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키워드
구름빵
벌써 캐나다 분들과 함께 하는 <브런치에 글쓰기 챌린지> 8번째 키워드가 주워졌다. 이번 주 키워드는 구름이다. 구름이란 키워드로 어떻게 글을 써내려 가야 하나 생각하니 갑자기 두근두근 심장은 바운스를 치며, 이에 응답이라도 하듯 내 머릿속 기억 세포들이 자기 이야기를 써달라며 손을 번쩍번쩍 드는 듯하다. 머릿속에 구름이라는 라벨이 붙은 서류함을 열었다. 그중 우리 아들의 이야기가 담긴 기억 세포를 꺼내본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자주 보는 티브이 프로그램 가운데 <구름빵>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엄마, 아빠와 귀여운 고양이 남매의 이야기인데 짧은 스토리 안에 제법 깊은 내용과 아이들에게 많은 생각을 던저주는 그런 애니메이션으로 기억된다.
<고양이 남매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어느 날 앞마당 나무 위에 걸린 작은 구름을 발견한다. 하얀 구름은 깃덜처럼 가볍기도 했지만 수분도 많이 머금고 있어 폭신폭신했다. 남매는 구름을 곧장 엄마에게 가져갔고, 엄마는 구름으로 빵을 만들었다. 구름에 우유를 넣고 이스트와 소금, 설탕을 첨가한 다음 동글동글 작은 공 모양으로 빚어 오븐에서 구워낸 진짜 단어 그대로 구름빵이다. 아이들과 엄마는 빵을 한입, 두입 베어 문다. 신기하게 몸이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한다. 구름빵을 먹은 고양이 식구들은 마치 구름처럼 가볍게 떠올라 두둥실 어디든 날아갈 수 있다.>
이날은 무엇 때문인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마음이 너무 힘든 날이었다. 토론토에서 이주해서 밴쿠버로 왔지만 살고 있는 지역만 달라졌을 뿐 밴쿠버에서도 난 초대받지 못한 손님 같았고 여전히 캐나다는 우리를 거부하며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토론토에서 힘든 이민 생활을 같이 견뎌왔던 집사님들의 따뜻한 웃음과 손길이 너무 그리웠고, 아이들과 매일 출근도장을 찍었던 집 앞 도서관도 너무 그리웠다. 좁은 아파트에서는 이런 불안한 나의 마음과 부정적인 생각들이 여기저기 벽에 부딪히고 반사되어 아이들 한 테라도 닿을까 싶어 무작정 밖으로 나와서 걸었던 적이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아들이 다리가 아프다고 안아달라고 찡찡대는 소리가 귀에 들어올 때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생각보다 집에서 너무 멀리 걸어 나왔다. 아뿔싸... 유모차도 끌고 나오지 않았다. 아이 둘을 걸려서 데리고 나오다니... 평소에도 발이 약해서 잘 걷지 못하는 아직 3살이 채 안된 아들인데... 유모차도 없이 30분이 넘는 거리를 걸어서 나오다니 나 자신을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다. 정말 내가 엄마라고 불릴만한 자격이 있는 건지! 이 정도 거리면 벌써부터 아들이 다리가 아프다고 이야기했을 텐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난 아들의 소리도 듣지도 못한 체 나만 생각하며 걷고 있었는지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지갑도 들고 나오지 않았고, 호주머니에는 딸랑 현금 3불이 전부였다. 나란 엄마 정말 대책도 없고, 생각도 없다. 마침 도로변에 작은 중국 빵집이 보였다. 빵이라도 사서 먹이면 좀 더 수월하게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빵집으로 들어갔는데, 허름한 외관치고는 꾀나 비싼 가격때문에 한국의 곰보빵과 비슷하게 생긴 빵 하나만 겨우 살 수 있었다. 머릿속에 생각이 많다. 딸아이와 반으로 잘라서 주고, 아들이 저 큰길 사거리까지만 혼자 걸어가 줘도, 그다음부터는 내가 업고 갈 수 있겠다... 목마르다고 울면 어떡하지? 물도 안 가지고 나왔는데... 어쩌지.... 제발 조금만 견뎌다오... 그때 딸아이가 이야기했다.
