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중한 관계일수록 멀어지는 법을 배워야 했다

소중한 친구와의 마음 속 이별을 앞두며

by 지니북

“일상 연락을 하는 일이 솔직히 버거워.”


거의 매일 같이 연락하던 나의 20년 지기 친구가 최근 나에게 남긴 카톡의 시작 부분이었다. 분명 계속된 고민 끝에 남겼을 이 말에 도대체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리고 솔직한 나의 마음은 잠시 넣어두고 담담하게 말했다. 괜찮다고, 이해한다고. 친구는 직장인이었다. 그러니까 휴직 중인 나와 매일 카톡을 하는 일이 충분히 버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하나 더 있었다. 나는 다른 친구들에게 쉽게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이 친구와 충분히 나눴다. 그러니까 대화 주제가 가벼운 일상보다는 깊고 솔직한 인생 이야기였던 셈이다. 나는 마음공부에 관심이 많았던 시기였고, 그 주제가 충분히 무거울 수 있었다.


“그럼 일상 대화 말고, 말하고 싶은 주제가 있을 때만 이야기를 하자.”


그게 우리가 고민 끝에 내렸던 결론이다. 하지만 그 뒤의 대화는 아주 간간이 이어지고, 쉽게 끊어졌다. 대화할만한 주제에 해당되는지는 누가 정하는 걸까. 소심한 나는 그 뒤로 하고 싶은 말들을 거의 다 뒤로 삼켰다. 매일 하던 카톡은 이제 일주일에 1번도 있을까 말까였다. 시간을 갖기로 한 연인들의 기분이 이렇게 허전하고 고통스러울까 싶었다. 함께 나누면 배가 될 기쁜 일들이 한 마디의 언급도 없이 사라져 갔고, 가족만큼 서로에 대해 알고 있었던 우리 사이도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일상 대화를 중단하기로 한 것도, 함께 말할 수 있다는 게 기뻐서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잔뜩 꺼낸 것도, 자주 연락한 것도. 모두. 모두. 전부. 그럼에도 어떤 말도 친구에게 번복하지 못했다. 그랬다가 남아있는 연결 고리마저 끊어질 수 있다는 공포감이 자리 잡았다.


친구에 대한 감정이 닫힌 내 마음에서 넘쳐흘러 모닝페이지를 적셨다. 매일매일 후회와 자책과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그럼에도 억지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멀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내용만 계속해서 종이에 적었다. 생각보다 나는 소심했다.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그 가족과 같은 내 친구가 너무 소중했다. 게다가 생각할수록 친구가 나에게서 상처를 주지 않고 멀어지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사실 나는 유독 내 또래와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편이다. 사춘기 시절부터 그랬다. 그래서 이번에도 어떻게 애착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의 기분으로 온 힘을 다해서 좋아한다는 표현을 해버렸던 게 아닐까 싶다. 더 조절했어야 하는 게 했는데. 복합적인 감정들이 내면에서 끓어 넘쳤다. 다시 함께해 준다면 그때는 정말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 보겠다고 다짐한다. 계속해서 기다려보자고 결심한다. 힘듦을 참고 나와 함께해 준 20년의 기간을 나는 헛되이 하고 싶지 않다. 친구를 놓는 게 아니다. 이 관계를 살짝 내려놓아보려는 것뿐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나에게 손을 내밀어줄 때 분명 더 괜찮은 내가 그 손을 잡을 수 있도록 지금은 나를 준비시키는 시간으로 삼으려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당신은 유행을 따라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