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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것

아홉 번째 키워드

by 황서영

성장과 변화를 위한 내딛음


“가슴에 별을 간직한 사람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 ”라는 시구가 생각난다.

어린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또 그 어른 사람 속에는 어린아이가 있어 서로의 빛을 보며 시간을 누리게 되어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일이며 세상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고 자신을 성찰할 줄 안다는 의미이자 독립적 인격을 뜻하는 거로 생각한다.

그리고 사전적 의미로는 나이 든 사람이나 결혼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정의되어 있다.

세월이 가면 나이야 저절로 먹는 것이고 풀어야 할 문제는 ‘어떤 모습으로 어른이 될 것인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나는 4살짜리 손자를 둔 할머니로서 아름답고 우아하게 나이 들고 싶은 소망이 있다.

공부하는 할머니,

교육하는 할머니,

잘 놀고 많이 웃는 행복한 할머니로서 살아온 날들이 많은 이야기로 채워져 있어 실타래를 풀 듯 풀어도 풀어도 자꾸만 나오는 마법의 상자를 간직하고 싶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를 서른 나이부터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마 시아버님의 장례식을 통해 마음에 새겨진 나만의 숙제였던 것 같다.

그건 바로’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인생의 방향을 잃은 사람들에게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단히 나 자신을 갈고닦으며 성찰하고 날마다 변화하기 위해 삶의 모습을 바꾸는 것이다. 채우기도 하고 덜어내기도 하며 때론 과감하게 잘라내 버리기도 하면서.


“일 년의 계획으로는 곡식을 심는 것보다 중요한 게 없고, 십 년의 계획으로는 나무 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으며, 일생의 계획으로는 교육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없다.” 고 관자는 말했다.

그렇다!!

자기가 자기 삶의 주체가 되어 세상에 휘둘리지 않도록 자신을 부단하게 교육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학교 공부가 아닌 인생공부 즉 독서를 통한 배움을 통해 사색하고 나만의 철학으로 단단히 서 있어야 한다.

나이 40이 되면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고 공자는 말했지만 어림없는 소리였다. ( 물론 더 일찍 철이 들고 깨닫는 이들도 있겠지만)

60이 되었을 때에야 겨우 조금 알 것 같은 마음이 왔을 뿐이다 내게는.

-나와 이웃을, 그리고 지역사회를 사랑하며 그 안에서 봉사하고 기쁨을 나누며 누리는 삶

-받기보다 주기를 좋아하고 이해하며 용납하는 마음.

-아주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에서 발견하는 행복의 가치들.

그것들은 독서를 통해 배웠고 깨달았으며 나만의 공식으로 가슴에 저장되어 있다.


꽃마다 개화하는 시기가 다르다고 하지 않는가?

일찍 피는 꽃도, 늦게 피는 꽃도 모두 아름답다.

빨리 달려서 목표에 도달한 사람을 성공했다고 부러워할 것도 없고 조금 늦게 출발하였다고 낙망할 것도 없다.

모든 사람의 얼굴과 성격이 다르듯이 그저 사람들마다 자기의 때가 있는 것이로되 그때까지 부지런히 묵묵히 중심을 잡고 걸으면 그만이다.

모두가 본인이 생각하는 ‘어른이 된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지만, 반드시 목적을 가지고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이야말로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생의 크고 작은 질문들에 답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시간 속을 뚜벅뚜벅 걷는 이가 바로 어른이다.


날마다 우리 삶 속으로 쏟아져 내리는 숙제들!

그 숙제들과 씨름하며 애쓰는 모든 사람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지는 꽃은 또 피지만 꺾인 꽃은 다시 피지 못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의 심장이 멈추는 그날까지 꺾이지도 말고 멈추지도 말자. 날마다 성장하며 변화하면서 인생을 움직이는 주인공이 되자.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최고로 성장하는 은빛 여자 최 성은’이라고.

이런 성장이 바로 어른이 되어가는 발판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그런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내 가슴속의 별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여러분은 가슴에 어떤 별을 품고 있는가?


