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 이사 끝에 얻은 자산 철학
“엄마는 왜 그렇게 힘들게 열심히만 살아?“
어릴 적 내 머릿속엔 항상 이 물음이 맴돌았다.
나는 초등학교 때 고모네 가족과 함께 10명이 30평 아파트에서 우리 가족 네 식구가 방 하나를 쓰며 1년을 살았다.
엄마는 우리를 위해 밤낮으로 일을 하시느라 엄마와
함께한 시간이 부족했고 나는 늘 엄마가 그리웠다.
아직도 어렸을 때 그 기억은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빠는 은행 지점장이셨지만 IMF이후 은행이
없어지면서 명예퇴직하신 후,
무너진 자산을 회복하지 못하셨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결핍을 겪었던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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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은 이천 땅을 팔아서 나를 뉴욕 어학연수에 보내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땅은 SK하이닉스 호재로 몇십 배가 오른 땅이다.
나는 이후에 확신했다.
“우리 부모님은 열심히 살았지만, 자본주의를 몰랐다.”
그게 나의 첫 번째 자산 철학이었다.
열심히만 사는 것으론 부족하다.
자본주의 시대, 돈에 대해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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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이사만 다섯 번 했다.
전세난과 아이 둘의 출산을 거치며,
2016년에야 첫 집을 샀다.
송파의 30평대 구축 아파트.
주변에선 “왜 지금 집을 사냐”는 말도 있었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현금은 가치가 떨어지고, 부동산은 지켜준다.”
내 직관과 공부의 결과를 믿었다.
2019년엔 더 나은 집으로 옮겼고,
2023년은 내가 발령받은 회사 근처로 눈을 돌렸다.
‘강남은 무리야’라며 주저했던 나를 움직이게 한 건,
대치동의 교육 인프라, 재건축 구축아파트의 잠재력,
그리고 “지금 아니면 못 산다”는 절박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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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대치동 구축 아파트를 매입했다.
소송 리스크가 걸려 가격이 눌려 있던 시점이었다.
누군가는 피했지만,
나는 기회는 불확실성 속에 있다는 원칙을 믿었다.
그리고 지금,
집은 시세가 꽤 올랐다. 내가 급여소득으로 10년을
안쓰고 벌어야 하는 금액 만큼.
앞으로 시간의 복리가 쌓여 더 가치가 오르리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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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나는 소비를 잘 절제하지 못하고,
월급만으로는 절대 자산을 못 모으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래서 나는 강제성을 활용했다.
주택담보대출은 내 적금이었다.
레버리지를 부정하지 않았고,
현실을 인정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선택했다.
그리고 실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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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나의 보금자리를 거점 삼아
더 큰 꿈을 꾼다.
뉴욕, 자산의 세계화,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것.
이건 단지 ‘돈’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