딸 : "엄마! 이거 구름빵 닮았다"
아들 : "어?? 엄마 구름빵 샀어?"
엄마 : "어?? 어...."
빵을 한입 베어 물더니 아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들: "엄마!!! 나 구름 됐어. 그래서 엄청 빨리 뛸 수 있어. 구름빵 먹어서!!!"
아들이 막 뛰기 시작한다. 사실 뛴다기보다는 그 작은 발로 제자리에서 동동 구르는 모습이었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제법 빠른 걸음으로 집까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엉덩이를 좌우로 씰룩거리며 경보하듯 뛰는 아이의 뒷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고맙던지 아직도 그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잊을 수가 없다. 그날 먹은 건 구름빵이 맞았다. 나도 아이와 함께 슬픈 생각, 힘든 생각, 나에 대한 원망, 미움 다 내려놓고 함께 깔깔거리며 집까지 날아왔으니 말이다.
글을 쓰다 말고 내친김에 아들을 불렀다. 그리고 예전에 함께 보았던 구름빵 시리즈 중 한편을 보여주며 그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들은 귀까지 빨개지며 다시는 이 이야기 꺼내지도 말라고, 너무 창피하다고 정색을 한다. 거기에 누나까지 가세를 해서 넌 옛날부터 멍청했구나! 구름빵을 먹으면 날아야지 왜 뛰냐~!라고 핀잔을 준다. 난 아이들에게 과거 내가 못해줬던 말을 해주었다.
"관아 고마워. 그때 관이가 엄마가 준 빵이 구름빵이라고 믿어줘서 엄마가 안 힘들었어. 엄마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 관이가 엄마를 그렇게 위로해줬어. 엄마 그때 정말 울고 싶었거든." "그리고 진아 고마워, 그때 그거 구름빵 아닌 거 알면서도 관이랑 같이 신나게 뛰어줘서"
지금은 그때 그 시간 내가 왜 힘들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그 모든 힘들고 아픈 기억들이 그저 구름빵에 얽힌 우리 아들의 사랑스럽고 귀엽고 고마웠던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나에게 구름빵은 우리 아이들의 웃음과 날 믿어주는 아이들의 눈빛이다. 오늘도 엄마는 구름빵 먹었으니 둥실둥실 빨리 날아보마!
famiroyale https://instabio.cc/famiroyale
변화무쌍한 구름
캐나다에 와서 살면서 생긴 버릇이 있다면, 하루에도 여러 번씩 하늘을 올라다 본다는 점이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 보면 근심, 걱정, 무거운 마음이 한순간에 싹 씻기는 기분이 든다. 나의 들뜬 기분 때문일까, 봄도 아니고, 가을, 겨울은 더더욱 아닌, 유난히 여름의 파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내 기분을 한껏 설레게 한다. 너무 예뻐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푹 빠져들게 만든다. 뭉게구름 둥실둥실, 누가 이렇게 기가 막히게 구름을 뭉게뭉게 하다고 묘사했을까? 여름 하늘의 뭉게구름은 솜을 조금씩 잡히는 대로 떼어서 하늘에 자유롭게 붙여 놓은 것 같다.
한국에서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날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하늘 한 번 올려다볼 여유가 없었다. 어쩌면 공해로 찌든 뿌연 하늘을 굳이 올려다 볼 필요를 못 느꼈을 수 도 있다. 사실 출근과 동시에 온종일 사무실에 갇혀 지내다 보니, 언제 한 번 밖에 나가서 하늘을 바라 볼 틈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캐나다에서의 삶은 한국에서의 삶과는 마음 가짐부터가 다르다. 실내 못지않게 밖에서 지내는 시간도 꽤 길어졌고, 산책을 하다 보니 주변 환경에 더 많은 시선을 주게 되고, 특히나 하늘을 자주 쳐다보게 된다. 캐나다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손꼽아 보라고 한다면, 단연코 파란 하늘이 순위 안에 들어갈 것이다. 특히나, 연한 파란색 하늘에 큼지막하게 퍼져 있는 뭉게구름은 나로 하여금 당장 차를 몰고 물가로 달려야 할 것만 같은 충동질을 한다. 아이들 동화책 중에 ‘구름은 마치 엎질러진 우유 같다’라고 표현하는 책이 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생긴 모습들도 자유로움 그 자체다.
