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김상현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자주 새로운 것을 탐낸다.’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를 오랜만에 펼쳐든 나는 첫 문장을 읽음과 동시에 머리가 멍해졌다. 때문에 내 시선은 뒷 문장으로 이어가기보다 그저 그 문장에 오래도록 고정되었다. 단 한 문장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전엔 이 문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하는 생각에 잠시 고개를 들었다. 뒤늦게 들어온 글의 제목은 ‘실수’였다. 그런데 자꾸 ‘욕심’이라고 읽히는 건 왜일까.
새롭게 떠오르는 기억에 갑자기 눈동자가 흔들렸다. 장소를 되짚어 생각해 보건대 아마도 3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친척집에 놀러 간 나는 하필 사촌 언니의 하나뿐인 바비 인형이 진심으로 탐났다. 공들여 빗질된 머리에 예쁜 옷을 입고 먼지가 쌓이지 않게 소중히 보관된 그 인형은 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은 탓일까 너무나도 빛나보였다. 사람이 애착을 가지는 물건은 그렇게 빛나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헤어질 때쯤 나는 갑자기 언니에게 그 인형을 달라고 떼를 썼다. 결국 언니를 울리고 어른들께 혼나고 나서야 끝이 났던 이 부끄러운 기억은 아직도 조각조각 남아 나의 양심을 찌른다. 나 인형들도 분명 언니처럼 소중히 대했다면, 그렇게 빛이 날 수 있었을 텐데. 진정한 아름다움은 겉이 아닌 속에서부터 나온다는 걸 깨달은 건 성인이 되고도 한참 후의 일이었다.
학창 시절부터는 내가 원하는 것을 직접 쟁취하는 쪽에 가까웠다. 부모님이 장난 삼아 내기라도 걸면 악착같이 공부해서 기준보다 훨씬 웃도는 성적을 자랑했고, 반드시 내 것으로 만들었다.(지금은 교육자의 입장에서 절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간 대비 효율을 중요시 여기는 성격 탓에 내 효율에 보탬이 된다면 반드시 가지려 했고 특히 핸드폰, 마이마이 등의 전자 기기를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기억이 난다.
놀랍게도 현재까지 전자 기기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다. 최근의 나는 핸드폰, 태블릿, 노트북을 두 개씩 가지고 있다. 제조사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처럼 최신의 것을 욕심내고 가지려고 하기보다는, 다소 성능이 떨어지더라도 내가 가진 것을 이용해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가 사용하려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만 하다면, 고장 날 때까지 떨어뜨리지 말고, 배터리 충전과 방전에 더욱 신경 쓰고, 언제나 새것처럼 닦으며 아끼는 마음으로 사용한다.
언젠가 재테크 책에서 나의 인식을 바꿔놓았던 문구가 떠올랐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돈을 버는 것만큼 낭비하지 않는 게 중요하며,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물건을 소중하게 쓰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요지의 내용이었다. 처음 그 책을 읽으며 받았던 충격과는 다르게, 지금의 나는 어느 정도 이 문구를 지켜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필요하다면 구입하되 아껴 쓸 것, 같은 용도의 물건은 여러 개 사지 않을 것, 충동적인 구매를 하지 않을 것. 최근의 내가 물건 구입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세 가지이다. 덕분에 옷의 개수를 최소한으로 줄였고, 물건을 더 사기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노력한다.
새로운 것을 탐내는 수많은 '실수'를 저질러오던 나. 이런 내가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 자신만큼은 스스로 바꿀 수 있다 믿는다. 이제 실수에서 벗어나 나의 물건들, 나아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하는, 후회 없는 삶을 살고자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