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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계엄령. 그러면 우리 보도자료는?

일 생각이 가장 먼저 나 버렸다

by 보회미안

어젯밤, 영화에서만 보던 일이 일어났다.


“비상계엄”

뉴스 자막에 뜨는 저 네 글자를 네이버에 수없이 검색하고 사전적 의미를 아무리 봐도. 도무지 물음표만 남았다. 내가 알고 있는 그게 맞나 싶어서. 저거 진짜야?


평소 눈팅만 하는 익명 오픈 카톡방(업계 홍보인들, 기자들이 모여있는)이 쉴 새 없이 울려댔다. 계엄사령부 포고령이 돌았다. 그중 가장 눈에 들어온 문구,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기자들은 당연히 직격 타고 홍보 역시 당장 내일 닥친 일들(보도자료 배포나 기자 간담회)을 우려하기 바빴다. 나 또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아 그럼 당분간 예정된 보도자료 배포는 어떻게 하지? 그럼 기획기사는 당분간 피칭 못하나? 내일은 언론사 행산데 이건 어떻게 되는 거지? 따위의 것들이었다.


일 생각이 가장 먼저 나는 게 여러 가지 복합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싫기도 하면서 좋기도 했고 별로였다.


동시에 묘한 소속감도 들었다.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이 사회의 현상이 내가 하는 일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게. 꽤나 내가 이 사회에 흡수 돼 있는 구성원이구나 라는 아주 당연해 보이지만 어떤 이에겐 당연하지 않을 수 있는 어떤 사실에 대한 인지와 함께.


오늘 아침 출근길에 출입 기자들의 연락이 왔다. 우리 회사의 산업군은 큰 영향이 없는지, 앞으로의 전망은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문의들이었다. 평소처럼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고, 나는 나의 일을 했다. 하루는 또 바쁘게 흘러갔다.


어제는 모두가 두려움에 떨었지만 날이 밝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할 일을 한다. 어쩌면 모두가 제자리에서 자기 일을 하는 이 일상이, 제일 어렵고도 귀한 걸지도 모른다.


어제 그 순간에도 재택을 잠깐 기대했던 나 포함 많은 회사원들이 오늘 아침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피곤한 출근길에 오르며, 출근은 싫지만 그래도 아무 일 없이 출근해 다행이라는 안도를 했을 것이다. 또 열심히 일을 해내고 퇴근 시간이 되어 같은 마음을 지닌 회사원들과 지하철에 함께 몸을 싣고 뉴스를 연신 봤겠지.


단 6시간의 소동으로 끝난 듯하나 그 여파는 클 것이고 깊게 파인 상처처럼 회복은 느릴 것이다. 나 또한 일상의 무탈함의 대해 곱씹었던 어제의 그 감정과 기억이, 아주 길고 느리게 오래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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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