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키워드
나만의 일품요리
얼굴도 모르는 캐나다 분들과 글쓰기 챌린지를 시작했다. 그리고 10회. 우리는 10주라는 긴 시간을 함께 했다.
나에게 글쓰기란?
어렸을 적 일기 쓰기와 일상 기록도 글쓰기가 될 수 있다는 개념이 없었을 때, 글은 그저 생각이 많고 무언가 깊은 고뇌에 빠져 세상을 걱정하는 사람들만 쓸 수 있는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나의 생각이나 고민보다는 누군가의 필요를 채워주고, 문제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높은 수준의 글만이 진짜 글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이민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에게 글쓰기란 시간 많은 사람들이, 형편 좋은 사람들이, 마음이 넉넉한 사람들만이 즐기는 럭셔리 취미 생활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다... 그것도 브런치에!!!
첫 주 키워드를 받고 글쓰기를 시작해야 했을 때 너무 고민스러웠다. 내가 일기 쓰기를 그만둔 이유는 일기를 쓸 때마다 마치 이 세상 끝난 사람처럼 계속 우울해지고, 답도 안 나오는 내용들을 계속 적어 내려가는 게 무척이나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내 안의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일기장에 적힌 글들은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의 키워드를 가지고 글을 쓰고 그것을 브런치에 공개 오픈을 한다니....
잠깐 단톡방에서 서로 간단한 채팅으로 나눴던 이야기들을 생각해 보면 모인 분들은 모두 캐나다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꾸준하게 본인의 자리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며 열심히 살아가시는 분들 같았다. 자신에 대한 걱정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 또 과거에 대한 후회 따위는 전혀 없어 보이는, 말 그대로 완벽한 삶 같아 보였다. 그분들은 분명 희망 가득 찬 글들을 쓸 텐데... 글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느낌, 행복한 느낌, 때로는 힘이 되는 글들을 쓰실 텐데... 괜히 하겠다고 했나... 후회가 거듭되면서 그나마 있지도 않은 자신감마저 점점 떨어졌다.
역시나 나의 글은 영 분위기가 아니다. 자꾸 써 내려가다 보니 예전에 아팠던 이야기, 속상했던 이야기, 자꾸 우울한 스토리로 흘러간다. 에잇!!!! 글을 지웠다 다시 쓰고 수정하고 수정하기를 데드라인 순간까지 했던 것 같다. 최대한 우울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서 잔뜩 묻은 진흙 덩어리를 털어내고 그래도 조금은 희망적이고 깨끗해 보이는 모습으로 예쁘게 단장하여 제출했다.
첫 번째 브런치에 글이 발행되었을 때 떨리는 마음으로 모두의 글을 읽어 내려갔다. 웃음이 나온다. 모두가 나와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어떻게 마음 문을 열고 글을 써 내려가야 할지 고민했던 흔적들이 보여서 너무 좋았다. 더군다나 첫 키워드가 '일기 쓰기'였으니 고민이 안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나만 빼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행복해 보이고, 나만 빼고 다 걱정 없어 보이고, 나만 빼고 다 완벽해 보였는데 역시 우리는 다 비슷한 길, 비슷한 감정,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는 듯해서 마음이 놓였다. 글 속에서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너무 좋았다. 글 속에서 과거의 나를 만나고 현재의 나를 만나고 또 미래의 나를 만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함께 글을 쓰는 분들을 통해서 조금씩 그분들을 알아가는 것 또한 참 가슴 떨리는 행복 중 하나였다.
