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은 사용하지 않아도 켜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배터리가 닳아버린다. 우리에게는 내가 놓지 않으면 끝까지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는 반면, 내가 꼭 붙잡고 싶어도 이내 사라져 버리는 것들이 있다.
사라지지 않는 것들, 그리고 사라지는 것들. 하루가 너무 빠르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일찍 소중함을 알았다면, 우리의 삶은 어쩌면 소중함들로 더 가득 찼을지도 모른다.
이런 인간의 결핍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볼 수 있다. 시간을 되돌리거나, 시간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결국 남겨진 이야기들은 현재에 충실하고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하라는 주제가 꽤 많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고, 과거가 나를 계속해서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나의 과거는 나의 미래다. 매일 이루어지지 않는 꿈에 대해 나는 가끔 투정을 부리지만 마음 한편에는 항상 지금의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그 일을 감당할 만한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주된 생각이다.
그토록 원했던 무엇이 왔을 때 내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또 금세 나를 떠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오래오래 끌어안을 수도 없겠지만 사라지게 할 수도 없다.
내 곁에 두기에 아름답고, 멋있고, 예쁘고, 맛있는 것들이 있을 때 우리는 그것들이, 그 시간들이 멈추고 영원하기를 바란다. 그 순간은 영원하지 않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서는 영원할 수 있다.
사라지는 순간,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기억. 우리는 삶을 계속 살아가지만 또 기억으로 살아간다. 현재와 기억 그 사이를 공존하며 살아간다.
스무 살에 결혼해 아흔이 넘은 노부부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고, 다시 태어나도 죽어서도 여전히 서로와 만나 부부가 되어 사랑하고 싶다는 말에 70년을 함께 지낸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내가 살아온 시간의 배만큼 한 사람과 시간을 보내며 사랑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어쩌면 사랑은 영원하다는 말은 진실인지도 모른다.
하루가 한입 케이크처럼 사르륵 사라져 버렸다.
예전에 쓴 문장 중에 이런 문장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언제나 나를 떠나, 나를 잘 안다는 이유로 더 아프게 하면서 말이다.' 그때는 관계에 서투른 내가 그것만 생각하며 적은 문장이었다. 그 시기 이후로 그 문장에 맞는 일들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나 혼자 말이다. 그때는 그랬다. 어쩌면 살아가면서 그런 일이 또 생긴다면 나는 그때의 나를 기억하며 역시, 맞았어. 하며 나의 생각이 틀림없었어.라고 내 스스로의 삶을 단정 짓고 틀을 세워 어리석게 사는 시간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은 계속 변화되고 사람의 생각은 언제나 바뀔 수 있는 것이기에 쉽게 단정 짓거나, 생각을 굳게 하지는 않기로 한다.
삶의 지혜는 내가 세상을 넓게 보는 만큼 내게 주어지는 것 같다. 아흔 살 노부부를 보면 아직도 내가 내 삶에 대해 얼마나 못된 어린아이처럼 굴었는지 돌아보게 됐다.
노부부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하면서도 감정에 솔직했다. 보고 싶은 막내딸에게 바쁘면 자기를 보러 오지 않아도 된다며 전화를 끊고는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보고픔이라는 감정은 우리에게 주어진 감정중에 소중한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곁에 있어도, 곁에 있지 않아도 누군가를 기억할 수 있는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아름다운 감정인 것 같다.
하루가 한입 케이크처럼 사르륵 사라졌다.
또 사르륵 사라져 버릴 오늘, 이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어떤 보고픔을 간직할지. 내 힘으로는 붙잡을 수 없는 케이크 같은 시간들을 달콤하게 보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