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들 중 가장 애정 하는 것은 무언가를 오래 좋아하는 것 같다. 노부부의 소박한 상차림에도 서로가 마주 보고 있음에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마음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 유유하게 좋다. 좋아하는, 사랑하는, 때로는 슬픔일 수도, 아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아우러져 내 내면이 다듬어져 감을 느낀다.
60년을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었을까. 하지만 마지막까지 사랑하게 하는 것은 서로를 향한 오래된 마음일 것이다.
우리는 가족으로 만났지만 개인이기도 하다. 친구로 만났지만 여전히 혼자라 느낀다.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인연들이 애틋하게 따뜻하다.
슬프면서 행복하다. 우리가 또 만날 수 있을까?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면서도 가느다란 실타래가 천천히 풀어지듯이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가끔씩 예전 사진을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어릴 적 이라던지, 가장 즐거웠던 때에, 사진 속에는 내 어려움들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좋았던 시절의 모습만 남아있다. 사진이라는 것은 좋았던 기억만을 기억하게 해주는 묘한 재능이 있다. 사람이 아닌, 사물에게도 재능이 있다면 사진의 재능은 유한한 기록을 남겨준다는 것 같다.
언젠가는 사진 속 웃는 모습만 봐도 눈물이 찡했다. 이제는, 이제는 만나지 못할 사람들, 이제는 안아줄 수 없는 사람들. 여전히 사진 속에서는 나와 함께 한다. 내 기억 속에, 내 마음속에 같이 산다. 그때는 말하지 못했다. '내 사람이어서 고마워. 사랑해.'라는 말을 못 해서 애가 타는지 모른다.
요즘은 별일이 없어도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한다. 아직은 쑥스러워 사랑해라는 말은 잘 못한다. 하지만 이것도 어느 날엔 후회가 될지 모른다. 그러니 할 수 있다면 자주 해보려고 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나에 관한 것은 다 잊은 줄 알았는데 기억하고 있었다. 못난 내 모습이 미워 떠난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상처 났던 과거에 우리들을 서로가 안아줄 수 있을 만큼 자라났다는 것이 신기했다.
여전히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지만 전과는 또 다른 편안함이 느껴졌다. 사실 요즘에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조금 두렵게 느껴졌다. 아직은 내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긴장하고 불안한 내 마음을 추스르는 시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이겨내기 위해서 열심히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내 자신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다고 느끼지만 전보다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내가 느끼고 있다는 것이 나름 좋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아직 큰 안정감을 필요로 한다.
내가 채울 수 없는 이 반쪽 같은 마음을 채워줄 무언가를 기다리느라 지체되는지도 모르겠다.
상처를 주는 것도, 치유를 해주는 것도 사람이다. 누군가 때문에 죽을 것 같다가도, 누군가로 인해 위로받고 치유받는다. 그러기에 누군가를 위한 행복 자체가 되어주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이들에게 밝고 행복한 기운을 전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곁에서 지겹도록 행복하게 해주는 것. 그것이 아픔이 많은 이들을 치유해주는 약인 것 같다. 상처 난 곳에 계속해서 연고를 바르듯이 말이다. 아물 때까지 지켜봐 주고 약을 발라주는 것.
상처 난 사람이 치유받고 나면, 상처 입은 사람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그러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연고를 건네줄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위해 살아가는 것 같다.
무언가를 오래 좋아하는 것만큼, 사랑하는 것만큼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어느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한 겨울에 반팔만 입고 다니던 건장한 청년이 무릎이 시려 내복 없이는 겨울 산책을 나설 수 없는 중년 남자가 되기까지의 시간들 속에서, 제가 마주친 끊임없는 재발견과 재발명이 없었다면 우리의 관계는 일찌감찌 파탄 났을지 모릅니다.'
같은 사람과 여러 번 사랑에 빠지는 일. 한 사람만 오래오래 사랑할 수 있는, 그 모습 자체로 너무 좋다.
몇 년 전 처음으로 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이렇게 썼다. '사랑에 이토록 서툰 내가, 결국 사랑 때문에 또 다시 살아간다.
내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사랑하기에. 가족, 꿈, 책, 그림, 음악, 길가에 핀 꽃, 나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이렇게 가득하다. 그러니 두렵지만 오늘도 살아. 사랑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낼 수밖에.' 나는 아직도 이 마음이 여전하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삶을 더욱 진실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