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경희궁이 있다.

경희궁-사직터널 코스

by 이경민



조선왕조, 다섯 개의 궁

경희궁을 처음 알게 된 건 광화문 인근에 있는 회사에 다닐 때였다. 점심식사를 하고 산책도 할 겸 왔던 곳이 경희궁이었다. 경복궁, 덕수궁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고, 위치 때문인지 아님 인식 때문인 것인지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발길은 드물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하지만, 왜 이곳에 경희궁이 있는 것인지, 경희궁은 어떤 곳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경복궁과 덕수궁, 창덕궁창경궁은 인근 장소와 연계되어 (예를 들면 경복궁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덕수궁은 서울 특별 시청, 잔디광장, 창덕궁과 창경궁은 대학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고, 입구 또한 큰 대로변에 노출되어 있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다가도 마음만 먹으면 방문할 수 있다. 물론 경희궁 또한 거리가 엄청나게 멀거나 접근성이 낮은 편은 아니지만, 이곳을 찾는 발길이 드문 걸 보면 존재 여부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도에서 보면 세종대로를 중심으로 보면 각 궁들 사이에서 거리가 가장 먼 것은 오히려 창덕궁, 창경궁임을 알 수 있다.

그림01.png 조선의 5대 궁궐, 육조거리가 있던 광화문 광장과 경복궁을 중심으로 주변에 4개의 궁이 위치해 있다.

근데, 경희궁? 어디지?

경희궁은 광해군 때 3년에 걸쳐 완공되었으며, 창덕궁이 동궐, 경희궁이 서궐로 불리며 조선왕조의 핵심 궁궐로서 역할을 해왔다. 경희궁에서 태어난 숙종은 즉위 기간 중 13년간 머물다 승하, 경종과 정조 또한 이곳에서 즉위하고, 왕비와 후궁들의 일상적인 생활공간이었다. 그러나 고종이 즉위한 이후 경복궁 중건 사업을 벌이면서 경희궁 전각을 경복궁 중건에 사용하면서 5개의 전각 밖에 남지 않았다. 그 이후에는 경성중학교, 해방 이후에는 서울고등학교, 서초구로 학교가 이전하면서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사용되다가 건물을 허물고, 경희궁의 일부를 복원하였다.

IMG_1566.JPG 흥화문을 넘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서울 중고등학교 터'라 적힌 표지석을 볼 수 있다.
IMG_1571.JPG 빈 공터로 남아 있는 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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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자세히 보면 흥화문 길을 경계로 서울역사박물관이 위치해 있는데, 그 모양새가 마치 경희궁을 침범하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 경희궁의 담벼락은 서울특별시 교육청과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지도상에 노란색 동그라미 표시가 된 위치에 A(경희궁), B(서울시교육청) 구역을 연결하는 문이 있다. (아래 사진 참고) 이런 상황을 봤을 때 원래 경희궁을 이루고 있던 전각도, 경희궁의 터도 본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린 상태라 볼 수 있다.

KakaoTalk_20190126_221712338_04.jpg 서울특별시 교육청 건물
IMG_E0980.JPG 경희궁을 지나 이 문을 넘어가면 서울시교육청 건물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런 건물들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 경희궁의 전체 총면적은 어느 정도였을까?

"원래 규모는 7만여 평이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철저히 파괴되어 현재의 규모로 축소되었다." [내용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다운로드.png 과거 경희궁의 모습 <사진출처: 평범함을 꿈꾸는 소심한 낙지>

경희문 정문이었던 흥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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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이 위치한 바로 옆으로는 경희문의 정문인 흥화문이 있다. 원래는 현 구세군 빌딩 자리에 있었지만 1988년 이곳으로 옮겨 왔다. 1932년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당, 박문사의 정문으로 사용, 광복 이후에는 영빈관, 신라호텔 정문의 역할을 하다가 본래 경희문 정문으로 돌아왔다. 본궁(경희궁)만큼이나 우여곡절이 많았던 문이다. 경희궁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흥화문을 통과하거나, 서울역사박물관 1층 뒤뜰과 연결된 문 혹은 주차장 쪽으로 통과해서 가거나. 나는 주로 후자의 방법을 이용한다. 보일 듯 말 듯 존재하는 경희궁에 앉아 가만히 앞을 응시하고 있으면 새삼 이곳이 도심 한복판인지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서 새삼 놀랍다. 마음이 어지러운 날, 아주 멀리 떠나긴 상황이 안되고 정리는 하고 싶을 때 찾아와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낸다.

