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배동-청파로 코스
지난번 삼각지 교차로에서 삼각지 고가차로를 넘어 문배동이라는 곳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가까운 거리에 열정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경우는 고가 너머의 동네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고가차로 위를 걷고, 주변을 유심히 살피는 것에도 의미를 두었다. 좌측엔 또 다른 고가차도와 오리온 공장이, 우측엔 기찻길과 담벼락을 따라 곧게 뻗은 도로, 미군 부대의 영향으로 높은 건물이 없는 탓에 그 어떤 가로막힘도 없이 아주 잘 보이는, 남산과 남산타워가 있었다. 그 와중에 기차가 지나갔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기차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문득, 기차가 달리는 방향으로 걸으면 어디에 닿을까? 어떤 풍경이 펼쳐 질까? 궁금해졌다.
사실 기찻길 담벼락을 따라 걷는다고 했을 때, 삼각지 교차로에서 서울역 방향으로 가는 길과 수평으로 뻗어 나가는 길이기 때문에 주변의 풍경이나 건물만 잘 살펴봐도 얼추 어디쯤 인지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걸어 보지 않은 길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없으므로 가 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조금씩 주변을 살피며 걸었다.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애매한 위치에 버스정류장 하나를 발견했다. 이상하게도 뭔가 익숙한 느낌이었는데, 갑자기 생각났다. 2년 전, 서울역 앞에서 버스를 탔다가 목적지와 다른 방향인 것을 알고선 허겁지겁 내렸었다. 급하게 내리긴 했는데 처음 와 본 곳이라 주변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었고, 반대편에 당연히 버스정류장이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없었다.
겨울이 되려는 늦가을쯤이었고, 쌀쌀한 날씨에 길까지 헤맨 터라 기억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그 정류장이었다. 그제야 주변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번 지나왔던 열정도 골목이 보이는 걸 보면 길이 여러 방향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늘을 뒤덮은 고층 아파트를 지나니 기찻길이 있는 방향에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유명한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이 보였다. 직접적으로 찾아가 본 적은 없지만 사진으로 여러 차례 본 적이 있어 건물의 형태나 색감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대한민국 경찰 수사관들이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 박종철을 심문하던 중 물고문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성공회 서울주교좌 대성당에서 6월 항쟁이 시작되었다.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이 보인다는 것은 남영역이 가까이에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연이어 나타난 지하차도. 이를 포함하여 서울역에 이를 때까지 3~4개 정도의 지하차도가 존재한다. 남영역 표지판이 달린 이 지하차도를 건너면 삼각지 교차로에서 서울역 방향으로 뻗어 나가던 그 길과 만난다.
지하차도가 보이는 횡단보도 앞에서 좌측을 바라보면 위치를 알리는 표지판이 하나 있는데 조금만 더 걸어가면 서울역에 도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서울역(서부)'라는 명칭이다. 서울역 서측 출구라는 의미이며, 경의. 중앙선의 승강장이 있었고, 과거에는 수화물을 취급하는 역이었다. 현재는 서울역에 흡수되어 명칭만 남아 있다.
횡단보도를 건넌 뒤 무심코 길 건너편을 바라보았는데, **기공, **기계, **펌프 가게가 쭉 있고, 심지어 철공소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주로 문래동이나 을지로 부근에서 많이 봐왔던 풍경이라 낯설진 않았는데, 기찻길 바로 뒤편에 모여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 같기도 하고 아무튼 좀 궁금했다. 왜 이곳에 철공소들이 있는 것인지. 바로 맞은편에는 학교도 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 궁금증은 더 늘어만 갔다. (아, 물론 문래동에도 철공소 건너편에 초등학교가 있긴 있다.)
혹시나 해서 이 지역에 철공 산업과 연관한 것이 있는지 자료를 찾아보니 있었다.