성은 @life-coaching.sue



어른이 된다는 것


나는 언제 어른이 되었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주민등록증을 받고, 성인식을 했다고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게 되면 다 어른인 걸까. 옛날에는 남자가 장가를 들고 상투를 틀면 어른으로 대접받고, 장가를 들지 않으면 아직 어른이 안된 걸로 여겼다고 들었다. 난 과연 언제쯤 내가 비로소 어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아이를 낳고 기르며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음에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온전히 느끼게 된 것 같다.


‘피터팬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는 걸 보면, 분명 생물학적 나이로 어른인지를 구분 짓는 것 같지는 않다. 나이가 30 또는 40대가 되었어도 미성숙한 행동과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은 아직 어른이 아닌 건가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에 어떠한 통과의례와 같은 관문이 있는 것도 아니니, 누가 어른이 되는 일에 충분, 필수조건을 다 갖추었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확실한 건 어른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과 의무가 암묵적으로 사회에 존재하는 것 같다.


어릴 적엔 너무나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공부만 하고 시험 보는 게 너무 싫어서, 빨리 어른이 되어 회사 다니고 돈을 벌면 너무 좋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어른에게 주어지는 자유에 버금 가게 책임과 의무가 막중하다. 왜 어릴 적엔 겉으로 보이는 자유만 그렇게 크게 보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어깨를 무겁게 누르는 어른으로서의 사회적 짐은 보지 못했을까.


경제 활동을 하며 돈을 벌고,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할 지도 내가 결정한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 어려운 일 중 한 가지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정말 한 가지를 딱 고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어릴 적엔 부모님 또는 선생님이 답을 정해 주셔서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착한 딸, 좋은 학생이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나의 의견은 고려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지시나 명령에 따르기만 하는 게 결코 좋은 거는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어른이 되고 가장 좋은 점은, 누가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일이 없는 점이다. 내가 결정하고 행동하고, 그 선택의 결과까지도 오롯이 나의 몫이 되어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거기에 비하면, 어릴 적에는 나 대신 어른들이 결정을 다 내려주고, 학생의 본분은 그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거라며 어려운 결정 내리는 일에서는 모두 면제해주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내 삶의 주체가 되어, 내가 하고 싶고,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을 산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모님이 원하시는 삶이나 사회가 원하는 삶을 마지못해 사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누군가 나에게 다시 어린 나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다. 절대로 아니라고, 어른이 된 지금의 나의 모습이 좋다고 말이다.


소냐민정@mjk_immigration



어른이 된다는 건


어른이 된다는 건 책임 저야 할 일들이 많아 때로는 그 무게감에 땅으로 꺼져버릴 것 같은 순간을 맞이하는 것 도망가고 싶은 충동이 하루에도 열 번은 생기지만 그럴 수가 없는 난처한 순간과 마주하는 것 그러나 내가 해낼 수 있음을 알기에 또 묵묵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툭 털어버리고 씩씩하게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마음의 힘이 있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건 내 어렸을 적 그 어느 시점에서 나의 엄마의 마음이 문득 이해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는 것 그때는 몰랐던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며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 나의 지금 상황과 내 어릴 적 상황이 오버랩이 되면서, 나 만큼 젊은 엄마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는 것 그리고 늘 엄마가 그리워 자꾸자꾸 어린 시절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건 내 주변 누군가가 안 좋은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진심으로 위로해 줄 수 있는 내공이 생겼다는 것 내가 겪었던 일들이 너무도 많아 상대방이 아무 말하지 않아도 그 불안하고 속상한 마음이 애잔하게 내 맘에 머무는 초능력이 생겼다는 것 그리고 괜찮아 다 잘될 거야...라고 따뜻하게 말해 줄 용기가 생긴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건 상대방이 베풀어 주는 배려와 관심이 결코 작은 선물이 아니라는 걸 알아간다는 것. 이런 작은 배려가 나에게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는 걸 깨달아 가는 것 그리고 나 또한 상대방에게 배려와 관심을 주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것.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걸어왔던 길에 어떤 모양의 발자국을 남겼는지 돌아볼 기회가 생긴다는 것 비록 삐뚤빼뚤 방황한 흔적이 많은 발자국이라도, 내가 힘들어할 때 내 옆에 함께 걸어주었던 다른 발자국이 있었는지... 그리고 진심으로 고마웠다고 감사의 마음은 전했는지 과거를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건 내 아이의 모난 모습에서 판박이처럼 똑같은 나의 모난 모습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랄 일이 생겼다는 것 아이의 모습을 통해 나를 보고, 나에게 또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아이와 함께 그 모난 부분을 서로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건 이제 내가 아닌 우리를 생각한다는 것 나의 말이, 나의 생각이, 나의 행동이, 나의 노력이, 나의 꿈이 나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세상에서 어떻게 작용할지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 스스로에게 자꾸 물어보는 시간이 필요한 때라는 것.