세상이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요즘 같은 시기를 ‘불확실의 시대’라고 부르는데, 구름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구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치 앞도 알 수 없을 만큼 어디론가 계속 흘러가며 형태가 쉬지 않고 변화한다. 놓치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구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음에도 구름은 어느 순간 저만치 흘러가고 만다. 예측할 수 없기에, 어떠한 정해진 패턴으로 그 모양이 반복되지 않기에 더 매력이 있는 걸까.
구름이 어디 뭉게구름뿐이랴. 구름은 참 여러 모습을 한다. 비가 오기 직전, 구름이 잔뜩 끼어 있을 때는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구름인가 구분도 안된다. 하늘이 구름으로 뒤덮일 때는 해가 구름 뒤로 숨어서 온 세상이 어두컴컴한 기운이 감도는 반면에, 비 온 후 살짝 개이면, 구름 뒤로 무지개가 선물처럼 떠오른다.
신비롭고 경이로움 그 자체인 자연의 현상과 변화 가운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바라보며 감사하고 감탄하는 일뿐이다. 오늘도 살아 숨쉬고 있음에, 조물주가 창조한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감상할 수 있음에 또 감사한다.
소냐민정@mjk_immigration
저 구름 너머
“마음이 갑갑할 때 언덕에 올라
푸른 하늘 바라보자 구름을 보자
저 산 너머 하늘 아래 그 누가 사나
나도 어서 저 산을 넘고 싶구나”
국민학교 때 배웠던 동요인데 56 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어쩜 이리 정확히 기억하고 부를 수 있는지….
학교 뒷동산에 올라가 즐겨 불렀던 이 노래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기억하고 있다니.
어디 그뿐인가 유치원에서 배웠던 ‘나는 기쁘다’ 란 노래를 한국말, 영어, 중국어와 일본어의 4가지로 불렀던 것도 그대로 소환해 낸다.
어릴 적 배움에 대한 기억은 이렇게 구름을 뛰어넘고, 나이를 건너 바람결을 따라 여전히 아름답게 들려온다.
사람들은 헛된 꿈이나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는 다 ‘뜬구름 잡는다 ’라고 표현한다.
“친구야 너 아니? 왜 이럴 때 구름에 비유 하지? “
………… …….. ……….
“그야 뭐 손으로 하늘의 구름을 잡을 수 없으니까 그렇지.”
“ㅎㅎ 그럴 테지 근데 말이야 친구야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
사람들의 생각도 변하는 법인가 봐
요즘에는 이런 뜬 구름을 잡을 수 있는 이들이 성공하는 시대란 말이지
바로 눈앞의 세계보다 먼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사람 ,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하늘의 구름도 , 별도 다 따올 수 있는 사람 말이야.”
“예전에는 참 많은 동요 속의 가사들이 순진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웠기에 둥그런 사회를 보여 주었지
그런데 갈수록 현대 문명의 발달로 정서 불감증에 걸린 많은 사람이 상상력을 잃어가며 꿈마저 놓쳐 버리고 있어 안타깝기만 해.”
“그런데 언제부턴가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잖니?
이상한 사람, 다르게 볼 줄 아는 사람이 더 잘되는 사회가 되었잖아.”
“친구, 커피 다 식었어.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우리 저 하늘을 바라보며 커피 즐기자.”
나도 모르게 머릿속 이 바쁘게 어린 시절로 여행한다.