*청파동 일대의 철공소
서부역 방면의 삼일교회 근처에서부터 남영역 입구 옆까지 대로변 상에 일렬로 전개되어 있는 철공소 거리의 모습이다. 1960년대부터 서울역 전면부가 개발되면서 이곳에 위치하였던 제조공장들은 타 지역이나, 서울역 뒤쪽으로 이전하였다. 특히 건설 및 기계 및 이의 부품을 다루는 점포들이 서울역 뒤편으로 모였는데, 철도 운송에 물류를 크게 의존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서울역 뒤편 서부역 일대의 철공소 거리는 거래처가 밀집되어 있으며 특수 주문품을 바로 제조하여 납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이웃한 철공소와 부품 거래상은 아직도 빈번한 거래를 수행하고 있다.
[내용 출처: 서울역사 아카이브 홈페이지 게재 내용]
가게들이 모여 있는 동네는 청파동, 서계동 일대인데 고려시대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청파 역, 용산역, 서울역 등 교통의 요지로서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여러 가지 산업들이 발달했다. 서울역과 인접한 청파동에 철공소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은 그 당시 철공업이 발달했던 지역으로 볼 수 있는 흔적인 것이다.
아래 대경성 정도(1936년)에 금속 산업체가 있었던 지역이 표시되어 있다.
1936년 발행된 대경성 정도에 금속 산업체의 분포를 나타낸 자료이다. 경성역 주변에서 확인된 금속 산업체의 수는 총 22개 업체이며 각각 난다이 몬도 오리(남대문로, 밝은 하늘색) 13개 업체, 타케조에 쵸(충정로 부근, 보라색) 3개 업체, 호라이 쵸(서계동 및 봉래동 1가, 어두운 하늘색) 3개 업체, 후루이치 쵸(갈월동, 초록색) 2개 업체, 기슈 도오리(중림동, 분홍색) 1개 업체이다.
[내용 출처: 서울역사 아카이브 공식 홈페이지]
이와 연관된 내용과 자료가 서울역사 아카이브(http://bitly.kr/y75mv)에 자세히 나와 있다. 철공소 거리를 지나면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물이 하나 나오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신기하게 생겼다.
멀리서 보거나 다른 건물에 가려서 꼭대기 부분만 보일 땐 어느 공장의 굴뚝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응? 응? 응?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점점 든다. 건물 모양이 일자가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갈수록 면적이 넓어지는 형태였다.
도로변에서는 앞쪽에 위치한 적벽 색 건물에 가려서 전체 형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었다. 어느 길로 가야 이 건물이 위치한 지점과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최대한 가까이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 보았다. 첫 번째 골목으로 들어갔더니 막다른 길이다. 두 번째 골목은 유료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그래도 가장 근접한 지점이라 들어가 보았다.
마음 같아선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둘러보고 어떤 용도와 목적으로 생긴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현장 답사를 하면서 늘 아쉬운 부분이다...) 주차장 관리하시는 아저씨도 계셨지만 말이지.
한 점의 용기 대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리서치부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앞서 찾았던 청파동 일대 철공소 거리와 연관 관계가 있었다. 이 건물 또한 일제강점기 때 철공소 건물로 사용되던 것이었다.
청파동 삼거리에서 청파로를 따라 남쪽으로 가다 보면 백색의 굴뚝 형태를 띠며 솟아있는 독특한 형태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일제강점기 철공소 건물로 사용되던 이 건축물은 현재 철공소가 이전하고 용도가 바뀌면서 사무실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서울역과 인접하여 청파동 일대 철공업이 발달했던 흔적을 명징하게 드러내며 이 일대의 지역적 정체성을 담고 있다. 피라미드처럼 상층부가 좁아지는 굴뚝 부분은 계단을 더해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고, 넓은 공간 활용과 도로로부터 직접적인 접근이 용이한 1층의 지상 공간은 재활용센터로 변모하였다.