어른이 된다는 건 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아 간다는 것 두루두루 많은 친구가 있다고 자랑하기보다는 나를 온전히 이해해 주고 인정해 주는 한 명의 친구가 더 큰 재산이라는 걸 깨닫는 과정이라는 것 그래서 나도 그런 친구가 되고 싶고, 나에게 그런 친구가 있기를 소망하는 것.


어른이 된다는 건 눈물이 많아진다는 것 슬프고 속상할 때 흐르는 눈물 말고 이제는 기쁘고, 행복하고, 감사해도 눈물이 난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래서 눈물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


어른이 된다는 건 나의 능력대로, 나의 계획대로, 나의 노력대로 모든 것이 다 잘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그래서 늘 하나님께 겸손하게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걸 깨달아 가는 것


패미로얄 https://instabio.cc/famiroyale



어른이 된다는 것


“틱, 틱, 틱, 틱….” 지금 이 순간도 내 시계는 4분의 4박자로 그 언젠가의 나의 마지막 날을 향해 지침 없이 달린다. 나의 마지막 날이란 단어가 낯설지 않아 남은 시간을 좀 더 충만하게 채우고 그날 당일 아름다운 이별을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중년 즈음 새삼 “어른이 된다는 것”이란 주제가 낯설다. 아직 마음속은 철부지 같은 아이가 있고, 생화학적 나이로는 웬만하면 언니 대접을 받을 일이 많은 미숙한 어른의 복잡 심경일런지도 모른다.


시계 소리가 “티이이익~ 티이이익” 하고 들렸던 어린 시절 나는 한 10배속으로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 했다. 내 눈에는 어른들의 모습이 무적 천하장사 마징가였고 원더우먼이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에 먼저 찍힌 아빠의 발자국 위에 내 발을 옮기고, 손으로 넘겨 잡아주어 안전하게 지나가던 가시덤불을 어른들은 무서워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른이 빨리 되고 싶은 이유 중 가장 큰 하나였다. 유독 겁이 많았던 나는 어른들의 그 담대함이 부럽고, 먹고, 마시고, 노는 일을 내 돈으로 마음대로 하고 잔소리하나 듣지 않고 사는 것 같아서였다. 게다가 야한 영화도 허락 없이 봐도 되고 통금 시간이란 것도 없으니 얼마나 자유스럽냐며 엄마는 좋겠다 했을 때 엄마는 이렇다 저렇다 말없이 웃으며 “하하하, 너도 어른 돼봐라.” 했다. 기대해도 좋다는 것보다 너무 기대하지 마라에 살짝 더 뉘앙스가 올려진 말이란 것을 아주 진하게 느낄 즈음 나는 완전히 어른의 실체를 깨달았다. 나의 어른들은 매사 “척”하는 거였구나 하고 말이다. 무섭고 두렵고 힘들지만 안 그런 척하고 없던 용기를 내보는 일을 내가 경험하면서 말이다. 그 옛날 아빠도 눈길에 미끄럽고 넘어질까 걱정이 되어도 나를 위해 발자국을 먼저 만들어 주며 참은 거였단 걸 내가 내 아이에게 똑같이 해주면서 알아가는 중이다. 먹고 마시고 노는 것조차 때와 장소가 마음대로 안될 때가 많고 사회적 비판과 기준이 더 엄격해져 엄마의 잔소리보다 불편한 때도 많다. 슬프고 힘든 일 앞에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울컥함도 때론 꿀꺽하고 삼켜야 해서 감정 조절도 자유롭지 않은 시간이 있다. 화장 맘대로 해도 좋겠다 싶었는데 선크림도 겨우 바르고 야한 영화 접근 가능성은 이젠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때가 오니 어쩜 그런 인생 대반전의 오해와 상상 속의 어른의 모습을 생각한 것일까 싶다. 엄마는 그걸 다 알고도 나의 기대감을 위해 자세한 이야기를 안 해줬나 보다. 아니면 그것보다 중요한 무언가를 이해하는 건 자기 주도적 학습으로 이끌고 싶으셨나 보다.