KakaoTalk_20190126_221712338_03.jpg 흥화문을 통과해서 직진하면 보이는 경희궁 방향
DSC04940.JPG 역사박물관 뒤뜰로 가면 경희궁과 연결이 되는 길이 나온다.

경희궁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겨울이 조금씩 다가오던 지난해 11월 경희궁 일대에 있는 몇몇 주요 장소들을 둘러보는 답사에 참여했었다. 성균관대 교수님과 어느 건축사 사무실이 협업, 건축학과 학생들과 함께 진행하는 답사 프로그램이었다. 경희궁 인근에 조성된 돈의문 박물관에서 출발하여 강북삼성병원 본관 건물에 위치한 경교장, 리모델링 공사 중인 기상청 서울 관측소, 한양도성의 성벽을 지나 홍난파 가옥을 까지 걸었다. 좌측으로는 걷는 내내 시야를 가로막고 있던 아파트 숲 사이에 위치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코 앞에 영천시장이 보였다. ''영천시장이라면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과 가깝고 독립문역이라 함은 옥바라지 골목과 서대문 형무소가 인근에 있다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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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코스]
A: 돈의문 박물관 - 경교장 -기상관측소
B: 기상관측소 - 월암 근린공원 - 홍난파 가옥 - 영천시장

그동안 버스와 지하철로만 이동해서 다니느라 길이 이렇게 이어질 줄은 전혀 몰랐다. 특히나 집 근처에서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독립문역에 도착하려면 한 번의 환승과 이동시간을 포함하면 최소 1시간이나 소요되는데 걸어오니 생각보다 가깝게 느껴졌다. 물론 집이 아닌 서대문역 인근에서부터 출발한 것을 감안하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5호선 광화문역, 서대문역, 3호선 독립문역, 영천시장, 서대문형무소, 옥바라지 골목 등 독립된, 각기 다른 별개의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다가 걸으면서 같은 범위 내에 속하는 하나의 영역으로 합쳐지면서 심리적으로, 실제 거리로도 가까워진 것이다. 이처럼 서울의 수많은 명소들을 도보로 걷다 보면 생각 외로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이번엔 아파트 단지 내 설치되어 있던 엘리베이터 덕분에 돌아가 가야 하는 길을 단번에 줄일 수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경희궁을 통과해서 가되, 그 반대 방향으로 걸어 가보기로 했다. 사실 어찌 보면 '경희궁의 깊숙한 곳까지 걸어 들어가면 과연 길이 나올까? 길이 나온다면 다른 곳과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가 궁금했던 거였는데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제한이 있을 것 같아 일단 보류하고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본 것이었다.

<이동코스>
서울역사박물관 - 경희궁 - 문 - 교육청 - 성벽- 월암 근린공원 - 홍난파 가옥 - 송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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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만 더 걸으면

사직터널이야

어느 동네나 마찬가지이듯 이곳도 신축된 빌라들이 길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 길의 끝엔 호기심을 끄는 집 한 채가 있었고,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잎이 모두 떨어져 앙상한, 커다란 나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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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둘러쌓고 있는 담자락 옆엔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다. 이 길을 따라 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도착지가 어디 인지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지만, 모든 길은 연결되어 있고, 막다른 길이면 돌아오면 된다는 생각으로 곧장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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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자마자 좌측으로 보이는 건 다름 아닌 사직터널. 크게 크게 돌아 어둡고 소란스러운 길을 걸어 통과했을지도 모를 터널을, 걸은지 채 몇 분도 안돼서 터널을 통과한 거나 다름없게 되었다.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길을 벗어나 눈에 띄지 않는 길로 걷다 보면 의외로 지름길인 경우가 많다.