아직은 내 생각을 글로 적어 내려간다는 게 어색하고, 내 느낌을 글로 표현한다는 게 쑥스럽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글로 표현한 나의 생각들은 왠지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것저것 재료들이 서로 뒤엉켜있는 복잡한 냉장고에서 딱 필요한 재료들만 골라 정성껏 만들어진 일품요리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요리는 이 세상에 어디에서도 똑같은 요리를 찾을 수 없고, 똑같은 이름도 없고, 똑같은 맛을 내지도 않는다. 내 멋대로 만든 나만의 요리일지라도 음식을 맛보는 순간만큼은 뿌듯함을 느낀다.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서로 다른 시간에 다른 시간 차이를 두고, 다른 모습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같은 키워드로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 웃음이 난다. 선생님께 과제를 제출하고 점수를 기다리는 학생으로 돌아간 마음이라고나 할까? 함께여서 너무 행복했고, 함께여서 든든했고, 또 함께여서 10주라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멋진 분들과 함께 했던 즐거운 요리시간이었다. - 끝 -
패미로얄 https://instabio.cc/famiroyale
‘릴.키.글’ 이란 정원에서
시작이 반이라더니 벌써 예정된 10주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사실 일단 시작은 했지만 ‘과연 내가 끝까지 달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 한 켠에 매달려 있었지요.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의 일상적인 직장 일이 아니라 밤낮 교대로 하루 12시간씩 일을 해야 하는 처지다 보니 체력도 그렇고 이것저것 하던 루틴이 있는데 하나 더 덧붙인다는 게 조금 부담스럽긴 했거든요. 하지만 일단 저지르는 스타일이다 보니…. 일단 GO~
키워드를 가지고 글을 써 본 것도 처음이고 다 쓴 글이 여러 사람 앞에 읽힌다는 어색함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나처럼 꾸준한 습관이 여기까지 오게 해 주었답니다. 친절한 서영님의 안내로 매주마다 하나의 씨앗을 뿌리면서 내면의 정원을 가꿀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또 여러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글쓴이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도 하고 상상을 할 수 있어 좋았어요. 아쉽다면 글 하나씩 올릴 때마다 서영님의 진솔한 피드백을 받지 못한 것이지요. 그저 좋다고, 솜씨가 나아졌다고만 부드럽게 말해주면 어찌 내 글이 발전할 수 있겠는지요?
행복이 뭐 별거겠습니까?
그건 대단한 게 아니라 그저 즐거운 사람과의 함께함이 아닐지요
지난 10주간 여러분들과 같이 전 이런 행복감과 충만함 속에서 설렘으로 한 알의 씨앗을 뿌리고 가꿀 수 있었답니다. 그래서 이렇게 60 중반을 지나면서도 언제나 푸른 청춘으로 향기로운 봄날을 누렸고, 지금은 또 이리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빠알갛게 물든 잎들을 보며 또 한 계절 내가 뿌린 글감의 씨앗들을 바라보는 즐거움으로 화려하게 수놓아질 나만의 정원을 기대한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성은@life_coachin,g.ue
누군가 나의 목소리를 들어준다는 것
초등학교 1학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나는 노래 부르는 데는 영 소질이 없다. 바야흐로 거의 40여 년 전,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교내 가창 대회가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가창 대회에 나갈 반 대표를 뽑는 일을 1학년인 우리에게 전적으로 맡기셨다. 우리에 대한 무한 신뢰가 있으셨던 건지 아니면 그냥 교내 가창 대회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신 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우리 반에는 남자 한 줄, 여자 한 줄 그렇게 총 8줄로 4 분단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1 분단 남자아이들이 한 줄로 나와 칠판 앞에 서서 정면을 바라보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가 끝난 후, 담임 선생님은 우리에게 누가 제일 노래를 잘 부르는지 물으셨다. 아이들은 목소리가 가장 컸던 남자아이를 지목했다. 그다음 줄 아이들도 그렇게 목소리가 큰 아이가 노래 잘하는 아이로 지목되었고, 4 분단에 앉아 있던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목소리가 크면 노래를 잘하는 거로구나. 맨 마지막으로 우리 분단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목청껏 노래를, 아니 소리를 질렀고, 급기야 우리 반 대표로 뽑히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겼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누군가 나의 목소리를 들어준다는 건 중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고,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읽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기본적 욕구가 아닌가 싶다. 딸의 친구 아버지는 병원에서 일하는 심리학자이다. 온종일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니 기본적으로 그에게는 남의 이야기를 정성스럽게 들어주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는 듯했다. 하루는 딸의 친구의 생일 파티에서 주인공인 친구에 관한 재미난 퀴즈를 풀며 한 시간 가까이 게임을 했다. 게임의 질문들은 생일 주인공의 DNA 검사 결과에 관한 것이었고, 그 게임을 통해서 나도 몰랐던 많은 사실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생일 파티가 끝날 무렵, 그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본인도 사람들이 한 시간 넘게 오로지 자기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그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순진한 고백을 했다. 어린아이 같은 바람에 다들 한바탕 웃고 헤어졌지만, 그 아버지의 말은 두고두고 생각이 났다.