어른이라는 건 생물적인 인체 기관의 발달 변화로 인간의 형태를 구분 짓는 수단일 수도 있겠지만 좀 더 크게 생각해보면 내가 돌보아야 할 도움이 필요한 인간 존재 때문에 사회적으로 구분됨이 아닐까 싶다. 비단 내 존재 하나, 아이뿐만이 아닌 나의 조그만 힘 하나로 거두어야 하는 무엇이 존재하기에 손을 내어줄 차례 표를 받은 거라고 생각이 든다. 그 차례 표를 마침내 알아차리니 “척”하는 모습이 저절로 나오는 거겠지. 비록 근육량이 낮아져 다리가 후덜 거릴지라도 유연함과 강인 함이라는 요소가 더 업그레이드된 어른 하나가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며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을 느리다 빠르다 탓하지 말고 담백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싶다. “틱틱틱틱.” “어라. 4분의 2박자로 들리는 이건 뭐지?” 어른되어 가는 행진곡의 경쾌함이라고 믿고 싶다.


pinkpen@mindmap.anna


여전히 자라는 중


어린 시절의 나는, 내가 어린이인 것이 좋았다. 어린이로서의 내 삶은 충분히 즐겁고 행복했다. 그 나이 때만 가질 수 있는 고민이나 상처들이 나름 있었겠지만, 내게 허락된 자유 이상의 것을 갈망하며 어서 어른이 되기를 꿈꾸는 아이는 아니었다. 딱히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분명, 나보다 조금 ‘더 자라 있는’ 사람들이 멋져 보이기는 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주번 제도가 있었다. 주로 등교시간에 활동을 했고 6학년 학생들이 학급별로 돌아가며 담당을 했다. 이들의 역할은 학교 주변과 교내에서 질서 정연한 등교시간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이었는데, 저학년 시절 내내 등굣길에서 마주친 6학년들의 존재감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와 여유, 그리고 당당함에 매료된 1학년 7반 박세은 어린이는 이런 생각을 했다, ‘와 6학년은 진짜 어른이구나.’


6학년이 되고 처음 우리 반이 주번을 맡게 된 날, 그때 내가 느꼈던 희열을 아직도 기억한다. 게다가 마침 1반에 배정이 된 나는, 동급생들 중 우리 반이 가장 먼저 그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에 더욱 신이 났었다! 반 친구들과 학교 정문과 후문, 그리고 복도와 계단 등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을 각자 지키고 서서, 뛰지 마라, 왼쪽으로 다녀라, 질서를 지켜라 등의 잔소리를 툭툭 던지며, 학교 내에서 가장 상급생이 된 우리의 존재를 마음껏 드러냈다. 나는 그때 사실, 이제 내가 다 큰 줄로만 알았다.


물론 그 착각은 중학교에 입학함과 동시에 깨어졌다. 고등학생은 그렇다 치고, 이젠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하나같이 뭐라도 되는 듯 크게 보였다. 이번엔 정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그때야말로 진짜 어른이 되는 거라 생각했다. 이 거듭된 착각과 깨달음은, 현재까지도 반복되는 사이클이다. 이십 대를 넘기니 삼십 대부터 어른이구나 싶었다. 삼십 대가 되니, 이제 더 이상 애가 아닌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딱히 어른이 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리고 사십 대가 된 지금, 나는 이제야 진심으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사실은, 어른이어야만 할 것 같아서 어른인 척을 한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여전히 덜 자란 것 같은 기분이 자주 드는데, 그게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어서.


사실 잘 모르겠다. 더 성장하는 건 좋은데, 계속 더 성장하고 싶기는 한데.. 몸이 자라는 것에 비해, 나의 내면이 자라는 속도가 더딘 것이 서글프다. 이 불균형이 답답하다. 그저 어른다운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마음 때문에 어른인 척을 하게 되면, 그건 강박일까? 언제쯤 나라는 존재를 어른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결국 마흔도 답은 아니었다. 쉰은 하늘의 뜻을 아는 지천명의 나이라는데, 거기까지 가보면 그때는 답을 할 수 있을까.


