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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봉씨 Nov 25. 2021

가족이라서

죽음 앞에서의 가족

과거 인연이 있던 편집자에게 보고 싶다고 연락했다.

"힝, 아직은 움직일 수가 없어.

아버지 건강이 안 좋아서 검사하러 가요. "


얼마 뒤에 다시 연락했다.

"아직 검사 결과가 안 나왔어요.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아."


나는 그 뒤로도 여러 번 메시지를 보냈던 것 같다.


"흥! 계속 연락도 없고!"

"아버지가 희귀 암에 걸렸어. 젊을 때 일했던 곳이 발암물질이 많이 나는 곳이었는데, 뒤늦게 발병돼서 아마 한 달도 살기 힘드실 거야."

"아... 어떡해. 삐질 상황이 아니었네요. 마음이 무겁겠어요. "


그 뒤로 그녀에게 안부를 물으면

 "나 아버지 오줌 받아야 해."

"내가 아빠 고추도 닦아드려. 그게 그렇게 되더라고요."

"밤새 지킬 사람이 없어서 내가 계속 있어야 해."


힘들다는 말 대신 부단히 노력 중인 말들을 했다.


여자라서, 남자라서, 게다가 가족이라서 더 보여주고 행동하기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이

정작 위기의 순간에는 딸이기에, 아버지이기에 가족이기에 가능한 일들이 되나 보다.  

그리고 얼마 후 연락을 받았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잘 보내드리고 왔엉. 곧 만나요!"

"아이공... 지금보다 더 좋은 곳으로 떠날 준비 중이실 거예요. 만나서 맥주 한 잔 해요."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함께 작업 중인 디자인 실장님에게  연락 왔다.

내가 마감 날짜보다 한 달이나 빠르게 작업을 넘겼는데도 피드백은 보름이 지나서야 들어왔다. 


사진 이미지를 중심으로 주변에 그림을 넣는 게 나의 일.  발주할 글을 서둘러 적는 바쁜 디자이너의 모습이 상상됐다.


"또봉씨, 내가 피드백을 너무 대충 넘겼죠.  주변으로 삽입될 진 이미지 결정을  했는데, 미안하지만 일단 알아서 그려면 안 될까? 내가 마감말일로 착각한 거 있죠? 편집장한테 독촉 연락받고 알았잖아. "


" 없이 그림 작업 될지 모르겠. 그나저나 저도 실장님 마감 날짜를 기억하고 있는데, 어찌 잊으셨어요."


"실은 내가 일에 집중을 못해서 우유부단한 상태예요. 엄마가 돌아가실 것 같은데, 마감을 계속 쳐야 하는 상황이라. 내가 무슨 기계인가 싶고 그래."

.

.

.

약 5년을 알고 지낸 실장님은 한결같이 일에 치여 추레한 얼굴을 하고 타나 진한 커피를 주문한다.

짙은 카페인이 흡수된 후 일 얘기는 최대한 짧게, 사는 이야기 8할을 쏟는다.


나의 이혼사. "저 그 작가랑 이혼했어요."

-축하해. 잘했어. 결혼은 굳이 할 필요 없는 거야."


나의 개인사. "oo작가가 내 전 남편이랑 사귀거든요, 그런데 제 sns 과거 행적을 다 뒤지고 간섭해요."

-그거 미친년 아니야?


가끔 만나는 사이면서 별의별 소식을 전한다.


그분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엄마랑은 왕래를 안 하고 산지 오래되었다는 이야기. 저마다의 사연이 있겠지만 가족이라고 해서 꼭 함께해야 하는 건 아니라며 명절에도 그렇고 절대 지 않을 거라는 어조가 상당히 단호했다.




책에서 이런 글은 읽었다.


가족은 가장 보편적인 종교다. 마땅히 보듬어주고 용서하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며, 그것을 부정한다면 나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는 교리 때문에 우리는 종종 살면서 지옥을 맞는다.

나의 기대와 가족의 기대가 상충할 때,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궁극적으로 나의 행복을 지지해 준다는 믿음으로 이기적인 선택을 하려고 한다. 나의 가족도 철저히 자기 행복을 위해 살아주기를. 날 위해 아무런 희생 하지 않음으로써 아무 채무감도 지우지 않기를 바란다.




엄마의 소식을 들은 그날, 실장님은 마감을 제쳐두고 지방으로 내달렸단다.


"오랜만에 보러 간 게 돌아가시 직전의 모습이라 마음이 안 좋더라. 현재 마감 너무 많아서 움직이기도 힘든 상황인데 이번 주 안에 돌아가실 것 같아. 일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저 그 마음 이해해요. 실장님, 마감은 좀 미뤄도 돼요. 어차피 엄마 떠나면 뭘 해도 후회할 텐데 마지막 모습 뵙고 후회하는 게 낫잖아요."


"그렇겠지? 그래야지."


실장님은 과거의 무심을 후회하고 있을까?

마감을 할 때까지만이라도 버텨주길 바란다 메시지에서 그때와 사뭇 다른 '애정'이라는 게 비쳤는데 말이다.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나의 행복을 지지해 줄 거라는 믿음으로 이기적인 선택을 한다라는 건 결국 '정말 사랑한다면'이라는 전제로 채무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 독립된 마인드를 부모가-나처럼 장착해주길 희망하는 것일 뿐,  현실은 숨어서라자식을 걱정하는 분들이기에 내 선택이 뭐든  채무감은 생기는 것 같다.




오늘 최종 마감을 하고 파일을 넘겼다.

"또봉 씨, 일을 떠맡겨버려서 미안해요. 신세를 일로 갚기는 어려울 것 같고, 끝나면 든든한 밥 한 끼 해요. 아니면 의뢰할 게 있다면 작업 기부로 해줄게." 

"수정할 거 생기면 연락 주세요!"

"안 할 거야. 밥이나 먹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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