키워드 글쓰기를 시작할 때, 처음에는 전적으로 머릿속에 떠돌아다니는 생각의 파편들을 정리해 보겠다는 일념으로 글쓰기에 참여했다. 그러나, 여러 번 횟수를 거듭할수록, 타인의 글을 읽는 재미도 솔솔 했고, 또 다른 분들의 댓글도 신기했다. 누군가가 나의 글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내 글을 세상에 내놓기 전에 한 번 더 읽어 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답답한 내 감정을 털어놓을 목적으로 생각을 마구 쏟아 내었기에 맞춤법에는 관심도 없었지만, 이제는 맞춤법 확인은 독자에 대한 예의라고 여겨져서 아무리 바빠도 맞춤법 검사는 한다.
막연히 글은 기가 막힌 영감이 떠오를 때 내지는 글감이 좋아야 좋은 글이 나올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는데, 이번 키워드 글쓰기를 통해 배운 게 있다면, 글은 영감이나 좋은 글감이 있을 때만 쓰는 게 아니라 무조건 규칙적으로 써야 한다는 점이다. 어떤 날은 주어진 키워드에 대한 아무런 감흥이 없어서 이번에는 아무래도 시간 내에 완성하기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온종일 키워드 생각만 하며 지내다 보면 생각지도 않게, 뭔가 글 쓸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다. 때때로 이미 다 써 놓은 글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읽다가, 너무 군더더기가 많은 것 같아 지우려고 보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요리사들이 요리에 필요한 양만 골라 쓰고, 남은 멀쩡한 요리 재료를 아낌없이 버릴 때, 나는 많이 안타까웠었다. 처음에는 나의 군더더기 글들을 잘라내기가 마음 편치 않았지만, 이제는 양보다는 질로, 또 어떻게 하면 글 안에서 나의 색을 찾을까 고민해 보는 여유를 부려본다.
소냐민정@mjk_immigration
'도를 아십니까'
고백하자면, 나는 글쓰기가 얼마나 좋은 건지 아직 잘 모른다. 함께 글을 쓰는 소모임을 만들어 사람들을 모을 때,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글쓰기가 아니겠냐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외쳤으나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성공한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글쓰기가 진짜 삶을 변화시키는 것인지, 진짜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나 변화시켜 주는지 알지 못했고 나도 너무나 알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평생을 작심삼일로 살아온 내가 혼자서는 결코 해내지 못할 것임을 너무 잘 알았기에 나를 밀어줄 외부 동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사람들을 모았다. '위로'며 '변화'며 '인생' 따위의, 나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거창한 말들을 늘어놓으며 우리 함께 뭐라도 써보길 시작하지 않겠냐고 꼬드겼다. 그때의 마음은 '도를 아십니까'의 조금 진정어린 버전 정도였다. 선한 표정으로 강남역에서 자주 마주는 그들도, 길 안내를 받다 결국 카페로까지 자리를 옮겨 조상님의 복을 제대로 받으려면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말을 하기까지 오로지 '해쳐먹을 돈'만 생각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악질들도 있겠지만 그들의 사슴같이 순진한 눈동자 속에는, 서로에게 그것들이 의미 있는 일이라 믿는, 아니 믿고 싶어 하는 간절함이 보였다. 그 무지하고 어리석은 범죄가 될 간절함이 종국에는 처연하게 느껴졌다. 그들이 '도'의 진실을 알지 못한 채 강남역에 나선 것처럼 나는 글쓰기의 진짜 힘을 알아내지도 못한 채 그것이 이미 나에게 진리인 양, 사람들을 모아 놓고, '굿판'처럼 부담스러운 글쓰기 마감을 그들에게 매주 떠안기는 죄(?)를 저질렀다.
