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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봉씨 Oct 26. 2021

친구를 위하는 마음

다 담을 수 없는 왁자지껄의 기록


<나의 '심심이'는 의외의'재미'라는 아이를 데리고 와서 나를 달래곤 한다.>



지연이가 자기 동네에 비건 반찬가게가 열리는 날 만나자고 했다.

지연이 딸에게 줄 그림책도 잔뜩 챙겨놓은 터라 흔쾌히 오케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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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이는 중학교 친구이다. 과감하게 담임 수업 때 뒷자리에서 고무줄로 손 총을 쏘던 사이이다.

서로 큰 키가 같아 집에 갈 땐 어깨동무를 하고 다녔는데, 커트머리에 보이시한 목소리를 가진 내 친구가 어깨동무를 하면 다른 애들의 흘끔거리는 시선을 느꼈다.

그럴 때면 친구에게 말은 못 했지만 우리를 레즈비언으로 보는 건가(당시 그런 게 많아서.) 해서 어깨동무를 그만했으면 했다.

지금은 나보다도 세상 여자여자한 엄마가 되었지만.


우리가 오랜 친구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나와 너무 비슷한 면 때문일 것이다.

낯을 가리고, 친구가 별로 없고, 위생에 예민한 면이 있으며, 고춧가루 많은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취향적인 면.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내 세계에 빠져 사는 나와 다르게 "네가 다른 친구 두 번 만나면 나는 세 번 만나줘야 해. 질투 난 단 말이야." 라며 장난스러운 집착을 하는 친구의 사랑 때문이다.

(다른 친구와 더 자주 만난 이유를 여러 번 해명해야 했다.)

보컬 트레이너인 지연이는 현재 음악 하는 남자와 사랑에 빠져 예쁜 딸 낳고 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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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전 지연이에게 전화가 왔다.

"고구마 구워 놓을까?"

"응."

"언제 출발해?"

"대충 옷만 입고 나갈게. 맨 얼굴도 상관없잖아?"

"그렇지. 빨리 와."


길을 빙빙 돌아 도착한 친구 집은 아주 더웠다. 나시에 팬티만 입어도 될 정도이다. 아이가 있는 집은 대체로 덥다. 익숙한 온도가 아니라서 내 얼굴은 금세 벌게졌다.

3살 때 본 딸은 5살이 되어 내게 낯을 가리고 있었다. 내 책을 좋아해서 나와의 만남을 기대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수빈이 엄청 말 많은 거 다 알아. 목소리 엄청 큰 거 전화하면서 다 들었거든. 흐흐."

자다 일어나 수줍게 뚱해있던 아이는 눈을 비비고 엄마에게 귓속말을 시도한다.

"엄마랑만 몰래 이야기하고!! 이모 서운하다!" 아이는 입꼬리를 올렸다.

"수빈아. 이모가 책 가져왔어. 신기한 거 보여줄게. 이거 봐."

그 뒤로 나는 수빈이 "이모 이리 와 봐."의 늪에 빠져 계속 끌려다녀야 했다.

귀여운 것.


내가 온다고 하니 지연이는 전 날 밤늦게까지 내게 줄 비건 빵을 한가득 구웠다.

"빵 싸갈 통 가져왔어?" (내가 제로 웨이스트 지향하는 걸 아는 친구라 나보다 더 스트릭트 하게 군다.)

"아니, 빵 만들어 놨을 줄 모르고 반찬통만 가지고 왔지."

"내가 만들어준댔잖아! 이 바보야!"

"진짜 몰랐어. 빵 구입할 때 쓰는 천가방이 있긴 한데, 거기 담아갈게."

"그래 , 좋다. 다 네 거야." 가방 한가득 10개가 넘는 빵이 담기고 있다.

"야, 그만 담아! 다 못 먹어!"

"알겠어. 파운드케이크는 속이 안 익은 듯 맛없게 됐어. 겉에만 뜯어먹고 안에는 버려."

