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으로 출판해서 돈 벌어봐야,
다른 사업으로 버는 것에 비교할 수 없다.
그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뿐이다.
책을 쓰고 너무나도 출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김흥식 저자의 <출판사 하고 싶을 때 읽는 책>에서 읽은 한 구절이었다.
솔직히 아직 이 두 문장의 무게를 느끼기에는 내 경험이 너무나도 얕다. 이제 막 브런치에서 픽션 에세이집 하나 완성했는데, 출간을 여러 권 해본 것도 아니고 1쇄를 다 팔아본 것도 아닌데 주변에서 저런 이야기를 하니 ‘아 그런가보다’하고 머리로 이해하는 수준이다.
그래도 책을 내서 돈을 벌어 생활을 하는 것이 정말 어렵구나 피부로 와닿을 때가 있는데,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서점에 들어갈 때 수만 권의 책들이 A21, B47... 특정 섹션마다 빼곡히 분류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내가 저 수많은 책들 중에 하나의 책으로서 눈에 띄어야 돈을 벌겠구나 생각한다.
책은 쓰는 사람은 많은데,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해를 거듭하면서 심해지고 있다.
너도 나도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데 정작 읽어주는 사람이 없다. 2024년에 등록된 국내 출판사는 8만 개가 넘어가면서 2012년의 거의 2배가 되었는데, 독서 인구 비율은 60% 중반대에서 45% 내외로 주저앉아 버렸다.
오죽하면 모 문학평론가가 요즘 개나 소나 소설을 쓰는 사실이 개탄스럽다고 했을까. 그럼에도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계속해서 마음 한편에 해결하고 싶은 숙제처럼 나를 쿡쿡 찔러대고 있었다. 글로 먹고사는 일에서 최고가 되어도 그냥 적당히 먹고살 정도인, 그런 불구덩이 같은 업계에 나는 하루살이처럼 들러붙고 있었다.
지금은 책과 전혀 무관한 일을 하고 있음에도 계속 책 생각이 든다.
내가 살아왔던 흐름에는 늘 책이 있었고, 책 속에서 살아왔고, 누군가가 머리를 쥐어짜 내서 아주 세심하게 다듬고 다듬은 문장 하나하나를 천천히 음미하는 것은 크나큰 행복이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이 다른 관점들로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활자들이 마치 어깨에 스쳐 지나가듯이 감각을 공유하는 느낌은 늘 내 마음에 평온함을 주었다.
어린 시절 우울할 때, 혼자였을 때도 글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학창 시절 입시와 수능공부에 치이면서도 그 경쟁 속에 스트레스를 같이 견뎌주었던 시간들도 역시 글이었다.
대학교를 진학하고 나서 1학년을 보내고, 2학년, 3학년이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글 옆에 있었다.
정신없이 취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느덧 흘러가는 시간이 무뎌지고 있었을 때도, 내 가방 속에는 늘 책이 한 권 들어있었다.
지독하게 내가 글을 쫓아가는 건지, 아니면 글이 나를 뒤따라오는 건지 모를 정도로 글은 이미 나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글이 쓰고 싶어졌다. 글이라는 너무 좋은 친구가 있는데 그걸 나 혼자 알기 아까워서 주변 친구들에게 아낌없이 소개해 주고 싶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쓴다.
글을.
일기장에 혼자 보고 감춰두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삶을 툭툭 건드렸던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내가 살아가면서 스쳐지나왔던 글들과 소중한 기억들. 나를 성장시킨 글들에 대해서 하나씩 이야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