앤 (https://www.instagram.com/ggoomhoy)

어른이 된다는 것 : 어른아이




벌써 또 가을이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운전을 하면서, 길을 걸으면서 내 시선은 너무도 바쁘고

심장은 매번 출렁거리는 파도처럼 이리저리 날뛰며 쿵쾅거린다.

형형색색의 단풍들.

갈색, 노란색, 빨간색, 어중간한 그 중간쯤의 색들, 녹색, 주황색..

그 색을 표현하는 것조차 무리이고 억지이지 않을까 싶을 만큼의 아름다운 조화.


그렇게 가을을 사랑하는 여자는 누군가에게는 어른이라는 모습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직 어리다는 나이의 사람이 되어있다.


어릴 때는 누구나 다 그렇지 않을까 싶지만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놀고 싶은데 놀지 못하고 엄마가 지시해놓은 일들이 많아 그것들을 해치워야 할 때면

더더욱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동생 데리고 놀아주기, 방 청소하기, 숙제하기, 동생 씻겨주기 등등..

하루빨리 어른이 되어 내가 원하는 일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했었고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서 어떤 모습의 어른이 되어

내가 지향하는 삶을 살아갈 멋진 어른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철없던, 세상모르던 아이의 귀여운 꿈? 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20대를 살고 30대를 살고 40대가 되었다.

20대도 30대도 어른이라고 생각했었고 사실상 덜 된 어른이었음에도 하루하루

어른인 척 어른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별반 다르지 않지만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 된다는 것, 그 의미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내 의지로 관계의 테두리를 설정하고 내 생각의 중심에서 움직일 수 있을 때는 몰랐던,

그 시간 속에 들어오면서부터 내적 갈등이 많아지면서부터 정신적으로도 성장을 해야

어른이라는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깊은 깨달음들의 시간이 많아졌다고 해야 하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들..

물론 그동안의 아이에서부터 청춘의 시절, 결혼 등등의 시간들 역시 모든 게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마음의 크기가 달라지고 정말 어른의 마음을 생각해보고

어른의 말이 어떤 것 일지 생각하고 말을 하려 하고, 그런 책들을 뒤적거리며

전달하려는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의 전달을 하려는 찰나에 있어

더 생각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고민해보고 내 어린 시절의 감정들과 그 감정 속에서

내가 느꼈었던 어른의 바른 모습을 생각하며 그에 맞게 바뀌려 노력하게 되는 걸 보면..

지금은 어른이 되지 않아도 된다면 한 번씩은 어른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ㅋㅋ

이런 많은 갈등들을 과연 지금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알까..?

어른이라는 나이의 사람들도 때론 어른이 아닌 아이이고 싶을 때가 있다는 마음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후회도 많았던 것 같다.

타인들이 보는 지금의 나는 누가 봐도 '어른'인 나이의 사람의 모습.

그 사람인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닌 것을 안다.

아직도 나는 어른이 되어가려 노력 중이고 그 길 위에 서있음을.

때론 '아, 나도 아이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의 나로서 무엇을 할 수 있다면.. '

하고 지난 시간의 어린 내 모습에 후회도 하고 반성도 남기는 시간도 있고

앞으로의 어른이 되어가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지금도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현명하고 지혜로울 수 있는 어른, 마음의 그릇이 커서 쉽게 마르지 않는 어른.

철이 없다기보다는 젊은 생각의 어른, 아이들이 보았을 때 멋지다는 말이 떠오르고

닮고 싶다는 동기부여의 멘토가 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아주 거창한 꿈은 아직도 꾼다.


그것만 봐도 나는 아직 덜 된 어른, 덜 익은 어른이고

아직도 매일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었을까.. 를 고민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느 날엔 '어른 아이'인 나에게 조금은 수긍할 수 있는 '어른'이 되지 않을까?


숨 막히게 뜀박질하다가도 멈춰야 할 때 멈추어 하늘을 볼 수 있는 마음을 꺼내어 숨을 고를 수 있는.