"싫어. 왜 버려. 어렵게 만든 건데. 남기지 않고 다 먹을 거야. 음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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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번 본 지연이의 남동생이 집에 방문한단다. 23년 만인가, 내 나이가 벌써... 오.

3살 어린 남동생의 얼굴이 가물가물하다. 수완이 좋아 골프 사업으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크으.


"와, 성준아, 이게 얼마만이야. 오랜만이다."

"누나, 안녕하세요."

"얼굴이 좀 다른 것 같은데?"

"쟤 성형 안 했어. 그대로 큰 거야. 잘 컸지?"

"어 그러네. (위아래 훑훑)... 성준이가 어른 다 됐구나..."

그 말에 우리 셋 다 웃음이 터졌다. 내가 말하고 어이없어서  벌게졌다.

"누나 저 이제 30대 후반인데.ㅋㅋ"

"그러게.ㅋㅋㅋ 그런데 너 재력은 동생이 아니더라? 누나 오랜만에 봤으니 용돈 좀 줄래?"

"ㅋㅋㅋ성준아, 미라가(내 이름) 전화로 뭐라는 줄 알아? 너 양딸 필요없냬.ㅋㅋㅋ"

"필요 없니? 나 너의 딸이 되고 싶어.ㅋㅋㅋ아빠."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녁이 되어 지연이는 내게 밥을 차려주겠다며 냉장고 문을 열고 한참을 쪼그려 앉았다.

"너 주려고 어제 부침개 반죽했는데, 새우를 깜빡하고 넣었지 뭐야... 그럼 뭘 만들어야 하냐."

"간장에 밥 먹어도 돼. 난 아무거나 먹을 수 있어."

"싫어! 허접하게 차려주는 건 내가 싫어!"

남동생: "누나 비건은 밥이랑 간장, 그렇게 먹어요? 안 건강하겠는데..."

"아니거든? 집에서는 영양 균형 있게 잘 챙겨 먹거든? 야. 너 나랑 다음에 건강검진 맞짱 뜰래?"

"건강검진 맞짱이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연이는 깔깔대며 냉장고를 탈탈 털어 간장 떡볶이를 만들기로 했다.

"미라야, 떡은 먹니?" -응.

"단무지는 먹니?" - 응.

나의 식성에 맞춰 고민하게 하는 게 미안함도 들었지만 고마움이 가장 컸다.

나의 지향최대한 맞춰주던 친구는 정도는 이랬다.

"나 비닐장갑 껴도 돼?"  / 음... 나라면 안 쓰지만 네가 필요하면 써.

"너한테 줄 빵, 포장지에 싸도 돼? 유산지야."  / 아냐, 내 가방에 알아서 담을게."

"버섯은 먹니?"  / 응.

"깨소금 넣어도 되니?"  /.... 아 진짜, 장난하냐! 버섯이랑 깨소금을 동물로 만드냐고!"

"조심스러워서. ㅋㅋㅋ"

남동생: "누나, 곤충은 먹어요? 미래 식량이라고 하잖아요."

"안 먹어! 논 비건일 때도 곤충식은 안 했어. 그리고 비건이면 곤충도 안 먹지.."

친구: "성준아, 이렇게 생각하면 돼. 눈, 코, 입 있는 건 안 먹는다."



밤 10시, 차 끌고 나가면 으레 늦게 들어가기 때문에 이왕이면 지연이 남편(오빠)에게 인사하고 가려고 소파에 앉았다.

지연이가 대뜸 물었다.

"너는 연애할 생각이 아예 없는 거야?"

"아니? 완전 있는데?"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내 말을 믿지 않는 내 친구는 나를 연애 포기자로까지 생각한 건가.

"음악 하는 사람 괜찮아?"

"직업을 따지진 않아."