나는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춤이나 달리기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애가 탈만큼 부러워하지만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내가 이미 글을 잘 쓰는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내가 글을 쓴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 없어서였다. ‘글쓰기’와 평생 무관한 사람이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래서 눈과 입에 착착 감기는 필력을 가진 사람들을 볼 때도 ‘와, 글 참 잘 쓰네’하고 순간의 감탄을 내뱉을 뿐, 그뿐이었다. 마치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가다 쇼윈도를 통해 (내 스타일은 딱히 아니지만) ‘나름’ 멋진 옷을 발견하고 감탄했으나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잊어버리는, 질투조차 미치지 못하는 깃털같이 가벼운 감탄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런 내가 어느날 갑자기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생각보다 유치하고 단순했다. 작년 2021년은, 힘든 시기였다. 몸을 가눌 수도 없을 만큼 힘들었고 지구의 중력을 매 순간 세포 하나하나마다 느끼던 하루들이었다. 원래 사람은 힘들 때 자신의 운명이 궁금해지는 법이란 말을 어디서 들었다. 자꾸 무너져 누워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사주명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내 운명이 궁금했다. 그냥 이대로 점점 사라지게 되는 것인지 나에게도 일어서게 되는 순간이 다시 올 수 있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아니, 어떻게든 후자의 이야기를 반드시 듣고 싶었다. 나에게 ‘너는 다시 멋진 삶을 살 거고 너의 웃음은 진심이 될 거야’라고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하는 것이 사주든, 명리든, 철학이든, 타로든 미신이든 헛소리든 간에, 그 어떤 것이라도 믿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무료, 유료 할 것 없이 책과 강의를 결제하며 사냥감을 찾는 하이에나처럼 내 사주를 연구했다. 신기하게도 매번 동일하게 나오는 풀이가 있었다. 그것이 글쓰기였다. 사실 글쓰기 이전에 의료계에 종사하면 좋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내 사주에 현침살(뾰족한 것)이 많아서 칼이나 가위처럼 뾰족한 것과 연관된 것들이 어울리고 잘 맞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의대를 꿈꾸거나 자격증도 없이 미용실에 취직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 ‘펜촉’도 뾰족하니까 글을 써보 것도 좋을거라는 풀이를 보았다. 집도를 하는 의사도, 사시미를 뜨는 요리사도 멋졌지만 내가 원한다고 당장 해볼 수 있는 것들은 아니었기에 할 수 있는 걸 찾았다.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그렇게 펜 아니,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사실 펜보다 뭉툭한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는 타이핑을 통해 글을 쓰는 작금의 시대의 글쓰기는 뾰족한 펜촉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었으나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결국, 기분이나 감정, 상황이나 지식을 뾰족하게 짚고 다루는 행위가 아니겠냐며 그렇게 믿어보기로 했다.
무턱대고 쓰기 시작했던 만큼 결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매번 느끼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만두지 못하는 습관이 되었다. 글을 쓰면서 항상 겪는 신기한 경험은 변화에 대한 희망이다. 그리 계획적이지도 꼼꼼하지도 않은 성격이지만 막막한 글을 쓰기 전엔 나도 어느 정도 계획을 하려고 노력한다. 빈 화면에서 깜빡거리는 커서를 바라보며 어떤 글을 써 내려갈지 대충이나마 계획을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 인생이 그렇듯 글이란 것도 계획대로 될 리가 없다. 처음에 마음먹은 것과 다르게 쓰이고 있지만 굳이 되돌리진 않는다. 그 과정에서 나는 희망이란 게 뭔지 살짝 알 것도 같은 기분을 느낀다.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든 쓰이고 있다는 것에 안도를 하며, (그 결과가 매번 마음에 썩 드는 것은 아닐지라도) 처음의 의도보다 오히려 괜찮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생기는 것이다.
사람들과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욕심이 많아 이런저런 주제넘은 소리들을 ‘강의’(?)랍시고 늘어놓았다. 제목은 어떻게 지으면 좋고 문단은 어떻게 나누며, 매끄러운 글을 위해서 어쩌고 저쩌고……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글을 ‘잘’ 쓰는 방법이 아니라 글이라는 매개를 통해 내가 나를 풀어놓을 수 있는 경험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런 글을 꾸준히 써내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변화하는 스스로를 느낄 수 있으면 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확신한다. 열 번의 꾸준한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각자의 속도와 방향으로 분명히 변화했다. 매주 우리의 글을 모아 있는
그대로 세상에 내어 놓으며 '저번 주'와 다른 '이번주'를 조금씩 느껴왔다. 갈수록 훨씬 편안해지는 문장들과 더욱 단단해지는 확신의 마침표들이 우리가 머물러있지않고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나는 여전히 글쓰기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며 그것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대답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10주의 릴레이 키워드 글쓰기의 첫 번째 경험을 통해 나와 타인이 어떻게 글로써 엮이며 공감을 깨우치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속에서 자(自)와 타(他)의 연결점을 발견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0주를 함께한 릴.키.글 1기 우리 모두가 이번 경험을 통해 글쓰기와 조금 더 유관한 삶을 이어가고 또 그 연결점들을 통해 보다 더 유의미한 인생의 '도(道)'를 찾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황서영@https://link.inpock.co.kr/standal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