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행복이라는 나비를 찾아서

by 서우
"Happiness is like a butterfly, the more you chase it, the more it will elude, but if you turn your attention to other things, it will come and sit softly on your shoulder.”

행복은 나비와 같다.
쫓을수록 따돌린다.
억지로 찾을 수 없으니,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말라.

- J. Richard Lessor. -

좋아하는 것을 계속 쫓을까, 아니면 잘하는 것을 할까.


고등학교의 나는 좋아하는 것을 쫓아가기로 했다. 거기에 행복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시기에 나는 큰 고민이 있었다. 내가 문과 학교로 진학할 것인가, 아니면 이과 학교로 진학할 것인가였다.


중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오면서 불안정했던 집안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집안도 조금 안정되다 보니 나도 학업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심적 여유가 생겼다. 공부를 하다 보니 나는 내가 수학에 강점이 있고, 국어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학은 전교권인데, 국어가 반평균도 못 들 정도로 한 번씩 바닥을 치는 모습을 보이면서 부모님이 생각하시기에는 내가 조금 더 가능성이 보이는 이과에 진학하는 것이 좋지 않으냐는 의견을 피력하셨다.


‘잘하는 것을 해라.’


지금 돌아보면, 부모님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 되도록이면 아들이 자신이 더 ‘잘하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거기서 경쟁력을 갖춰 좀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믿었을 거니까.


그러나 나는 고집을 부렸다. 좋은 인문계 학교에 진학해서 ‘인문학’에 대해서 조금 더 탐구해 보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 당연히 집안 반대가 꽤나 심했었다.


나는 그래도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문과로 가고 싶다고. 왜 그렇게 고집을 부렸을까 생각을 되짚어보면 결국 나를 움직이게 한 그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가 시초였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새벽에 그 파스텔톤 동화책을 꺼내면서 읽었던 그 "하늘에 아주 예쁜 구름".


그 순간 느꼈던 것은 단순한 감동이 아니라 언어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 자체였다. 구름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시선이 나의 시선이 되고, 그 황홀감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경험.


하늘에 아주 예쁜 구름이 밥을 먹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그 상황에서 느꼈던 황홀감이 잊히지 않았기에 나는 인문학을 너무나도 공부하고 싶었다.


‘못하더라도... 좋아하는 것을 쫓다 보면 행복이 있겠지.’


내가 강경한 의지를 보였다. 좋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자소서를 집에서도 한동안 붙잡으면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부모님도 그제야 '좋은 문과학교'로 나를 보내는 데에 힘을 실어줬다.


나는 적당히 괜찮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내 모교에서는 토론 수업과 논술 수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었다. 학교 친구들과 ‘안락사’ 문제나 전통적인 토론 주제들을 하나씩 들고 와서 머리를 싸매면서 토론을 진행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새벽에 밤을 새워서 리서치하고 자료를 준비했던 적도 많았지만 ‘좋아하는 것’을 하니 나름 행복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이 지나고 2학년이 되면서 한 등급씩 내려가는 모의고사 국어 성적과 내신 성적표가 ‘행복 서사’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3학년이 되어서도 그놈의 국어가 계속 발목을 잡았다.


아이러니했다. 나는 토론 수업을 즐겼고, 도서관에서 책과 함께하는 시간을 사랑했다. 하지만 정작 국어 성적은 형편없었다. 그 뒤떨어지는 실력이 좋은 대학 진학에 발목을 잡고 있었다. 시험을 위한 국어와 내가 사랑했던 책 읽기는 다르다는 것에 굉장히 현타가 왔다. 늦게까지 공부했음에도 반복되는 실망스러운 결과 때문에 체력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지친 상태였다.


유약했던 나는 무너져버렸다. 좋아하는 것을 쫓겠다던 나의 고집이 현실 앞에서 힘없이 꺾이고 있었다. 평가는 계속되었고, 나는 타협을 배웠다. 결국 잘하는 것으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수학 반영 비중이 높은 학교를 목표로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했다. 생활기록부에는 ‘경제 신문 스크랩 활동’, 관련 동아리 활동을 전면으로 세웠다. '통계'나 '경제'에 관심이 있는 학생으로 나를 포장했다.


사실 경제학에 특별한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속으로는 여전히 인문학을 그리워했지만, 현실적 여건을 고려했을 때 그것이 최선의 선택으로 보였다. 어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재포장하고, 진짜 원하던 것들을 가슴 깊이 묻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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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학교 도서관에 갔다. 고등학교 내내 학교 도서 정리 봉사활동을 했었는데, 봉사활동 시간에는 학교 친구들이 없는 저녁에 도서를 정리해야 했기 때문에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었다.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도서관 햇살은 따스했다. 반납대에 쌓인 책들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나는 다른 친구들이 밑줄로 남긴 고민을 엿보고는 했다.


어느 날에는 서재를 정리하다가 눈에 밟히는 제목이 있어 하나 살펴보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었다. 책을 정리하기 위해서 잠시 스르륵 넘겼는데, 누군가가 밑줄이 쳐져 있던 한 문구가 들어왔다.

"하루 동안 의도적으로 자연처럼 지내보자."

‘자연처럼.’


흘러가는 대로 산다. 자연처럼.


인문학에 대한 열망과 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문과에 진학했지만, 결국 현실 앞에서 타협해야 했던 내 모습. 그럼에도 지금 있는 환경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즐기는 모습. 혹시 이것이 소로가 말한 '자연처럼' 사는 삶일까?


나는 결국에는 현실에 내 이상을 타협하는 상황에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내 이상을 너무 고집을 부렸던 건 아닌가 되돌아보았다.


고집을 부리고 살았던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내가 '행복'이라는 나비를 쫓아가서 잡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 속에서 계속해서 달려갔던 것은 아닐까. 좋아하는 것을 쫓는다는 명분으로 현실을 외면했던 건 아닐까. 나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행복이라는 나비는 쫓을수록 멀어진다는 것을.

어쩌면 자연처럼 흘러가는 대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계로 진학하고, 어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사이를 줄타기하는 마음은.


좋아하는 것,

행복이라는 그 자체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 행복이라는 나비가

비로소, 내 어깨에 살며시 내려앉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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