"내가 어저께 오빠랑 네 얘길 했거든. 승태 오빠를 소개해 줄까 하고. 성격이 밝고 되게 좋아. 바깥사람들한테는 맺고 끊는 거 확실하고, 자기 사람한테는 다정다감해. 그렇지, 성준아?"

"응. 약간 흑형 스타일이에요."

"흑형? 만나서 막 주먹 대고 와썹 하는 분이야?"

"나 만났을 때 그런 식으로 인사한 적 있어요."

"그리고 그 오빠 이번에 회사 대표 직함도 달거든. 너랑 같은 야행성 스타일."

"그런데 나는 결혼 전제로 만나는 건 싫어. 지금 결혼 생각이 없다 보니 미래를 정해놓고 만나는 건 좀 그래."

"음... 그건 좀 그렇겠네. 만나다 보니 그럴 마음이 생기면 몰라도."

"어. 소개팅을 안 해봐서 서로 이성의 포커스로 마주하는 게 부담도 있고, 더군다나 내가 채식을 하고 환경을 생각하니까 그런 걸 이해해주지 않으면 어렵지."

"밤새 일하는 사람이니까 건강하게 먹는 건 당연히 좋아해. 비건식은 건강해서 좋아할 거야. 평소엔 알아서 먹고 너 만날 때 채식하면 되는 건데 뭐가 문제야."

상대가 내 신념을 존중은 하더라도 결국 함께하기에 아쉬워할 거란 생각은 떨쳐지지 않는다.

"얼굴도 괜찮아. 그런데 딱 하나 단점이, 키가 작아."

"얼마나?"

"나보다 작으니까... 좀 작지. 그런데 그거 빼면 되게 괜찮은데."

"나보다 작은 건 좀 그렇다. 알고 지내는 정도가 낫겠어."


집에 가기 전 어머니가 방문하셨다.

어머니 말을 들어보니 나는 다행히 예전과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언제나 말랐고, (현실은 복부 비만이지만)

언제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고, (여름에도 한결같이)

같은 말투와 목소리에,

언제나 같은 얼굴이란다. (이건 잘못 보셨어요.)

친구는 전화 통화할 때마다 내 목소리에 어두움을 늘 걱정하며 다른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럴 때면 '난 아무렇지 않아. 집에만 있어서 목소리가 가라앉는 것뿐이야."라고 말했다.

밝은 에너지는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다른가보다. 나를 아는 사람들과 함께 있 오늘은 발랄했던 중학생으로 돌아갔다.



담지 못할 만큼 많은 웃긴 얘기들을 나누고 밤 10시 반, 차량 없는 어두운 도로를 뚫고 달렸다.

심심함이 데려오는 재미들은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일깨우게 한다.

생각보다 지연이가 나를 많이 신경 쓰고 있다는 생각에 나의 무심함에게 살짝 채찍질을 했다.

지연이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신경 쓰는 게 없는데 어째서 나를 믿고 가장 친한 친구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내가 고치고 싶은 단점은 잘 알고 있으면서 좋은 점은 잘 모르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것들은 어째서 사랑을 받고 나서야 생각하고 깨닫는 건지.  내가 먼저 줄 생각은 왜 안 하는 건지. 마냥 절제하는 나 나 모르겠다.


2021년의 마지막까지 시간 여유가 있을 때 그동안 소홀했던 분들을 만나자고 계속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한가함이 기억 속 좋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덕에 일을 받아야 할 이유가 생기고 있어서 조금 복잡하다.


돈을 벌면 밖을 잘 안 나간다. = 오는 연락도 거절한다.

사랑을 하면 주변 시야가 차단된다. = 오는 연락만 받는다.

일을 쉬면 은혜를 베푸는 까치처럼 돌아다닌다. = 먼저 찾아다닌다.(마음은 불안)

이 세 가지의 밸런스를 잘 맞춘다면 더 다채로운 삶을 살 수도 있겠지?

-머리론 알면서 인생은 도돌이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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