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짓는다는 것은

by 서울경별진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처음 글을 쓰게 됐던 때도 집과는 먼 거리의 출퇴근길에 노래를 들으며 걷다가 생각나는 것들을 적기 시작한 것이 첫 시작이었다.


글을 쓰게 된 계기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스무 살 초반 즈음에 누군가가 내게 글을 써서 어딘가에 올리면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을 것 같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 말을 들은 지 7년이 지나서야 SNS를 시작하게 되면서 간편하게 내 글을 올릴 수 있게 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글이 제일 잘 써질 때는 야근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10시가 넘으면 집으로 들어가는 버스가 끊겨서 20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그 밤공기를 맞으며 달을 보며 걸으면 없던 감성이 올라오고는 했다. 그때는 내가 참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집으로 가는 동네 밤거리는 너무 좋았다. 미용실 앞 계단에 나란히 놓인 화분이 그대로이고, 도로 옆 빌라 난간에 무성히 핀 장미꽃도 그대로, 밤하늘의 별도 달도 항상 그대로였다.


그대로 있는 것들이 주는 마음의 평안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것 같다. 그 마음의 안정이 내게 은은하게 위로가 되어 닿으면 나는 그것들을 글로 적었다. 나만의 언어로 보이지 않던 위로를 보이는 위로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항상 글이 잘 써질리는 없다. 어떤 때는 정체기 마냥 글이 잘 써지지가 않았다. 책을 쓸 때는 과거의 사연 많은 나를 탈탈 털어내기 위해 퇴근 후 한 달을 밤을 새우며 글로 적었다.


그땐 정말 내가 꼭 정식 작가가 된 것 같았다. 언젠가는 멋진 작가가 되기를 꿈꾼다. 어쨌든 나는 걸으면서 소재를 얻는 편인 것 같다. 하지만 급격한 피로와 무기력증으로 한동안 걷기를 쉬었다. 그랬더니 글을 쓰는 것도 어려워졌다.


누구나 어떤 루틴과 방식으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하는 것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그게 걷는 것 같다. 나는 걷는 게 좋다. 걸으면서 글까지 쓸 수 있으니, 나는 계속 걸어야 할 것 같다.


걷는 건 마치 인생과도 같은 것 같다. 살아갈수록 내게 더 좋은 것들을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걷는 것은 큰 운동신경을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운동을 잘 못하기 때문에 걷는 게 더 잘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체력이 안 좋아서 한 시간 이상은 못 걷는다. 아빠는 아플 때 건강을 위해서 등산을 자주 갔다. 나도 아빠 따라서 가끔 등산을 갔다.


우리 가족은 산을 좋아하는 것 같다. 식물이나, 푸르른 것들 말이다. 가끔 걸으면 한동안 걷지를 않아서 숨이 너무 많이 찼다. 최근에 산 사이클로 2주 정도 3-40분씩 운동을 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 어제는 1시간을 걸었다. 조금씩 시간을 늘려가는 재미가 있다.


그렇게 노을이 지는 어느 날, 어떤 시간에 음악을 들으며 문득 바닥을 보는데 그 긴 거리의 보도블록이 지그재그로 맞춰져 있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계로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이 긴 거리를 어떻게 다 하나씩 끼워 넣었을까.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집을 하나씩 보며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여러 가지 생각이 빠졌다. 집에 대한 생각, 누가 이 집을 설계했을까, 누가 이 건물을 하나씩 쌓았을까, 저 조형물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등등 말이다.


걷고, 또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생각이 넓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과거를 갔다 올 수도 있고, 현재를 정비할 수도 있고, 미래를 향해 갈 수도 있다.


비포 선셋이라는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책을 쓴다는 건 무언가를 짓는 것 같아.' 나는 이 말에 공감했다. 하지만 그 보도블록을 보면서 이 말이 꼭 책을 쓸 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항상 계획을 먼저 세운다. 계획은 다 그렇듯이 기본적인 것부터, 첫 단계부터 세운다. 그리고 계획이 완성되기까지 그 일을 하고 완성 단계까지 가서 끝낸다. 그런 것들을 생각해 봤을 때 일을 하거나, 여행을 갈 때, 글을 쓸 때 등등 항상 무언가를 짓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스무 살에 다녔던 회사의 대리님이 가끔 직원들에게 '좀 건설적인 생각을 해.'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사람은 항상 무언가를 지으며 살아가는 것 같다. 건축가만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항상 무언가를 짓는 것이다.


쉽게 생각해서 흔히 쓰는 표현 중에 하나가 '밥을 짓다.'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다른 시각으로 넓혀 본다면 생각일 수도 있고, 계획일 수도 있고, 공부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것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계속 쌓아가고 튼튼하게 완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멋지고 튼튼한 집이 완성되는 것처럼,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계속해서 하는 것 같다. 그것이 끝날 때까지.


그 길고 긴 보도블록도 벽돌 하나하나 내려놓으며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더라도 결국 완성하고 끝냈던 그 누군가를 생각하며, 완성될 때까지 계속해 나가는 것.


그러다 혹시라도 잘못 지었다면 다시 지으면 된다. 벽돌이 뒤집어졌다면 제자리로 다시 맞추면 된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오래 지어갈 나를 위해 충분한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것이 완성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여러 가지를 짓고 있다. 이미 완성되어 끝난 일들도 있다. 무언가를 완성하고 나면 내게 남는 것들이 보이지 않는 내 자산이 되는 것 같다. 나만이 보유한,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새로운 무언가를 다시 시작한다. 또는 계속 진행 중인 것들이 있다. 글을 쓰는 것, 꿈을 꾸는 것, 여행을 가는 것, 늙어가는 것 등등. 사람이 마지막까지 제일 멋있고 큰 건물을 짓는 것은 아마 늙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세월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지어낼 수 있을지, 그리고 마지막 완성을 어떻게 끝낼지를 생각하면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한번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오늘 어떤 것을 지을까. 그것이 삶이라는 건설의 시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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