각층의 외부의 형태에서 드러나듯 이 정사각형 모양의 평면 속에서 북서쪽에 수직 동선인 계단이 위치한다. 약 11m x 10m 크기의 바닥면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계단을 따라 상층부로 이동하며 형성된 복도를 따라 2층부터 4층까지는 각 층이 각각 소규모 임대 사무실을 위한 두 개의 사무공간으로 구획되어 있다. 가장 상층부인 5층 공간은 건물 관리를 위한 건물주의 사무공간이 차지하고 있다. 건물의 최고 높이는 26m로 사각형 평면이 점점 좁아지는 외관은 주변의 3-4층 사각형 건물들 속에서 유독 그 형태가 부각된다.
건축물의 재료나 형태가 현재 청파로를 따라 형성된 주변의 상가건물들과 이질적이며 청파로를 접한 전면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블록의 안쪽에 위치한 유료 주차장과 마주하고 있다. 독특한 형태로 인해 주목을 끌지만 실질적인 접근은 청파로에 접한 재활용센터 우측의 입구로만 가능하다. 건물 외벽은 예전 철공소로 사용되던 시기의 모습으로 여겨지는 콘크리트 위 백색 페인트가 발라져 있으며 단조롭다.(현재는 회색 페인트)
철공소에서 용도를 변경하며 필요한 창호를 추가한 듯 단조로운 외벽에 오프닝(Opening)들이 생겨 단순한 외부 입면을 구성한다. 건물 형태로 인한 수직성이 단면적으로 내부 공간의 차별적 특징을 담을 수 있어 보이지만 소규모 임대를 위해 평면과 단면의 특성은 일반적인 임대 건물과 차별화된 요소는 없다. 일제강점기 이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경제적 목적에 충실하게 필요한 변모와 주변 건물과의 결합과 저층부에서 공간의 확장으로 무질서한 모습으로 상층부 형태의 특징만 간직하고 있다.
[내용 출처: 서울역사 아카이브 공식 홈페이지]
서울역사 아카이브 홈페이지에 내부 사진도 업로드되어 있어 그나마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존재하던 건축물이라면, 분명 과거 사진 속에도 등장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사진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이 건물로 추정되는 것이 찍혀 있었다.
인왕산의 서쪽과 남산의 남서쪽에서 각각 발원하여 의주로를 가로질러 서소문공원을 지나 서울역 뒤편 청파로를 따라 용산을 거쳐 한강으로 합류하던 만초천이 복개된 모습을 찍은 사진인데, 서울역사 아카이브 [청파. 서계] 관련 자료에서 나온 것을 보니 청파동 인근에서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의 왼쪽 상단에 보면 위의 건축물과 굉장히 유사하게 생긴 건물이 보인다. (노란색 동그라미 표시)
만약 나의 추정이 맞다면 같은 건물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은 어떤가? 나와 같은 생각인가?
일제강점기 철공소였던 건물을 지나 청파동 삼거리에 닿으면 앞서 언급했던 만초천이 이 길을 따라 흘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표지석 하나가 놓여 있다.
'청파동 배다리 터'
조선시대 도성에서 청파, 원효로로 통하는 주요 길목인 만초천에 놓였던 돌다리 터'
만초천 구간은 대부분 복개되었고, 유일하게 남은 구간은 용산기지 내에 있다. 대신 만초천이 흘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흔적들을 찾을 순 있다. 이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흔적이라면 이 표지석과 함께 아까 지나왔던 문배동 근처에서 '욱천 복개고가'라고 쓰인 안내판이 대표적이다.
욱천은 일제강점기 때 불렸던 만초천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갈월동 지하차도를 지나 기찻길 앞쪽 길을 걷다 보면 국민은행이 하나 있는데 주차장 쪽에 맨홀 뚜껑 아래로 만초천이 흐른다. 결국, 삼각지 고차 차도를 건너, 기찻길 담벼락을 따라 걷는 것은 복개된 만초천의 물길을 따라 걷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청파동 삼거리를 지나 조금만 더 가면 서울역이고 내게 익숙한 길이기 때문에 오늘은 여기서 멈추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