있다'고 했는데 그럼 다행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부동산은 돈의 흐름이 있어야 재투자가 가능하고 DIY리노베이션도 마찬가지라는 걸 넌지시 얘기하셨다고 생각해요. 작년 일본 DIY 리노베이션 위크에서, DIY 리노베이션을 이상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도시 규모에 따라 입지를 판단하고 경제적 논리에 근거해서 결정해야 한다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투자해야 하는 입지의 구축 건물에는 투자해야 하는 거라고요. 한참 투자가 몰리는 인덕원 건물에 대한 판단이 필요한데요. 부모님 상황으로는 직접 투자는 어렵고 팔 계획은 없다고 하셨는데 요즘 좀 흔들리시는 것도 같고. 저도 혼란스러워요. 답답한 마음에 스페이스 R디자인 요시하라상에게 무작정 메일을 보냈었어요. '너무 무례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로 시작하는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는데 장문으로 답장을 보내주셨더라고요. 상황이 다르니까 대답해 줄 수 없는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하면서요. 답장 주신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몇 가지 포인트를 알려주셔서 그 부분을 다시 생각해 봤어요. 과연 인덕원이 부동산 시장 논리에 따라 투자를 해야 하는 곳인지 아닌지. 투자할 여력이 있다면 문제없겠죠. 그런데 사정이라는 게 있는 거고. 만약 크게 리모델링을 안 한 상태로 계속 두게 된다면 지금 제가 생각하는 방식이 대안으로써 맞다는 생각이 드는데…….
**참고: 인터뷰로 한 사람의 생을 따라갈 때 전반적인 내용을 인터뷰어가 취사선택해 전달하면 그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자세히 반영했다. 따라서 인터뷰 내용이 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