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보다 나은 오늘

by 또봉씨

고양이를 어깨 위로 걸쳐 넘치게 껴안고 털 속에 얼굴을 파묻은 채 생각했다.

‘너는 날 떠나지 않아. 내가 널 떠나지 않는 이상.’


반려묘/ 반려인.

똑같이 반려라는 말을 붙이지만

어떤 건 모든 걸 품어줄 수 있는 내 자식 같은 마음으로 대하고 어떤 건 언제든 안 맞으면 떠나보낼 각오를 한다.

애완동물을 반려함은 책임이 필수이고 사람, 그중 연애는 책임이 선택이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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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때문인지 진짜 추위 때문인지 입맛이 없다.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을 켜니 메일이 두 개, 모르는 번호의 부재중 전화가 하나 와있다.

다 일에 관련된 것들이다.

피드백을 두 달 만에 줘 놓고는 펀딩을 계획 중이니 다음 주 안에 마감해 달라는 99퍼센트의 통보.

(남은 1%는 “되도록”이라고 썼기 때문에.)

내 감정 상태가 침잠되어 있지만 일은 굴러가야 하기에 강풍 속에서 겨우 흔들리는 기둥을 붙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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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매일 재던 체중계 위에 올라섰다.

0kg. Err.

뭐지. 고장이 났나.


-몇 킬로야?

-안 재봤는데.

-거짓말하지 마. 한 번은 쟀을 거 아냐.

-얼마 전에 쟀을 때 110 키론가…

-뭐? 왜 늘었어? 100킬로까지라도 빼라니까!

-노력하고 있는데 이상해. 조깅도 하는데.

-먹는 게 중요한 거 알잖아. 사귀기 전에 식단으로 뺐으면서 핑계 그만 대. 그리고 우리 부부 아니고 연인이야. 왜 이렇게 긴장감이 없어?

-알았어. 뺄 거야. 우리 귀요미 또 잔소리네.

-대체 혼자 뭘 먹는 거야. 100킬로 기다린 게 2년 째인데 어째서 더 늘기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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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계가 정리되자마자 우리 집 체중계가 의무를 잃었다. 모든 게 소거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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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현관이 시끌벅적하다. 우리 집 현관문 앞에 누군가 라디오를 뒀나 보다.

그리고 어떤 부부의 대화소리가 들린다.


-거기 쓸었어?

-응. 건물이 얼마 안 됐나 봐. 그렇게 더럽지 않아.


드디어 먼지가 뒤엉켜 보기 싫던 빌라에 청소업체를 선정했나 보다. 관리인(그래봤자 똑같은 세입자)에게 몇 달 전부터 빌라 청소를 맡기자고 건의했었다. 이사를 와서 계단을 오르내리며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보고 있노라면 내 집안 먼지인 양 불편했기 때문이다.

라디오 DJ와 부부의 목소리가 멀어졌을 때 택배 박스를 챙기러 대문을 슬며시 열었다.

오랜만에 맡는 현관의 방향제 냄새.

구석구석 반질반질하게 쓸고 닦아 짙어진 바닥.


이사 오고 처음으로 집 앞이 깨끗해지고 체중계도 0으로 변한 것은 새로 시작하라는 의미인가.

해석하기 나름인 의미를 하나씩 덧붙이며 스스로 위로하기 시작했다.




오늘 오후.

작가와 채팅을 하다가 어쩔 수없이 나의 이별 이야기를 했다. 짧을 수 없는 이별의 사유를 서너 줄로 간략하게 말했다.


-그래서, 헤어지자고 직접적으로 말한 거예요?

-마음이 멀어졌다고 이야기했는데 뭘 원하냐며 결론을 채근하길래요. 날 붙잡고 싶었으면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대화로 이어갔어도 되는 건데 비관적이고 극단적인 말만 하니까... 대화가 어려워서 말했어요.

-남자가 너무 조급한가 보다… 지나고 나야 아는 것들이 있죠. 조급하면 악수만 두게 되더라고요.

시야가 좁아지니까.

-슬픈 말이다.



“조급한가 보다”라는 말에 또 펑펑 울었다.

나와의 위기를 맞을 때면 남자는 대화로 풀기보다는 겁이 많아서 소리 지르는 고양이 같았다. 우린 분명 대화하고 있었지만 다른 세계 사람끼리 이야기하는 듯 서로 이해하지도, 이해시키지도 못했다. 그가 소리 지를 때는 위협적이라기보다는 늘 억울하고 서러운 울분이었다. 실제로 가여울 정도로 잘 울기도 했고.


도돌이표 대화에

“말이 돌잖아. 우리 그만하자. 너무 지쳐”라는 말을 뱉으면 그는 깜짝 놀라 다툼의 논지를 다 잊고 험한 말을 쉽게 한다며 충격을 금치 못했다. 화해한 뒤엔 항상 "그런 말 하지 마. 알겠지?" 하며 다짐을 받아냈다.


"너랑 대화가 너무 어려워"라는 나의 말에 좁아진 시야로 열심히 반박하는 조급한 이미지가 자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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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단 괜찮은 하루다.

동료 작가를 만나 일 얘기나 실컷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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