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나쁜사람 0명, 외로운 사람 1명

by 서연희

원래 퇴근 후 데이트를 약속했던 날이지만 내 몸이 안좋아서 쉬겠다고 한 날이었다. 컨디션 난조에 요즘들어 미운 그와 화기애애하기도 어려울것 같았다.


「좀 일찍 퇴근하 중」

4시쯤 그의 갑작스런 이른 퇴근소식에, 내심 이 안좋다하는 나를 걱정해 잠시라도 들리려는건가 기대를 걸지만, 그 이유로 일찍 퇴근하는건 아니었다.


「일해야하는거면 가고, 아니면 나한테 와라아.」

「다 못끝내서 집 가서 마저하게」


요즘 우리 사이에 감돌던 냉랭함을 녹여볼 기회인데 '눈치가 없는건가' 아니면 '마음이 없는건가' 싶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진짜 바쁜가보다' 고 생각했다.


「집 도착! 좀 쉬었다 다시 일해야지」

곧이어 집에 도착했다는 메세지에 망설임 없는 그의 행선지가 못내 서운했지만, 퇴근아닌 퇴근 후 재택근무를 이어가는 그가 안쓰럽기도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나도 퇴근 후 침대로 쓰러지자, 참았던 열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약간 몽롱한 상태로 그와 연락을 하다 잠이들었다가 핸드폰을 봤다.


동네에서 친구네 커플을 만나 저녁을 먹 온다는 연락이 와있었다. 아파서인지 서운함이 두배로 몰려오다 이내 짜증이되었다.

'단히 밥만 먹고 올거 아니면서.'

따져봤자 뭐라고할지 알아서, 입씨름하느니 차라리 잠을 택했다.

기분이 썩 안좋은 채 잠들어서인지 아파서인지 한참 끙끙 앓다가 겨우 깨서 휴대폰을 봤더니 3시간이 지나있다.


생각보다 많이 잤네. 이젠 집이겠거니 하고 휴대폰을 열었으나 그에게선 집에갔다는 연락이없다.


「집 갔어?」

「아직, 얘기좀 하게 됐네. 좀 자고나니 어때?」

「더 안좋아...」

「코로나인가? 자기 진짜 너무 아프면 말해」

「왜?」

「내가 가야지.」


행여나 내가 진짜 부를까 마음 한 구석에 귀찮음을 숨긴, 위선같은 그 문자에 답을 않고 있으니 잠시 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침이 나서 말을 못 이어가자 그가 안쓰러워하며 걱정한다. 그러나 강서구에서의 걱정은 마포구에 있는 나에게 닿지 못했다. 진짜 아프면 말하라는 말을 반복하는 그에게 너무 화가났다.


“바쁘다며. 일이 많다며. 그래서 일찍 퇴근했어도 나한테 못들르고 집에 가서도 계속 일한다며.”


“진짜 바빠, 집와서 계속 일하다가 저녁 먹으러 나갔다가 이야기가 길어졌어.. 저녁은 먹어야할거 아니야. 이제 곧 들어가서 또 새벽까지 일 할거야.”


“어차피 새벽까지 일할거였으면, 저녁 먹는데에 3시간도 넘게 쓸 여유되는거면, 나한테 들러 볼 수도 있는거잖아.”


“일하다 저녁먹으러 동네 나갔다가 좀 길어진거야. 다시 들어가서 집중할 수 있는거랑 아예 너네 동네로 가는거랑은 다르잖아..”


“그럼 오지도 않을거면서 자꾸 진짜 아프면 말하라는 둥 간보지 말라고. 열받으니까.”


“...솔직히 지금 심각하게 아픈거 아니잖아, 몸살기운이잖아. 가서 뭐해, 그냥 너 아픈거 지켜보고있어?”


천년의 사랑도 식는다는게 이런 느낌일까.

나는 더이상 화가나지 않았다.

비참함에 가까울까, 아니 비참할 가치도 없다.


'심각하게 아픈거 아니잖아, 내가 가서 뭐해, 그냥 아픈거 지켜보고있어?' 쓰리콤보가 명대사로 영원히 내 가슴에 남았다.

우린 가족이 될 수 없다.


“야. 심각하게 아픈거면 니 아니라도 와줄 사람 많아. 니 말 알겠으니까 연락하지마."


'야', '니' 이런 호칭은 내가 정말 화났을때 튀어나오는 좋지못한 습관이다.

그도 이때부터는 감정적으로 받아치기 시작했다.


"이럴거면 처음부터 그냥 오라고 해. 바쁘면 안와도 된다느니 선택지를 주지를 말라고."


"바쁘면 안와도 된다했지, 어쩔수없으니까. 일은 중요하니까. 근데 친구만나 맥주마실 3시간은 있는데 나한텐 못오는건 그냥 니가 오기 싫은거잖아."


"안만나기로 했으면,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는 내 권한이야."


우린 종종 내가 아플때나 그를 보고싶어할때, 그가 만나러오기를 뭉그적 거릴때가 있어 다투곤했다.

마침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이유로 다퉜고, 나는 아플 때 혼자있보다는 그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특별한 간호가 아니라도 걱정어린 시선으로 나를 체크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데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 웬만하면 옆에 있으라고도했다.


그는 본인은 오히려 아플 때 누가 옆에 있는게 신경쓰이고 불편하기 때문에 혼자 두면 좋겠다고했다.

그는 간호가 마땅찮은 아픔을 지켜보러 오기위해

상대가 감내야하는 불편함, 견뎌야하는 피곤함을 핑계로 치부하는 것은 이기적이라 말했다.


그런데,
본인이 아플 때 내가 곁에 있는 것도 귀찮고, 내가 아플 때 본인이 내 곁에 있는 것도 귀찮다면 우리는 왜 연인인걸까?


"됐어. 어차피 같이 살면 늘 붙어있으니까 아플때 오네마네로 싸울 일도 없어. 그만 싸우자."

그는 결혼하면 해결될 문제라며 싸움을 종결하려했다.


그 '같이 산다'는 날은 언제 오는걸까.

곁에 있어주고 간호해주는 법을 모르는데, 한 집에 있으면서 아픈게 더 외롭지는 않을까?
누가 맞고 틀린게 아닌 성향의 차이지만, 나쁜 사람은 없는데 나만 외롭다.


“네가 좀 더 강하고 단단해졌으면 좋겠어...난 하루를 너의 걱정으로만 보내고싶지 않아.”


그래, 온실 속 화초처럼 약하고 보호해줘야할 것 같은, 너와는 너무 다른 나에게 평생을 거는 것이 너에게도 쉬운일은 아니겠다.


그런데 나도 살던대로 온실 속 온도를 유지해 줄 사람을 찾아 떠나는 편이 낫지 않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제 3장. 그런거면 너랑 진작 헤어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