* 사직터널?
종로구 교남동과 사직동을 잇는 터널. 서울시 최초 도로 터널. 지하철 3호선이 터널 밑으로 지나간다.
교남동은 영천시장과 독립문이 있는 곳이고, 사직동은 경희궁과 사직공원이 있는 쪽이다.
그림033.png 지하철 3호선이 사직터널을 통과하여 독립문역 방향으로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012.png 사직터널의 서쪽은 교남동, 동쪽은 사직동

마치 실제 사직터널을 통과한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곧장 사직로를 따라 앞으로 걸었다. 하지만 시선은 정면이 아닌 걸어왔던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곳엔 정체를 알 수 없는 낡고 오래된 집들이 방치(?)에 가까운 모습을 하며 자리하고 있었다. 발을 딛고 서 있는 자리와 집이 위치한 자리 사이에는 높낮이의 차이가 존재했는데, 마치 호수에 물이 고여 있는 것을 연상케 했다. 가뜩이나 미세먼지가 휘날리는 날, 폐허와 다름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집을 보니 으스스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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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서 좀 볼까?' 계단 앞에서 한참이나 망설였고, 차마 용기를 내지 못해 돌아섰다. 집 주변에 높은 건물이나 아파트가 없는 걸 보니 담벼락 뒤쪽으로 가면 왠지 비슷한 모양새를 한 집이나 혹은 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가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고, 큰길로 걷는 대신 좁은 길로 걸음을 옮겼다. 예감은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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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쪽으로 돌아가면서 마주 했던 장면은 딱 두 가지였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길에 촘촘히 자리 잡은 낡고 허름한 집,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들 만큼 거대하게 솟은 지어진 고급 아파트. 마치 자태를 뽐내듯 도로변에 서 있어서 저층의 작은 집들은 마치 고인 섬처럼 그들 사이에 갇혀 있었다. 이쯤 되면 뭔가 나올 법하다. 그렇다면,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보기로 하자. 아니나 다를까 교회인 듯 아닌 듯 무심하게 자리한 사직동 교회 앞에서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길이 나타났다. 미로 같았다. 양 옆으로 길게 이어진 담벼락이 마치 금방이라도 나에게로 쏟아질 것만 같았다. 분명 이곳엔 사람이 사는 것 같은데,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 골목길은 어디까지 이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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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4507.JPG 붉은 대문 집이 이 골목의 끝이었다.

'막혀 있을까? 아님 다른 길과 연결되어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표를 잔뜩 짊어지고, 이어지는 길을 계속 계속 걸었다.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길이 아쉽게도 붉은 대문을 한 집을 끝으로 막다른 길이었다. 지도를 찍어 보니 거친 돌로 만들어진 담벼락은 경희궁지의 담벼락이었다. 결론적으로 경희궁의 입구에서 뒤쪽으로 끝까지 걸어 들어오면 다른 길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이 담벼락으로 막혀 있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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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까 봤던 오래된 집들이 '경희궁 주변에 형성된 마을이 있었다고 가정했을 때 존재했던 집들이 아닐까?'라는 아주 개인적인 추측에 더 확신을 갖게 하는 묘한 연결 고리가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그림044.png A , B, C 모두 오래된 집들이 모여 있던 곳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광화문 풍림 스페이스본' , '파크팰리스' , '경희궁의 아침'

