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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영 Jan 24. 2019

권력은 강압적이지 않다

담론과 구조에 의한 권력

일 년이 조금 지난 일이다. 한 교사가 학생이 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걸레로 위협하고 체벌을 가했다. 이 사건을 다룬 기사의 댓글이 매우 흥미로웠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나름 이름 있는 특목고였는데, 그곳의 많은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이 댓글에서 가해 교사를 옹호하고 있었다. ‘도를 넘은 학생의 일탈과 비행을 막고 지도하는 목적의 체벌을 학생 인권이라는 미명으로 문제 삼을 수는 없다’며 어느새 피해 학생들은 ‘술, 담배나 하고 선생님한테 대드는 양아치들’이 되어 있었다. 왜 그 수많은 학생들은 자신들의 친구, 후배를 때린 선생님을 옹호한 것일까. 모교의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기 위해 사건을 은폐하기라도 하려 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정말로 그 체벌이 정당했기 때문에 신문에까지 보도되어 비난받을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며 선생님의 ‘진심’을 믿었다.


그렇다면 그 학생들은 왜 폭력까지 옹호하며 선생님의 진심을 믿게 된 것일까. 우리의 교육은 어려서부터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공부 열심히 하고 선생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선생님은 선생님답게 학생들을 ‘바른 길’로 잘 인도하고 학생은 학생답게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착실하게 공부를 열심히 하면 모두가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이야기를 진심으로 믿는 순간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학생들이 착한 모범생이 되기 위해 알아서 교사의 말에 복종하는 것이다. 이때 교사의 위압적 행동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가끔 있는 교사의 폭언과 폭력에도 학생들이 알아서 정당성을 부여한다. 무언가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는 것이다. 이 보이지 않는 힘이 권력이다.


진정한 권력의 작용은 강압적이지 않다. 권력이 작용한다는 것은 물리적인 실체가 있는 힘이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와 피 권력자가 맺고 있는 관계에서 저절로 발생하는 것이다. 학생을 선도되어야 할 수동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창의성을 발휘하기보다는 기성 사회의 시스템에 잘 녹아들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우리 사회의 교육 담론은 교사와 학생 간의 권력관계를 형성한다. 그 담론에서 교사와 학생은 각각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역할을 분담한다. 권력의 희생양은 체벌을 당한 소수의 학생들뿐만이 아니다. 알아서 교사의 체벌을 옹호한 다수의 학생들은 아무런 강압과 조종을 당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들은 어떠한 강압과 조종보다 더 막강한 권력에 체화되어 있는 것이다. 교실 안의 권력은 지극히 일상적으로 작용한다.


결국 권력의 핵심은 구조의 문제이다. 권력을 소유하여, 혹은 소유하지 못하여 권력자와  권력자가  것이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의해 권력관계의  항을 차지하게  것이다. 따라서 권력을 가진 개인에게   권력을 포기하지 않는지, 권력에 지배당하는 개인에게   권력에 저항하지 않는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불평등의 역사 속에서 권력을 가진 개인은 종종 자신이  권력을 가졌는지조차 모르며, 권력에 지배당하는 개인 역시  권력에 저항해야 한다는 것조차 모른다. 수십  동안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어머니들이 며느리에게 다시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듯, 가부장제라는 불평등한 사회제도가 지속되는  권력의 작용은 돌고 돈다. 권력관계에 의한 역할 분담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답습되며, 슬프게도  권력자 들은  제도의 희생자이자 부역자가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가.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안 혁명을 위해서는 착취의 근거가 되는 자본주의가 사실은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 다움’과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아름다운 ‘모성애’도 사실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담론임을 알아야 한다. 그 권력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자의적이라는 것을 인지할 때 비로소 그 권력에 저항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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