오늘 오후, 드라이브를 즐기면서 바라보는 하늘은 예술 작품이었다.
너무나 맑고 파란 하늘에 좌라락 깔린 이불자락 같은 새털구름을 보면서
‘어떻게 저리도 멋지게 그림을 그렸을까’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가지고 계시는가요?
어깨를 좍 펴고 꿈을 펼쳐 봅시다.
구름 너머에 있을 그 무엇을 향해 –행복이 있을지 고난이 있을지 예측할 수는 없을지라도-당당하게 자신을 쏘아 올립시다.
우리의 잠재력과 호기심을 소금에 절이지 말고, 또 시간 속에 묶어 두지 말고
마음껏 발산해 보아요.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생기지 않잖아요?
“앉아 있는 사람은 일어서십시오.
일어선 사람들은 걷고
걷는 사람들은 달리십시오
저 우렁찬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여러분!”
아테네의 연설가 데모스테네스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고
눈썹을 휘날리며 달려오는 말발굽 소리까지 쟁쟁히 울리는 것 같다.
오늘따라 구름은 더 높이 공중 곡예를 보여주고
내 마음도 함께 출렁이며 따라 올라간다.
저 구름 너머로.
성은@life_coaching. sue
내일은 먹구름 낀 화창한 날이 예상됩니다
지금은 이름도 가물가물한 여러 종류의 구름의 모양에 따른 기상 변화 등을 달달 외우고 시험을 봤던 여고생 시절, 나는 앞으로 내 인생에 이런 구름 이름이 필요할 때가 있을까라며 투덜거렸다. 구름이 흰구름 먹구름 두 가지면 되지 이딴 걸 왜 외우래 하고 말이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소극적이나마 난데없는 구름에게 들이대려 했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나에겐 구름이라 하면 비가 오기 직전 먹구름이 그때 나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센치하고 몽환적인 분위기에 도취되어 커피 향 가득한 길거리라도 지나칠래면 갑자기 떠오르는 시상으로 시인도 되었다가 음악인도 되어보는 영감의 원천으로서의 먹구름 사랑은 아주 아주 오랜 후 어른이 되고 나서부터이다.
그전엔 그저 먹구름은 나의 취약함을 가려주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제때 빨지 못한 흰색 운동화의 꼬질함이 흐린 날씨 덕에 덜 표시 나는 거 같았고, 여드름 범벅 피부도 눈에 덜 띄는 것 같아 좀 더 예뻐 보이는 느낌이었다. 화창한 날 남들의 방방 거림도 흐린 날에는 모두 나처럼 차분해지고 의기소침해지려니 싶어 혼자서 고요한 그 시간에 감사했다. 나의 퇴보가 상대적으로 그렇게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착각을 하면서 늘 나는 흐린 날씨를 고마워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어두웠지만 편안했고 햇빛이 느리게 나오길 바랬다.
그러나 차마 그런 이유로 먹구름 낀 흐린 날씨가 좋다는 말은 자존감이 낮은 아이로 판명 날까 두렵기도 했고, 혹은 성격 이상한 애로 여겨질까 하는 조바심에 그저 흐린 날씨에 대한 내 취향으로 에둘러 변명했다. 차차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조금 자세하게 내 마음을 터놓기도 했다. 바야흐로 장장 수 십 년 전, 친한 동생으로만 여겼던 남자 후배의 사랑 고백 메모지는 먹구름에 대한 느낌을 다르게 만들어 주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그때부터 서서히 햇빛 쨍쨍한 날에도 내 안을 들여다볼 용기를 가졌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흐린 날씨와 먹구름을 좋아하는 누나가 자기 마음에 계속 들어와 앉는다는 손가락 오글거리는 문장이었다. 귀여운 녀석이 갑자기 남자로 여겨질 리 만무했을 그 마당에 내 마음을 얻기 위한 조미료 냄새나는 멘트로 드라마 찍지 말라며 어색함을 지우려 노력했다. 서먹함이 둘 사이의 공기를 채울 무렵 그는 “누나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며 내 손을 낚아채곤 햇빛 쨍쨍한 바깥으로 냅다 달렸다. 손을 뿌리치려는 나를 데리고 교정 한 복판에서 나를 세우는 이유를 나는 알고 있었기에 그 자리에서 눈물만 뚝뚝 흘렸다. 누나가 나를 안 좋아해도 좋으니 그냥 한번 이런 날에도 누나 보살펴주라고 내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났다.
