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끝낼 것인가

당신의 끝을 응원합니다

by 글쓰는클레어


우리는 흔히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할까?

되지 않는 일이나 확신이 없는 일을 계속 붙잡고 있는 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인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정해진 답은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언제가 '가야할' 때인가는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끝낸 것들


대학시절, 한겨례 사회적기업가학교를 수료하면서 한 사회적기업에서 인생 첫 인턴을 하게 되었다. (무급이었지만 당시로써는 무급인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스물 한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서였을까. 나는 주로 해외기사를 찾고 번역하여 블로그에 올리는 비교적 단순한 일을 맡게 되었다. 같이 들어간 다른 분은 경력과 능력상 당연히 중요한 자리에 함께 하게 되었는데, 나는 회의에도 끼워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기분에 괜히 재미가 없었다. 결국 2~3개월만에 퇴사를 결심했다. 나조차도 찝찝했다. 이렇게까지 어떤 조직에서 뭔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느낌은 처음이어서... 지금 돌아보면 그만둔 것은 잘한 일이지만 나 또한 경험부족으로 회사에 많은 도움은 주지 못했던 것 같다.



이후 대학생 비영리단체인 Enactus (당시 SIFE) 에 들어가 맡게 된 프로젝트는, 4년의 전통을 지닌 발달장애아들을 위한 경제교육 & 경제적 자립 프로젝트였다. (OTL, Over the limit 이란 뜻으로 반전으로 지은 이름인데. 나중에 알고보니까 음주운전 기준을 넘는... 뭐 그런 의미도 있다고)


오랜기간 봉사활동을 하며 아이들과, 관련단체와 친해졌고 가게를 만들고, 가끔 천재적으로 느낌있게 그리는 아이들의 그림을 재디자인해서 여러가지 상품을 만들어 판매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단체는 더 이상 뭔가를 키워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고, 우리로서는 좀 더 설득하고 제품이 잘 판매되지 않는 원인을 파고들어야 했지만 오랜기간 단순 봉사만을 하면서 우리가 정말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많은 팀원들이 지쳤다.


결국 선배들의 원망(?)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는 프로젝트의 리더로서 임기동안 해당 프로젝트를 종결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과연 잘 내린 결정인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찬반이 따른다. 이른 포기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는 1년 반의 활동 후 내린 결론이었고, 4개의 프로젝트로 정체되어 있던 학교 Enactus 팀에 필요할 수 밖에 없다고 믿었던 변화였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확신을 갖고 프로젝트를 종료했다.



그 후 2년간 여러가지를 경험하고, 졸업 직전 마지막으로 선택하게 된 것은 어학연수였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엄청난 진로고민에 빠져있던 나는 왠일인지 막연하게 외국계 회사에 들어가서 승승장구하는 직업여성(?)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쨌든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고 내 고향 부산(혹은 부모님 주변)에서는 아직 휴학이나 어학연수가 많이 일어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엄청난 조사와 설득 끝에 어학연수를 갈 수 있었다.


열심히 했다. 심지어 한국인들에게 영어를 쓰는 재수 없는 신공... 까지 가끔 써가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겪어본 결과 포틀랜드의 지루한 일상은 도무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결국 한 달이 채 안될 무렵부터 내 SNS 에는 맨날 재미없다는 글만 올라오게 되었고 급기야는 한국에 있던 한 언니의 소개로 스타트업 팀을 소개받아 원격으로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wegeneration 전신)


원격으로나마 일을 하다보니 어학연수가 지금 내가 진짜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것 같았다. 1년간 연수를 해봤자 영어 말하기가 좀 편해질 뿐인데, 영어야 내가 언제든 필요하면 하겠지.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다. 근데 일 하는 건 재미가 있었다. 더군다나 가치있는 일이었다 (자선 크라우드펀딩)


창업팀에서의 1년이 어학연수에서의 1년보다 배우는 게 훨씬 더 많을 거라는 내 개인적인 (스스로에게만 매우 합리적인) 논리로, 남은 어학연수 금액을 모두 환불받고 부모님께 알리지 않은 채로 한국으로 돌아와 해당 금액을 투자하며 창업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1년 다니고자 하던 어학연수를 3개월 내에 '중단한' 셈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 특히 아버지는 큰 실망을 보이셨다. '왜 진득하게 하는 게 없느냐'는 걱정이셨다.


나는 발칙하게도, '이번 건은 진득하게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언제 끝낼 것인가


그 약속 때문이었을까. 위제너레이션은 수익성이 좋지 않은 상태로 약 3년간 운영되어왔다. 정말 절실했다. 좋은 팀이라고 생각했고, 훌륭한 가치라고 생각했기에 꼭 이뤄내고 싶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하나 둘 걱정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할거야?" 라는 얘기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소개해 준 언니가 후회하기까지....)


그런데 주변 이야기와 관계 없이 스스로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처음 1년은 사업을 너무 몰라 배우는데 시간이 다 갔고, 그 이후 1년은 수익화를 할 방향을 찾긴 했지만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지가 않았다. 옳다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그 후에는 오드리C 라는 스타와 함께하는 자선 브랜드라는 다른 방향성을 찾아보면서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할 수 있는 선까지 최선을 다해보았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제는 끝낼 때가 되었다는 마음안의 울림이 왔다.


실패를 인정할 때였다. 최선을 다했고, 우리의 실패는 마케팅이 아니라 서비스 그 자체였음을 이해해야 했다. 다른 시도를 하기 위해서도 깨끗하게 넘어가야 했다.


그래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때에 서비스 종료를 결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세 번째 사업을 같은 팀과 함께하며, 아직 끝낼 때가 아니라고 믿는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언제 끝낼 것인가는 그 자신만이 안다.


할 수 있는데까지 해보았는지, 끝내서 더 나은 것들을 할 수 있는지.

두려워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확신을 갖고 자발적으로 끝내는 것인지.


아무리 남들이 보기에는 좋은 상황이어도, 내 영혼이 맞지 않다고 느낀다면 거기에서 끝내야 하고,

아무리 남들이 보기에는 진작 끝내야 할 상황이라도, 진짜 판단은 결국 본인이 내려야한다.


두려움이 아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바탕이 되는,

당신의 끝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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