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봐온 디즈니 만화나, 드라마나, 영화나 모두 사랑하지만 갈등을 겪고 굳건한 사랑을 확인한 남녀가 결혼을 하는 것은 꽉 닫힌 해피엔딩 결말이었다. '그렇게 그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며 여생의 행복까지 빠져나갈 새 없이.
인생의 스포트라이트 순간 외의 비하인드까지도 우리에겐 라이브이기에, 최애음식을 배달시켜 먹으며 술 한잔을 곁들이고, 프로포즈 받은 다음날 함께 아침을 맞이했다.
이 마저도 좋았다.
드디어 너와 나, 우리의 엔딩이 이별이 아니라 결혼이라니!
프로포즈 다음날 우리는 카페에 앉아 서로의 재무상태확인과 결혼계획을 세웠다. 20대 알바 때부터 서로의 통장을 오픈했던 사이라,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서로가 알고 있는 재무상태가 변함없는지 체크하고, 대략 결혼에 필요하다고 주워들은 항목들을 적고 우선순위를 정했다.
"우선 집은 각자 자취방 계약일이 아직 남았으니, 자기집 계약만료일인 내년 하반기 기준으로 신혼집을 알아보러 다니자. 그 시기에 적당한 매물 없으면, 내후년 2월까지는 좀 불편해도 내 오피스텔에서 살아도 되니까 급하진 않아."
"직장이 서울이니 웨딩홀은 우선 서울로 알아보는 게 좋겠지? 근데 지방 하객도 꽤 많아서.. 서울 먼저 보고 딱히 마음에 드는 곳 없으면 경남에서 내 친구 결혼했던 식장에서 하고 싶어."
'좋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주로 내가 방향을 제시하고, 그는 동의했다.
의견 차이랄 것도 없어서 문제없이 진행될 것 같았다.
구체적인 예산을 잡기 어려워 웨딩 박람회라는 곳을 가봤다. 인기 스드메* 업체가 저마다 포트폴리오를 들고 나와 오픈부스를 열고 열띤 상담 중이었다.
*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의 줄임. 웨딩 용어.
"신부님~~ 이쪽으로 오세요~"
"신랑님이 적극적이시라 너무 보기 좋아요~!"
우리는 [신부님]과 [신랑님]이라는 네이밍을 얻었다.
업체들 중 몇 개를 골라 스티커를 붙여가니, 플래너라는 사람이 나의 취향을 단번에 알아보겠다는 듯 말했다.
"인물중심 스튜디오에 드레스는 러블리, 맑은 비즈 타입, 메이크업은 깔끔 포인트 스타일이네요."
예.. 뭐.. 예..
사전조사를 하며 얼추 들었던 단어들이지만 완전히 이해하진 못한 채로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신부님이 골라오신 업체 중에 여기, 여기는 이미 올 하반기 내년 상반기 주말타임 예약은 다 마감이에요."
지금이 7월이고 우리는 내년 10월 언저리 결혼식을 생각하는데 이미 마감이라니.
"여기 다 내년 가을 예식 생각하시는 분들이 절반 이상이에요. 결혼식이 10월이라도 그전에 드레스투어하고, 스튜디오 사진 찍고, 본식 드레스 맞추고, 결혼식 전에 보정된 사진 다 나와야 하잖아요? 인기 업체는 지금 선점하셔야 신부님이 원하시는 업체와 일정에 맞추실 수 있어요."
[결혼 준비 일정표]라고 쓰인 종이엔 결혼 준비까지 해야 하는 미션들이 가득 적혀있었다.
자신과 오늘 계약하면 부케 서비스, 드레스 라벨 업그레이드 서비스, 원장 지정.. 등등
빠듯해 보이는 일정과 쏟아지는 당일계약 혜택에 서명까지 할뻔했지만 정신을 부여잡고 그 자릴 벗어났다. 박람회에 들어간 게 4시에 들어갔는데, 나오니 8시였다.
"생각보다 돈이 많이 안 드네"
내가 체크해 간 스/드/메 조합으로 플래너가 이러저러 혜택이 포함된 계산법으로 산출해준 167만원이라는 견적을 보며, 하루아침에 남친에서 예랑이(예비신랑)가 된 그가 말했다.
"현금이 필요한 부분들을 우선으로 챙기고, 카드로 할 수 있는 건 내 카드로 하자."
"응 아낄 곳에 선 아끼고, 쓸 곳엔 쓰는 방향으로 잘해보자. 10월쯤부터는 큰 할부 끝나서 여유 생기니까 저축금액도 늘리고..."
그 후로 몇 번의 웨딩 플래닝 업체 상담과 서울/경남 지역의 웨딩홀 투어를 데이트 삼으며 그 해 여름을 보냈다.
그즈음
"나 오늘 사직서 냈어."
최근 들어 회사 대표와 트러블이 있던 그가 퇴사하고 싶다는 말은 종종 했기에 언젠간 퇴사를 하겠거니- 생각은 했으나, 그게 진짜 오늘일 줄은 몰랐다. 으레 퇴사하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아도 실제 퇴사를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그의 결단력에 꽤 놀랐다. 동시에 '혹시 내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던 건가', 뒤늦은 걱정도 들었다.
환승이직도 아닌, 준비 없이 자발적 백수가 된 그는 후련해 보였다. 나름대로 애정을 가졌던 첫 직장을 제 발로 관두는 그의 마음은 오죽했으랴.
우선은 그의 퇴사일이 확정된 것을 축하했다.
괜히 마지막에 책 잡히는 일 없게, 남은 한 달도 프로페셔널하게 마무리 잘하고 나오라 격려했다.
충동적이라고 하기엔 애매했으나, 대비하지 않은 퇴사의 위험부담이 얼마나 클지는 미처 모른 채.
그 사이 우리는 스드메와 결혼식장을 계약했다.
우리의 결혼식으로 정해진 날짜가 1년 남았을 때,
나의 예비신랑은 백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