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으로 2-3년되는 저연차에 서울에서 자취를 하는 우리 둘 다 수중에 돈이 없었다.
양가 부모님의 노후를 걱정할정돈 아니지만 그렇다고 서울에 집 한 채를 줄만한 사정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인생을 걸며 '우리 작게 시작하자.'며 손을 맞잡았다.
딸 하나 가진 나의 부모님은 응당 안정적인 상대와의 결혼을 바라왔으나, 서울에서 우리의 시작은 불안정하고 조촐해야할 것이 뻔했다. 어쩌면 서러움도 있을지 모르는 결혼이었으나, 별다른 반대는 하지 않으셨다.
"엄마아빤 결혼 재촉할 생각 없고, 안해도 상관없어. 네 선택이야."
엄마아빤 항상 그랬다.
본인들이 바라시는 방향으로 이끌어보려 하시다가도, 결국엔 핸들은 나에게 주셨다.
결혼도 그랬다.
딸이 10년 만난 남자가 아닌 '딸을 10년이나 만난 남자'에 대해 더 알아보기로 하실뿐이었다.
"너랑 평생을 함께해도 괜찮을 남자같아?"
"엄마아빠만큼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사랑을 주고 울타리가 되어줄만한 사람이야?"
엄마아빠의 배우자 자격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갑자기 주춤했다.
10년을 연애하고도 5년을 더 보고 결혼하자던 남자랑은 헤어지는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내년에 결혼하자는 이 남자랑은 Go가 맞는걸까?
분명 [마침내] 프로포즈까지 받은 이후인데, Yes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애인을 보는 눈이 엄격해졌고 싸움이 늘었다.
하나하나 지적하고싶은 것들이 보였다.
퇴사한 후 고가의 노트북 구매를 고민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고, 다음스텝을 위한 준비가 아닌 해방감과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은 불안감을 피웠다. 그 또한 그냥 져줄법한 언쟁도 그냥 넘어가는법이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의 결혼 준비는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가장 큰 고민은 '신혼집'이었다. 그가 재취업 전이라 대출도 미지수였고, 대출을 받더라도 전세사기가 극성일때라 계획을 세우기가 막막했다. 월세를 내더라도 반전세도 생각해보자, 우리가 가진 현금을 모으면 그래도 대략 -
"어?"
모였을거라 예상했던 금액 중 약 1000만원 넘는 돈이 비었다.
"왜 이렇게 현금이 비어?"
어디 주식에 넣었나 불안했다.
"퇴사하고는 퇴직금으로 생활했으니까... 아무래도 그 돈을 썼지."
남아있던 할부가 끝나고부터는 더 많이 저축하기로 약속했던 시점에 오히려 그는 퇴사를 했으니, 마이너스가 되고있었던 것이다.
"그래도...자기 퇴사한지 이제 3개월차인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큰 금액이 비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그간의 지출 내역을 물었고, 그는 자신이 사치한 것 없이 그저 생활을 했을 뿐이라며 답답해했다.
"난 내가 생활하면서 나가는 돈을 의논해서 써야한다거나 결혼에 필요한 비용이라고 생각안했어."
대체 어떻게.
더 적은 월급에 더 비싼 월세를 내면서도 '우리'의 결혼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차곡차곡 모여가는 통장을 보며 기뻐했던 나는,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꼈다. 분노, 배신감, 외로움,
그무엇보다도 나의 부모님께 부끄러웠다.
나만 아등바등하는, 나만 간절한 결혼이었든, 경제관념이 없는 남자였든 내 선택이 잘못됐다는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
"어떻게 결혼을 염두하지 않고 돈을 쓸 수가 있어?"
"월급이 없으면 모았던 돈을 쓰는건 당연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럼 이직을 서두르던가 그걸 어떻게 마음대로 다 써?"
"내돈이야...마음대로 쓸 수 있잖아."
"그게 어떻게 너만의 돈이야?"
"하.. 근데, 우리 아직 결혼한 사이 아니잖아."
나는 그의 잘못이라 생각했고,
그는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반대로 만약 네가 모았던 돈을 네가 결혼 전에 다썼다해도 그걸 비난하지 않을거야."
함께 저축 금액의 목표를 정했던건 이미 경제적 공동체가 됐던게 아니었나.
그의 돈을 이미 내돈처럼 여기며, 그를 인정해주지 못하는 내가 잘못인가?
뭐가 옳은지는 몰라도 벌써부터 바가지를 긁는 듯한 나의 모습에 회의가 들었다. 시작부터 이러면 어떡하지.
누군가에겐 얼마아닐 돈으로 우리의 관계는 균열이 생겼다. 부모님이 바라시던 '안정적' 이라는 말의 '진짜무게'를 체감하는 순간들이었다. 결혼은 현실이고 이게 현실인 것이라면 너와 나는 동화로 남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는 여전히 이 결과가 본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나름대로의 경각심을 느꼈다며 재취업을 서둘렀다.
그사이 날짜는 눈치없이 새해가 되었고 복잡한 마음으로 우리는 '내년 결혼'이 아닌 '올해 결혼'할 예비부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