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그냥 쓰기, 그냥 읽기 (完)

by 서우
‘당근~!’

중고장터에서 책이나 수필집 알림 문자가 온다.


중고 서적을 구매하는 것. 최근 나의 소소한 취미이다.


한창 시나리오와 에세이에 빠져 당근이나 중고나라에서 괜찮은 매물이 있으면 택배로 책을 받곤 했다.


그날도 유난히 공허했던 마음을 어느 누군가가 적어둔 이야기로 달래고 싶어 시나리오집을 뒤적이다가 <나의 아저씨> 대본집이 매물로 나온 걸 발견했다.


구매 버튼을 눌렀다.

며칠 뒤 아주 좋은 상태의 대본집이 왔다.


판매자는 '덤'으로 책 두 권을 더 넣어 보냈다.


일에 치이고, 다른 일에 신경 쓰다 보니 막상 대본집은 펼칠 시간이 없었다. 분량이 600페이지가 넘다 보니 각 잡고 읽어야 하는데... 그럴 만한 마음도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책상 서랍에 고이 보관하다가 어느 날 몸이 좋지 않아서 연차를 내고 덩그러니 방에 혼자 누워 있는데, 그분이 보낸 '덤'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 MBC 라디오 프로듀서의 이야기였다.


취업을 준비하던 20대 청년 시절 여러 번 시도하다 번번이 실패하고, 다른 진로로 틀었다가 배짱으로 넣은 지원서에 덜컥 합격하게 된 이야기. 우연히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그냥' 하다 보니 이루어졌다는 이야기.


'그냥.'


덤덤하게 쓰인 그분의 글을 스르륵 읽으면서 '그냥'이라는 말이 계속 눈에 밟혔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계속 문을 두드린 태도를 '그냥'이라고 압축한 것을 보면서, 누군가가 이루어낸 우연도 결국 밑에는 부단한 노력과 고민이 있었고, 그 결실을 삶의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냥'이라고 표현하는 듯했다.


'그냥.'


그 판매자도 나에게 '그냥' 책 두 권을 덤으로 넣어준 것이었을 것이다.


구석구석 메모와 밑줄이 그어져 있던 책. 그분도 본인만의 어려운 삶과 문제를 위해 부단히 고민하고 노력했으리라. 그렇게 우연히 내 손에 남겨진 책이 이 MBC PD의 이야기를 보게 되는 인연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시간을 중히 쓰세요. 늘 젊은 게 아닙니다." - <누운 배>, 이혁진 저, p93


나에게 남겨지는 오늘들은 결국 돌아오지 못하는 어제들이 될 것이고, 가장 젊었던 순간들로 기억되며 남아 있겠지.


페이지를 하나둘씩 넘기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그냥' 건넬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내 오늘들을, 가장 젊었던 이 순간들을 기록하기로 했다. 언젠가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자기 삶의 '그냥'을 돌아보게 된다면 좋지 않을까.


글을 쓰면서 가장 젊었던 순간들을 기록하기로 다짐했다.

이전 09화#09. 글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