모두 고층아파트, 오피스텔의 이름이다. 분명 나는 방금 전 굉장히 오래된 집들을 보고 돌아 서는 길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무색하게도 눈 앞에 펼쳐지는 또 다른 풍경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묵직하게 거대한 아파트가 200m 채 안 되는 거리를 가득 매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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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표지석을 하나 발견했는데 다름 아닌 경희궁의 북문인 무덕 문지, 우물지, 경희궁의 담장 일부가 광화문 풍림 스페이스본 주상복합건물 신축공사와 관련하여 발굴조사를 할 당시 확인되었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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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석 내용
[경희궁지 일원 유구 확인 지역]
풍림 스페이스본 주상복합건물 신축과 관련한 발굴조사를 통해 경희궁의 담장 일부와 우물지 그리고 무덕 문지로 추정되는 유구가 확인되었다. 무덕 문은 경희궁의 북문으로 사직단과 연결되는 통로상에 위치하며, 조사를 통해 지하 배수로와 기단의 흔적 등이 확인되었다. 유구는 원위치에 복원하였으며, 이 곳이 경희궁의 권역이었음을 알리고자 표석을 세운다.

경희궁에 사직단과 연결되는 문이 있었고, 경희궁의 범위는 지금보다 훨씬 넓었다는 것을 이 표지석으로 한번 더 확인할 수 있다. 아파트 단지로 변해 버린 장소에 표지석을 세워둔다 한들 그 의미가 얼마나 되새겨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상황에 따라 도시의 모습도 변화하고, 도시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도 변화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어떤 방식으로,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였는지' 등에 따라 변화된 결과로써 받아들이게 되는 지점들이 다른 것 같다. 조선왕조가 만든 다섯 개의 궁이 각각 다르게 이용되는 것처럼 말이다.


+) 경희궁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경희궁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 (내용 출처: 나무 위키)
1)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 2가에 위치한 조선시대 궁궐(사적 271호)
2) 1617년 착공, 1623년 완공된 이공. 조선 후기 때 창덕궁에 이어 제2의 궁궐
3) 창덕궁+창경궁을 지칭하는 동궐에 대비되는 경복궁의 서쪽 궁궐, 서궐

* 경희궁은 100% 일제의 만행에 의해 흔적도 없이 완전히 파괴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 많은 국민들이 공분하며 일제를 규탄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일제시대 이전 흥선대원군 시절에 경희궁 전각의 대부분 90%이 경복궁 중건을 위한 자재로 사용하기 위해 헐렸다. 일제가 경희궁이 손댄 거라곤 잔여 방치되어 있던 전각 5개를 통째로 외부에 매각한 것뿐이다. 그러나 문화재청 등에서 발간한 여러 자료에는 이러한 사실이 일절 언급되어 있지 않고 오로지 일제에 의해서 훼손되었다고만 적혀 있기 때문에 일반에게는 이러한 내막이 거의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심지어 위키피디아에도 관련 내용이 전혀 없다. 최근에 발표된 학술논문에서만 언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광복 후에도 경희궁 터 위에 지어진 서울고등학교의 존재 때문에 한동안 복원은 꿈도 꾸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1980년 서울고가 이전한 후에야 경희궁 터의 본격적인 유적 발굴과 복원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경희궁 복원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전에 경희궁 터를 소유하고 있던 서울시가 잽싸게 그 자리에 서울특별시 교육청,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역사박물관 등을 짓는 만행을 저지르는 바람에 도리어 경희궁 유구가 더욱 훼손되고 말았다. 게다가 서울시는 잔여 경희궁 터를 민간에 매각하려 했으나 땅값이 너무 비쌌던 데다가 당시에도 경희궁 부지를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 매각에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 후에도 근성의 서울시는 그 땅이 경희궁으로 온전히 복원되는 것을 저지하고 끝끝내 서울역사박물관을 건립하여 경희궁의 잔여 유구를 훼손하고 말았다. 또 일부 부지는 서울시가 끝내 민간으로 매각해버렸고 이것이 현재 경희궁 완전 복원의 걸림돌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남은 전각이 적고 협소한 탓에 조선 5대 궁궐 중 인지도가 가장 낮다. 훼손이 너무 심하다 보니 책에 따라선 4대 궁을 먼저 묶은 뒤 서울역사박물관과 경희궁터라고 따로 분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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