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클레어 Oct 09. 2022

세상이, 우리에게 오다

임신 초기 - 너를 잃을까 두려웠어 


아빠가 된 걸 축하해


임신테스트기에 선명하게 나타난 두 줄을 확인하고, 전 날 술의 여파로 거실 쇼파에 쓰러져 있던(?) 오빠에게 처음 건넸던 말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하도 빨빨거리며 돌아다녀서 딩크족인 줄 알았다지만, 사실 가정을 갖는 건 우리가 연인으로 만나기 시작할 때부터 갖고 있던 꿈이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는 꼭 시도하자고 생각했고, 길게만 느껴졌던 몇 달 끝에 마침내 세상이가, 우리에게 왔다. 


태명에 있어 유난히 까다로웠던 남편은 하루에도 수없이 제시하는 모든 옵션을 거절하더니 

"세상을 다 가져라~ 세상이 어때?" 한 마디에,

"어? 세상이 좋은데? 홍세상!" 이러더니 드디어 세상이로 6주차쯤 태명이 낙찰되었다.

(그 전에 나 혼자 쓰던 태명은 "계절이"였다, 포시즌에서 생겨서.. ㅋㅋㅋ)


참 신기한게 계획했던 임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임신이 되니 우리가 부모가 될 거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런데 4-5개월이라는 시간을 거치며 배도 불러오고 주변 사람들과도 다가올 미래와 우리에게 찾아 올 아기에 대한 얘기들을 많이 나누다보니 이제야 슬슬 부모가 된다는 실감이 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몸이 변해오고 있는 지금의 임신 기간이 힘들기는 하지만, 그만큼 앞으로 부모가 될 마음의 준비를 시켜주는 기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결혼식도 꼭 필요한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지만, 개인적으로 결혼식을 준비하는 몇 달간의 과정에서 새로운 가족의 일원이 될 준비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래에는 임신을 처음 알게 된 4주차부터 (임테기에서 두 줄을 발견했을 때 이미 임신 4주라는 사실도 그 때 알았음 ㅋㅋ) 흔히 임신 초기라 부르는 12주까지의 증상과 이야기들을 남겨본다. 



임신 5주차 - 너를 잃을까봐 두려웠어


임신을 알게 된 게 기뻤지만 한 편으로는 당황스럽기도 했다. 당장 일주일 뒤에 가족들과의 하와이 여행이 잡혀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회사에도 얘기하고 호텔도 비행기도 모두 예약이 된 상황. 가까운 친구들에 임신 소식과 함께 여행 계획을 이야기하니 아무래도 다들 걱정이었다. 임신 초반에는 유산 가능성이 꽤 높은 시기라 굴러가는 낙엽도 조심하라는데... 10시간 비행을 동반한 해외 여행을 가도 될 지 나도 걱정이긴 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과학적인 리서치를 가장 신뢰하는 똑똑한 남편을 둔 덕에, 임신 중 어떤 시기에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오히려 운동하고 움직이는 게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선생님이 계시는데, 사람들은 이 영상을 "산모를 위한 따뜻한 말"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좀 안타까웠다. 그게 아니라 오히려 운동하고 돌아다니는 게 아닌 것 보다 더 좋은데... 처음에는 그런 눈치 때문에 한 시간 이상 걷는게 굉장히 신경쓰였더랬다.



여하간 주변의 걱정하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리서치를 믿고 예정대로 하와이행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첫 며칠은 우리끼리 마우이섬에서 보내고 오아후 섬으로 넘어와 하루 이따 가족과 만나 약 3박 4일 간을 함께 보내는 일정이었다. 


오아후가 아닌 다른 섬을 가 보는 것은 처음이라 역시나 또 한 번 꿈같은 며칠을 보냈다. (물론 개인적으로 우리는 호놀룰루가 더 좋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ㅎㅎ) 


그리고 오아후 섬으로 들어와 가족들을 만나기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신 테스트기를 해봤는데 이럴수가...


2주 전만 해도 양쪽 모두 선명했던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 중 한 줄이 눈에 띄게 연해진 것이었다.


한 줄이 정말 잘 봐야 보일 정도로 연해져서 갑자기 멘붕이 왔다. 

'이게 진짜 제대로 된 테스트 결과가 맞나?'


당황해서 인터넷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화학적 유산'의 증상 중 하나라는 수많은 글들...

그 중 단 하나의 희망은 혹시나 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하루 종일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여행은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다시 테스트 하기만을 기다렸다.


오빠는 내가 너무 걱정할까봐 그냥 임테기는 더 하지 말고 돌아가면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도저히 이 상황에서 정상적으로 여행을 즐기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저녁에 오빠 몰래 어느 호텔 화장실에서 다시 혼자 임신테스트기를 했다.


한쪽 줄이 더 연해졌다.


마치 엄청난 병을 선고 받은 것 처럼 마음 한 켠이 덜컹 내려앉았다.


사실 임신 사실을 안 지도 얼마 안되었고, 신체적인 증상도 별로 없었는데 그럼에도 너무나 소중한 걸 잃은 기분에 죄책감도 들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울며 불며 나오는 나에게 오빠는 당황하며 무슨 일인지 물었고, 내 얘기를 듣더니 우선은 숙소로 돌아가 저녁 동안은 쉬기로 했다. 