멀쩡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내면에서는 숨을 헐떡거리며 삶을 지탱하려는 모습에서

겉모습과 내면이 같은 템포의 리듬을 타는 스텝처럼

그렇게 자연스러운 모습의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오늘도 꿈꾼다.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어른.

나와 타인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어른.

좋은 것은 기꺼이 나눌 수 있는 마음이 부자인 어른.

아프지만 괜찮아라고 말하지만 괜찮지 않은 나를 위해 정말 괜찮을 수 있도록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어른.

내면의 근육을 키워 몸도 마음도 건강한 어른.


그런 어른이 나는 되고 싶다.


어른 아이는 언제 즘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 아이들에게서부터 '어른'이 되어야 할 텐데...

어른 되는 길은... 생각보다 꽤 거리가 있어 한참 걸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루@mind_here_


어른이 되어 어린이가 된다


일부러 텔레비전에 바짝 붙어 만화영화를 본다. 코가 브라운관에 닿아 전자파가 느껴진다. 학교에서 텔레비전을 너무 가까이에서 보면 눈이 나빠진다는 것을 배운 뒤였다. 나는 혼자서 '빨리 눈 나빠지기' 프로젝트를 성실히 진행 중이었다. 눈이 나빠지는 것이 목표라기보다 안경을 쓰게 되는 것이 목표였다. 아니, 안경을 써서 조금이라도 더 어른처럼 보이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어른이 되고 싶었다. 기왕이면 빨리 되고 싶었다. 그것이 힘들다면 최소한 그렇게 보이기라도 하고 싶었다. 지금은 꼭 필요한 날이 아니면 눈 길도 주지 않는 브래지어를 처음 하게 된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어른과 조금 가까워진 것 같아서 매일 아침, 속옷에 두 팔을 끼워 넣으며 뿌듯해했다. 그 이듬해 첫 생리를 하고 나서는 완전한 어른이 된 것이라 생각했다. 그 무렵이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 날이었다. 아파도 울지 않았고 슬퍼도 이를 악물었다.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방법도 잊었다. 이제부터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성숙하고 완벽한 어른에 가까워진다고 믿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른이 된다는 그 말의 일부는 맞았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도 많아졌다. 탱글 했던 피부는 덜 탱탱해졌고 삼박사일 밤을 새우고도 또 몸에다 술을 부어 넣을 수 있었던 체력은 하루만 잠을 설쳐도 비실대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예전 같이 않다'거나 '그냥 다 똑같지, 뭐' 따위의 어른의 말을 많이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꿈꿨던 어른, 불편한 안경과 브래지어와 고통스러운 생리를 감수하고서라도 하루빨리 되고 싶었던 어른은 이런 게 아니었다.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당연히 돈이 많아질 테고 훌륭한 직업이 주어지고 어디에서 살지, 어떤 자동차를 탈지 이미 다 정해져 더 이상 아무런 고민과 불안함 없이 이 세상을 누리기만 하면 되는 안정된 존재. 어두운 터널 같은 어린 시절을 버텨 결국 성인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한 생존자에게 주어지는, 기특함에 대한 보상의 트로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민등록증에 잉크가 마르고 색이 바래기까지 한 지금도 여전히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고, 정해졌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시 원점으로 오기도 했다. 모순적이고 흥미롭게도, 더 이상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진짜 어른이 된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맛집이라고 찾아가 한 시간을 기다려 받아든 짬뽕맛보다 훨씬 실망스러운 기분이었다.


이제 어른을 그만하고 어린이가 되고 싶다. 어른이 되기만을 꿈꿨던 나는 어린 시절을 단 한 번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어린이로 살아보자 마음먹는다. 아플 때 울고, 속상할 때는 떼도 쓰면서, 하고 싶은 것과 놀고 싶은 것을 참지 않고 재지 않으며 본능에 충실한 어린이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생각해보니 어른이 된 것이 그렇게 실망스러운 것만은 또 아니란 걸 깨닫는다. 내 안에 있는 어린이가 울며 떼를 쓸 때 위로하고 받아줄 사람, 갖고 싶은 장난감을 쥐어주고 가고 싶은 놀이터에 데려다 줄 수 있는 사람은 긴 터널을 지나온 내 안의 어른일테니까.


황서영 https://link.inpock.co.kr/stand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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