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제, 우리가 기다리는 게 뭔데?"
"하늘에 아주 예쁜 구름이 하나 지나가는 것." -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에서.
떠돌아다니는 아이.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라는 글을 만나기 전의 나의 유년시절을 한 줄로 요약하면 그랬다.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방황했다.
아버지가 돈을 벌어오는 외벌이 가족이었지만, 불안정한 아버지의 일 때문에 우리는 한 동네에 정착하지 못했다. 한 동네에 적응할 때 즈음에 2년 만에 이사 가고, 다른 동네에 정착할 때쯤에 아버지가 다른 곳으로 일하게 되면서 가족이 이동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우리 가족은 자주 거처를 옮기면서, 시원찮은 벌이를 가지고 생활비를 겨우겨우 쓰며 하루를 보냈다. 툭하면 돈 문제, 잦은 이사로 싸우는 엄마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외롭고 고된 전업주부 생활에 지쳐가고 있었고, 아버지는 매번 야근으로 11시가 넘어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나는 나대로 내 이야기를 할 여유는 없겠다 싶어 마음속의 문을 굳게 닫았다. 우리 가족은 각자의 지옥 속에서 허덕이면서 서로에 대한 이야기도 점차 나누지 않았다. 조용하게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었다.
정착하지 못하면서 계속 떠돌던 나는 학교 친구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면 그 관계는 이사를 가면서 흐지부지 되었다. 친하게 지내다가 멀어지다가의 반복이었다.
자연스럽게 다른 아이들과 떨어지게 되었고, 키가 작고 왜소했던 나는 덩치 큰 아이들의 왕따 대상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심심찮게 괴롭힘을 당했다. 짓궂은 아이가 던진 우유갑에 맞든가, 아니면 조용히 불려 가서 맞고 내 엄마 욕을 듣던가.
그런 관계도 결국에 내가 이사를 가면서 없어지기는 했지만, 내가 쌓은 인연들이 모래성처럼 쌓았다가 무너지는 모습이 반복되면서 나는 무기력한 감정을 학습하고 있었다. '나는 뭘 위해 살아가는가'에 대한 아주 강한 외로움이 터지기 직전 수도관처럼 차오르고 있었다.
어느 순간에는 혼자 있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어차피 아무도 남지 않고 혼자로 살아가게 된다면 나 혼자 고립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어디 구석에 틀여 박혀서 조용히 숨죽이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숨을 곳을 찾았다. 점심시간에는 도서관, 저녁에는 학교 근처 책방에 다른 또래 친구들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새로운 ‘은신처’에 들락거리는 생활을 반복했다.
자연스럽게 책에 친숙하게 되었다. 사서 선생님과 책방 아저씨하고 친해지게 되면서 이것저것 빌려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 날 학교 도서관에 꽂힌 파스텔톤 그림책이 눈에 띄어서 집어 들었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엉성하게 그려진 노랑머리의 하얀 피부 어린아이. 그 아이가 조그마한 라임오렌지나무를 껴안고 있는 삽화가 나의 눈길을 이끌었다. 나는 홀린 듯이 책을 빌렸고, 다른 친구들이 보지 못하게 조용히 책가방 속에 책을 숨겨 집으로 몰래 들고 왔다.
부모님은 또 평소처럼 싸우고 있었다. 돈, 직장,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어른들의 사정으로. 그날 무슨 일로 싸우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싸우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너무 무서웠던 마음에 내 방으로 숨어 들어갔던 것은 분명히 기억난다.
나는 내 방으로 숨어 들어가 그 엉성한 그림책을 펼쳤다. 그리고 제제라는 한 아이를 만났다.
어린아이였던 나보다도 더 심각했던 제제의 가족 간의 불화. 너무 찢어지게 가난했던 집안 사정으로 인해서 구두닦이를 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아이의 이야기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어느 날에는 제제가 가족에게 심하게 학대를 받기도 했는데, ‘뽀르뚜가 아저씨’를 만나게 되면서 진정한 ‘사랑’을 배우게 된다.
"사랑하는 뽀르뚜가!"
제제가 자신이 기른 라임 오렌지나무 ‘밍기뉴’에게 자신의 추억을 들려주며 ‘뽀르뚜가 아저씨’를 기억하는 이야기. 그리고 제제가 정말로 소중하게 여겼던 뽀르뚜가 아저씨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이야기.
사랑하는 뽀르뚜가...!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그 어린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어른이자 아버지, 뽀르뚜가를 잃고 결국 ‘철들었을 때’ 나는 너무 슬픈 감정이 올라와 눈물을 계속 흘리고 있었다. 부모님이 듣지 않게 몰래 훌쩍이면서.
내가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음에 대한 슬픔이랄까. 나 또한 누군가의 애정 어린 사랑에 위로를 받고 싶었던 걸까.
나는 제제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누군가가 떠나면 정말로 고통스러운 상처이자 그리움으로 남는구나. 그런데 내가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부모님, 내가 만났던 친구들은 ‘사랑’하던 사람이었을까? 제제가 진심으로 사랑하던 친구이자 아버지였던 뽀르뚜가 아저씨를 그리워할 때, 나 또한 그런 인연이 있었는지를 되짚어보았다.
나에게 처음으로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게 해 준 그 책은, 내가 아직 접하지 못했던 감정선과 경험들이 더 있지 않았을까라는 궁금증을 남겼다.
내가 피해서 도착했던 ‘은신처’들 속에 보물 같은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발견하면서 나는 점점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니, 사랑하게 되었다.
겨울이 왔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입학식이 다가오고 있었다. 책을 마음에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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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구름이 아주 이쁘게 바람을 타고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