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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봉씨 Sep 13. 2022

어장관리

2021.12월 중 하루.

"또봉아, 그런  어장관리야. 좋지 않아."

나를 좋아하는 영수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람을 천천히  알아가고 싶어 하는 나와 다르게,

운명을 직감했다며 표현을 서슴지 않는 영수 때문에 감정의 혼란을 겪는 중이다.

 


우린 서로 카톡 메시지로 주고받았다.

-영수아,  연애 생각이 없다고 했잖아.

그런데 네가 그렇게 잘해주면 난 나를 알기 때문에  너랑 만나. 그런데 난 아직 다른 사람들도  만나면서 넓게 보고 싶어.


-글쎄, 지난 얘길 들으면  막상 네게 잘해 준 사람들은 없는 느낌이라 그럴 필요가 있나 싶은데... 아니지. 네가 만난 사람들을 내가 판단하는 건 아닌 거야. 미안.

어쨌든 난 잘해줄 거야! 모자 부분 있겠지만 노력할 거야.


-영수야. 난 네 생각보다 난 엄청 수동적이고 표현이 없어. 그래서 나랑 반대되는 주장 강한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건 사실이야.

누가 확 휘어잡으면 끌려가기 쉬운 사람이라 어찌 보면 되게 쉬운 여자일지 모른다고 스스로 실망할 때도 있어.


-그런 사람 같았어. 그런데 너의 그 점을 파고들어서 일부러 강하게 행동하고 싶진 않아.

그리고 너의 생각 존중해.

내 사람이라고 다른 인맥 채널을 닫게 만들고 싶지 않.


-하지만 지금 마음 가는 대로 마구마구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연애 시작하면 그렇게 못해. 그리고 너, 내가 야옹이 사장님 지인으로 만나는 것도 질투하잖아. 너랑 내가 사귀는 것도 아닌데 나 왜 눈치 봐야 하는 거야?


-그 사람은 친구라며. 우리가 사귀면 신경 쓰이지 않아. 우리가 안 사귀니까 질투가 나는 거야.

그분이 네게 자주 연락하고 만나는 거에 대해서 말하자면, 난 남자는 불필요한 행동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그 사람은 또봉이한테 이성 감정이 있다고 생각 드는 거야.

하지만 나랑 사귀 인맥 줄일 필요 없고, 이성 친구들 만나도 상관없어.

 

-영수는 사귀면 누구든 만나도 상관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솔로이기 때문에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거야.

연인이 있다고 하면 못 만나지. 어딘가 불편하니까.

넌 4년이나 솔로 기간 가지면서 신나게 놀았으면서 나는 고작 4개월인데. 나 좀 놀자!

이제 막 사람들 만나며 즐겁단 말이야.


-만나도 돼. 바람만 아니면. 너랑 나랑 고리가 있다면 신뢰와 믿음으로 너를 존중해줄 거야.


-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사귀게 되면"이라고 말하네. 내가 생각하는 지금의 문제는 솔로인데도 묶여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거야.

놀다가 이성적으로 다가올 사람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마저도 네게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마냥 놀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거야.


-슬프네 조금. 이성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다 만날 건 아닐 텐데,

그런 생각이라면 네가 아까워.


-영수의 선택이 나인 이상 네겐 슬픈 일이지만,

나는 아무것도 확신하지 않고 선택하지 않은 상태의 사람이잖아.

그동안 인간관계에 편협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 여러 사람을 만나고 싶은 욕심이 드는 건가 봐.


-너 같은 선한 사람은 그런 거 안 했으면 싶고 결론적으론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 들어.

여럿 만나다가 '이 사람이다' 싶은 생각이 들면 잡겠지. 아니다 싶으면 적당히 만나고 헤어지고.


-원나잇을 꿈꾸는 게 아니야. 그동안은 나 좋다는 사람 만내가 먼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어서 주변을 보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거야.


-난 이해가 좀 안 가.

통화 가능 해? 채팅으로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아.


-응. 그런 건 물어보지 않고 바로 전화해도 돼.




차근차근 조심스럽게 꺼내는 영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어장관리처럼 비칠 수 있구나 생각했다.

영수는 내게 너무 좋은 사람인 걸 알고, 누구보다 배려해준다. 이렇게 끊임없이 예뻐해 주는 사람은 처음이다. 내가 비건인 것도, 환경주의자인 것도 존중하고 맞춰준다.

맹신하진 않지만 혈액형도  mbti도 내가 선호하는 타입인 거에 대해서는 약간 놀랐다.

그런데 지나친 자상함과 외모는 정말 내 취향이 아니라는 데에서 오는 고민은 위의 좋은 점들에 비해 너무 가벼운 이유인 것 같아 또 고민한다.

사귀게 되면 희한하게 외형적인 부분도  사랑하게 되지만, 사귀지 않는 관계에서 그게 매력으로 어필될 리가 없다.


어장관리라는 말에 뜨끔한 또 다른 이유는,

매일 연락 오는 남자 친구 때문이다.

우연하게도 영수와 혈액형도, mbti도 같다. 자라온 환경에서 오는 성격의 다름은 꽤 있지만 대화를 해볼 때 느껴지는 본성이 말이다.

친구로서 잘 맞고, 서로 로맨스 따위 없다는 생각으로 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바깥을 다니다 채식 재료를 발견하면 날 위해 사다 놓고, 집에 초대를 하고, 요리를 해준다.(거창할 거 없이 냄비째로 들고 오는.)

쇼핑 세일 정보를 공유하며 "우리 옷가게 털러 가자."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짓궂지만 재미있고 츤데레 같은 친구이다. 

멜로 눈빛 따위 서로 없다 보니 이상의 감정을 서로 기대하지 않아 오히려 대하기가 편한 여자 친구 같은 느낌이.

여자라고 치면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친구인데,  연애를 하면 이성이라는 점은 걸림돌이 될 거다.

이성친구 집에 놀러 가는 여자 친구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영수는 계의 꼭대기에서 날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한 눈을 팔 수도,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영수의 전화 통화를 마치고, 걸려오는 친구의 전화를 받으며 시답잖은 이야길 눈다.


어장관리라...맞는 것도 같다.

그 친구른 어장하는 건 아니지만 내 마인드가 그런 것 같아.

영수에게 누굴 사귈 생각 없다고 하면서도  딱 자르지 못하고 핑계를 대고 있니...영수를 사귀긴 싫고 놓치고 싶지는 않은 욕심이 글에 보인다.

그러 다른 사람들 알아보고 싶다는 잔인한 말까지 하다니.

을의 연애를 하고싶지 않다고 한 게 바로 전 연애의 마침표 이후인데, 누군가 날 일방적으로 좋아한다는 것만 가지고 선택권은 당연히 나라는 뉘앙스가 진한것이, 참 잔인고 거만하다.

앞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흐를까....

연애에 신중하고 싶고, 나를 더 알고싶고, 내 주체적으로 모험도 해보고 싶고, 새로 생긴 신념을 확고히하고 싶었을 뿐데.

흥적인 사람이니까 당장 50:50인 상황에서 뭐가 먼저 밀려들어오느냐에 따라 또로록 굴러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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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쓴 후로 9개월이 흘렀다.

연애도 벌써 9개월째 접어들고,

남자인 친구와의 연락은 인스타에 좋아요 누르는 정도로 줄었다. 행복함이 생겼지만 씁쓸함도 절반 담겨있다. 역시 모든 관계를 잘 해내기란 어려운 일다.

흐른 시간만큼 글로 써서 스스로 결론내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정답이 없는 인생 바퀴 안에서 난 여전히 물음표를 달고 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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