무엇이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마냥 서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나보다 어린 그는 자기 계발서를 대체 얼마나 읽고 철이 그리 빨리 든 건가 싶어 빙그레 웃음이 난다. 그때 일 이후로 갑자기 내 모든 것이 바뀐 건 아니지만 소란과 불협이 싫어서 착한 아이로만 조용히 사는 것, 모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나니 방치되어 있던 나를 햇빛에서 봐도 친근해졌다.
좀 뻔뻔해졌달까. 나의 날것에 대한 타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일이 많아졌다. 인생의 반이 흘렀어도 종종 나는 먹구름 속의 평안함을 느끼고 있지만 적어도 구름의 종류로 나와 타인의 행복을 저울질하는 일은 없어졌다.
내일 먹구름이 낀다 해도 내 마음이 화창할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pinkpen@mindmap.anna
구름과 나
어느덧 8주 차에 접어든 릴레이 키워드 글쓰기. 금주의 키워드 선정은 내 몫이다. 무엇에 대해 써야 할까 고민하기보다는 순간 떠오르는 단어를 잡고 싶었는데, 그게 더 어려웠다. 이건 너무 추상적이야. 이건 너무 뻔할 것 같아. 이건 몇 주 전의 키워드와 너무 비슷해. 이건 좀 억지스러워. 이 단어는 그냥 마음에 안 들어… 떠오르는 단어들마다 내 안의 감독관에 의해 가차 없이 탈락되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니 왠지 피로해졌다. 사소한 일에 까탈스러운 접근을 하며 피로도를 높이는 것도 참 특 기지 싶다. 답답함에 숨을 크게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다 문득 창밖의 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드넓은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너는 참으로 평온해 보이는구나. 우습게도 순간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늘 어딘가에 속박된 듯 여유롭지 못한 내 마음이 못나보였다. 그래, ‘구름’으로 하자.
하늘 보기가 습관인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개를 든다. 고개를 들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하늘, 이만한 위로와 안식도 드물다. 반지하에 살던 시절에도 벽에 바짝 붙어 창밖을 올려다보곤 했다. 그나마 창문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매일 하늘 보기를 잊지 않았다. 우리의 낮을 따스히 비추는 태양이나 어둠을 고요히 밝히는 달, 머나먼 각자의 자리에서 이 지구별까지 강한 빛을 뽐내는 별들, 그리고 그 사이를 묵묵히 흐르는 구름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창공의 하모니는, 신이 우리에게 허락한 매일의 선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어쩐지 해와 달, 별만큼의 신비가 구름에게서는 느껴지지 않는데, 그건 아마도 구름이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해와 별은 말할 것도 없고, 지구별을 맴도는 달마저도 대기권 아래 갇혀있는 우리 보통의 인간들에겐 닿기 어려운 존재다. 우주의 신비적 존재가 아닌, 우리와 같은 바람을 맞으며 같은 공기를 호흡하는 구름이라니 왠지 친근감마저 느껴진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구름 위에 누워보는 상상을 자주 했었다. 포근하고 몽글몽글한 구름 위에 누우면 참 좋은 기분이 들 것 같았다. 보들보들한 솜털 구름이나 커다랗고 폭신한 뭉게구름에게는, 덩치 큰 나도 포옥- 안길 수 있겠지 싶었다. 고백하자면 어른이 된 지금도, 그게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전히 상상한다. 이 정다운 구름에게 한 가지 아쉬운 면모가 있다면, 한결같은 친구는 아니라는 점이다. 해와 달, 그리고 별에게는 정해진 위치와 궤도가 있다. 이들은 각자의 자리 나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하늘 위에 제 자리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은 구름뿐이다. 바람을 타고 정처 없이 흐르는 ‘하늘의 방랑자’라는 이름이 적절할까. 방향도 속도도 일정치 않으며, 기압과 온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드러낸다. 달의 변화처럼 매달 규칙적이지도 않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달라지는 내 기분처럼, 저마다 각자의 길과 속도를 찾아가는 우리 인생처럼, 구름은 그렇게 시시각각 다른 얼굴을 하고는 그저 바람이 이끄는 대로 흘러간다. 한결같지 못한 나처럼, 인간을 닮은 구름의 면모에 또 한 번 정이 간다.