저녁 내내 울며 오빠에게 원망 아닌 원망도 쏟아내었다. '그러게 주변에 말하지 말자니까 왜 말했어.. 화학적 유산은 꼭 엄마 때문은 아니래' 등등. 그리고 아픈 마음을 뒤로 하고 울다 지쳐 잠들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의지의 한국인인 나는 또 한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약국으로 달려가 다른 종류의 임신테스트기를 함께 사왔다. 설명서를 꺼내어 정확하게 숙지했다. 혹시나 내가 했던 테스트 방식이 잘못되었던 건 아닐까, 내가 쓰는 브랜드가 잘못 된 건 아닐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른 브랜드 테스트기에서는 좀 더 확실히 임신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기쁘면서도 이상한 결과에 다시 이제까지 했던 테스트기들을 나란히 놓고 곰곰히 살펴보았다.


이 사진에서 답을 찾아보시오


와.. 알고보니 임신 여부를 결정하는 테스트 선이 아니라 테스트선과 비교해야 하는 Control 선이 연해지고 있는 거였다!!!! 사실을 다 알고 나서 어찌어찌 First response 고객 센터에 연락을 하니 오히려 임신 호르몬이 너무 강하면 이렇게 된다는거다. 앞으로는 임테기는 안 해도 된다고..


정말 말도 안되게 바보같았던 내 실수를 알아차리고 아침부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던 나를 발견한 오빠는 어안이 벙벙했다. 어제만 해도 울고 있던 내가 갑자기 춤을 추고 있으니... ㅋㅋㅋ 사실을 알게 되고 많이 놀리긴 했지만 그래도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우리에게 찾아온 생명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유산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에 대해 아주 조금이나마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세상아, 엄마가 너 잃어버릴까봐 진짜 걱정했어!



임신 초기 내가 겪은 증상


정말 감사하게도 입덧이 없는 산모라 입맛이 좀 바뀐 것 외에는 임신 초기에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렇게 얘기하면 복받은 소리같지만 사실 그래서 오히려 더 걱정이었다. 하와이에서의 에피소드를 겪고나니 아이가 건강한지가 늘 궁금했는데 입덧처럼 분명한 임신 증상도 없으니.. 미국은 아무때나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볼 수 있는 시스템도 아니고.


그래도 생각해보면 임신을 확인하기 직전이나 그 후에 크고 작은 증상들이 왔다갔다 했던 것 같다.


가슴 통증/예민함 (초기) - 뭔가 스치기만 해도 기분 나쁜.... 이상한 느낌의 예민함과 통증이 있었다.

배 쓰림 (초기) - 생리통과는 확실히 다른 뭔가 찌릿한 느낌의 배 통증이 있었다.

입맛 변화 & 입맛 없음 (초기) - 미국으로 온 3년간 한식 한 번 안 찾던 내가 갑자기 한식이 너무 땡겨서 힘들었다. 덕분에 임신 후 체중도 오히려 떨어졌다. 구역질을 하는 형태의 입덧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찾아온 것 같다. 세상아.. 너 정말 제대로 한국인인가봐 ㅎㅎ

피로 (초-중기) - 예전보다 훨씬 일찍, 자주 졸린다. 초기 때 더 심했는데 어떻게 돌아다녔는지 모르겠다.

잦은 소변 (초-중기) - 확실히 화장실을 더 자주 간다. 

피부 일어남 (초기) - 그러다 중기로 와서 다시 괜찮아졌다. 

수면 중 팔 저림 (초-중기) - 확실히 혈액순환이 더 안되는 모양이다. 자다가 깨면 왼쪽 팔이 엄~청 저려서 꼭 주물러서 풀어줘야 하는 경우가 있다. 가끔은 왼쪽 손가락에서 발가락까지 한쪽이 전부 저려서 이러다 마비 오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 중기인 지금도 빈도는 줄었지만 왼쪽 팔 저림은 여전하다. 

자면서 자주 깸 (초-중기) - 팔 저림과 잦은 화장실 때문에 통잠을 자는 날은 없어진지 오래다. (그래도 내가 원할 때 깨는 이 기간이 감사한거라고.. 애기 낳으면 내가 원하지 않을 때 깨야하니까 ㅎㅎㅎ)


여담으로 나는 배가 나오면 다들 예~쁘게 D자로 나오는 줄 알았는데 흔히 말하는 '아들배'라 그런지 아랫배 위주로 나와서 좀 아쉬웠다. (처음엔 살찐 줄 알았다 체중은 주는데.. ㅋㅋㅋㅋ) 좀 더 주차 수가 늘어나면 예쁜 D자가 될려나!!



임신 초기 초음파

임신 초기 이야기는 우리 세상이의 8주차, 12주차 초음파 사진과 영상으로 마무리 :)


8주차와 12주차 - 하리보 같이 꼬물거리던 세상이



8주차 - 세상이 심장소리를 처음 들은 날



12주차 - 세상이의 활동적인 꼬물거림을 본 날 (이전까진 계속 딸일거라 추측했는데 이 날 왠지 아들일 것 같았음!) 



세상아 우리 건강하게 곧 만나
엄마 아빠가 기다릴게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