분명 닮고 싶은 구름의 모습에 마음이 이끌려 시작한 글인데, 이 친구의 안쓰러운 모습에 오히려 생각지 못했던 위로를 얻는다.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내 살결에 닿는 미세한 바람의 움직임을 느낀다. 텅 빈 문서에 글자를 채우는 동안, 내 마음이 가득 차오른다. 오늘 나는, 구름과 친구가 되었다.
앤(http://www.instagram.com/ggoomhoy)
X 침대에 굴러도 내 침대가
"황서영 씨 이제 갑시다."
3시간 동안 항생제와 수액을 맞으며 기다리다 '도대체 언제쯤!'으로 지치기 시작할 무렵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다. 내 인생 첫 수술이다. 아니 더 엄밀히 말하면 내 인생의 첫 '전신마취 수술'이다. 내가 하게 될 수술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고 싶었지만 최대한 참았다. 모르는 것은 많았으나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이 진리라는 사실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씩씩하게 일어나서 복도로 걸어 나갔다. 간호사 선생님이 이동침대 옆에 서서 기다리고 계셨다. 침대를 좀 더 편히 오를 수 있게 준비된 간이식 계단과 곧게 서 계시는 간호사 선생님을 번갈아 보며 피식 웃음이 났다. 뒤가 시원하게 뚫려 허전하기까지 한 하얀색 환자복을 입고(심지어 치마처럼 생겼으니) 그 계단을 한 층씩 밟고 오르자 대천사의 안내에 따라 오르는 '천국으로 가는 계단'인 것 같은 느낌에 뒤 돌아보며 손이라도 흔들어야 될 것 같았다.
침대에 일 자로 누우니 침대가 움직였다. 좌회전, 우회전 그리고 또 한 번의 우회전, 덜컹하며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 마치 구름에 누워 부는 바람에 떠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쉬는 시간만 되면 친구들과 바퀴가 달린 선생님 의자를 복도로 가져가서 번갈아 서로 밀어주며 복도를 달려가던 기분과 비슷했다. 가위바위보나 묵찌빠 따위에 영 소질이 없던 나는 대부분 밀어주는 입장이었고 아주 가끔씩 의자에 앉게 되는 행운이 오면 그게 그렇게 재밌고 신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의자도 아니고 침대라니. '달려라, 달려!' 속으로 외치며 조금만 더 속력을 내주면 더 재미있을 텐데 아쉬워하며 그래도 이런 호사를 누리는 건 인생에 잘 없을 이벤트구나 철없는 생각을 했다. 건강보험이 되지 않아 600만 원이나 한다는 수술 비용에, 침대를 태워주는(?) 이 대목에 드는 비용은 얼마쯤일까? 3만 원? 6만 원? 6만 5천 원? 아직은 멀쩡한 몸으로 침대에 누워 이동하는 그 시간이 민망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마구잡이로 뻗쳐대다 보니 어느새 수술실에 도착했다. 번쩍. '오, 그 조명!' 의학드라마에서 꼭 나오는 앵글, 수술실 침대에 누운 시점에서 수술실 조명이 번쩍하고 켜지는 그 유명하고 진부한 장면이 방금 내 눈앞에서 일어났다.
구름 침대에서 옮겨져 진짜(?) 수술 침대에 오르자 사람들이 내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으악.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수술하면 원래 이렇게 발가벗겨져야 하는 거였어?! 나체가 되는 것보다도 자의가 아닌 타인에 해 옷이 벗겨진다는 그 이질감에 기분이 영 이상했다. 오른팔은 링거 다발에 연결되고, 왼 팔은 움직이지 못하게 테이프인지 붕대인지 모를 것으로 포박되어 등 아래쪽으로 고정되었다. 아, 하필 지금 코 끝이 간질거리는 건 무슨 일이야. '이것 참 난감하네'하는 사이 호흡기가 씌워지고,
"졸리면 주무시면 됩니다."
"우, 즈 근듸 갑자기 코가 근즈르운......."
끔찍한 공포에 눈을 번쩍 떴다. 수술실 바깥 어두운 복도였다. 밝고 분주했던 수술실과는 달리 수술이 끝난 환자들이 마취가 깰 때까지 대기하는 장소로 쓰이는 듯한 복도는 어둡고 한산하고 우울했다.
'와, 씨발!!!'
눈을 뜨자마자 내가 한 말이었다. 아니, 입 밖으로 낼 수 없어 속으로 외친 말이었다. 교양이나 에티켓 문제가 아니라 마취 때문에 혀도 성대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의식은 이미 돌아와 버렸고, 통증은 배고픈 호랑이의 발톱처럼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사무라이나 조폭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그 할복 장면이 내 뱃속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었다. 마치 마취를 한 상태에 몰래 칼을 배 속에 찔러 넣어 놓고 내 의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드디어 내가 의식이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마자 물놀이를 하는 연인들이 신명 나게 노를 젓는 것처럼 내 뱃속에 찔러 넣은 칼을 신나게 휘젓는 느낌이었다.
'살려주세요. 선생님, 살려주세요. 제발!!!'
하고 말을 하고 싶은데 소리를 낼 수 없어 '으어우에요 으아으 으아우에요 에으'하는 모양으로 먹이를 받아먹는 붕어처럼 입만 뻐끔댈 뿐이었다. 할 수 없이 마취가 풀린 오른쪽 팔을 들어 허공에 휘저었더니 누군가 급하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극심한 고통 속보다 더 무서운 건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는 상태였다. 통증과 공포감에 온몸이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벌벌 벌 떨렸다. 내 몸이 너무 떨리는 바람에 이동 침대의 바퀴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내 상태를 확인한 그 사람은 어디론가 급하게 전화를 하며 알 수 없는 의학용어로 내 상태를 보고했다. 오더를 받은 간호사 선생님들이 달려와 내 몸을 누르고 진정제와 진통제를 주사하는 동안에도 내가 타고 있던 침대는 여전히 사납게 덜컹거렸다. 3시간 전에만 해도 신난다며 그렇게 좋아했던 구름 침대였는데 이젠 차가운 칼날같은 가시가 박힌 침대처럼 느껴졌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격렬한 통증 속에서 많은 영화나 드라마들 속의 장면들처럼 내 인생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거나 보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치거나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한 잠 푹 자고(?) 일어나면 수술이 잘 끝나 있을 거라고 했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고 침묵 속에서 그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아니잖아!!!ㅠㅠ)
회복실로 옮겨서도 진통이 너무 심해 진통제와 항생제를 최대 허용치까지 맞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가시 침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구름 침대가 되었다. 나른하고 몽롱한 게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이다. 하룻밤 사이에 같은 병원 침대가 천국과 지옥을 여러 번 오간다. 지옥도 싫고...... 천국도 싫다. 그저 평범한 일상이 최고다. 날아라 구름 침대도 한 번이면 족하게 즐거웠다. 얼른 내 침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다.
다시 돌아가면 평범하고 게을렀던 내 침대 속에서 누렸던 일상에 백 번 천 번 더 감사하며 살아야지 다짐하며 모로 돌아눕는다.
황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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