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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서영 Nov 11. 2016

여행 중 어느 날, 잔디

뉴욕 브라이언트 파크에는 초록의 설렘이 서려있다

빽빽한 고층빌딩과 차로 꽉 찬 도로, 수많은 사람들에 뒤섞여 뉴욕의 거리를 걸었다. 솔직히 예쁘고 좋은 도시의 모습만 기대했다면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에게..?'하며 실망할 수도 있다. 직접 살아보지 않은, 여행자의 시각으로만 보아도 '바쁘다'라는 형용사와 제일 잘 어울리는 도시였으니.


그래도 내가 뉴욕을 참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공원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당장 구글맵을 켜서 맨해튼을 살펴보아도, 이곳저곳에 위치한 초록색 공원들을 손쉽게 볼 수 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와서 꼭 가보고 싶었던 뉴욕의 랜드마크 센트럴 파크,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배터리 파크. NYU 학생들로 가득 찬 워싱턴 스퀘어 파크 등등. 언급한 공원 외에 크고 작은 공원들만 해도 족히 10곳은 넘는다.


'덥다'라는 표현이 모자랐던 8월의 뉴욕에서,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카페의 커피값이 아까웠던 나는 공원을 정말 많이 갔다. 더운 건 매한가지였으나 슬쩍 그늘에 앉아서 괜히 낭만적인 척 초록색인 것들을 바라보면 새삼 세계에서 가장 바쁘고 유명한 도시에서 이렇게 쉬고 있는 나의 지금이 참 좋고 감사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원은 브라이언트 파크이다.


중앙에 보이는 누워있는 남자 두 분은 윗통을 홀딱 벗고 썬텐하고 계셨다.


브라이언트 파크는 타임스퀘어 근처에 위치한 작은 공원이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와 영화 <인턴> 등 다양한 드라마 및 영화의 촬영 장소이기도 하다. 


사실 뉴욕에 오기 전에 한국에서 피크닉 매트를 샀었다. 


'잔디'에 앉아서 뉴요커처럼 하루 종일 놀아야지 하는 생각에 3만 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하고 예쁜 피크닉 매트를 주문했다. 일반 돗자리는 집에 많았지만 왠지 체크무늬의 스타일리시한 매트를 사고 싶었다. 결국 짐이 너무 많아서 들고 오지는 못했는데 억지로 들고 왔어도 사용하지 못했을 것 같다. 잔디에 앉기 전 꼭 돗자리나 신문지 등 깔 것을 깔고 앉는 한국 문화와 다르게 뉴욕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잔디에 앉았다. 



주말에는 요가나 댄스 강습도 열린다.


처음 브라이언트 파크에 갔을 때 찍은 사진들이다. 힘겹게 베이글과 커피로 아침을 먹고 기대하며 왔던 공원.


나보다 먼저 한 달간 미국을 여행했던 친구가 브라이언트 파크에 대한 칭찬을 하도 많이 해서 기대를 100이나 하고 갔다. 솔직히 처음 브라이언트 파크에 왔을 때는 실망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생각보다 너무 작고, 사람들도 없고 도시 중앙에 띡!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앉아서 있으면 좀 다르겠지 하고 의자에 앉았다. 햇볕에 달궈진 의자는 후끈후끈했다. 

뉴욕에 사는 사람들은 이 공원에 와서 뭘 할까? 가 궁금했다. 몇 분 정도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았다. 조용히 앉아서 신문을 읽는 할아버지, 간단한 점심을 사 와서 빨리 먹고 자리를 뜨는 (뉴요커로 추정되는) 여성분, 커다란 카메라로 아내와 딸과 아들을 찍어주는 남편분, 그리고 가족들 등등.

브라이언트 파크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눈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보였을까.


날씨 좋을 때 꼭 다시 와야지 하고 일어섰다.

이때까지만 해도 브라이언트 파크를 그렇게 좋아하게 될지 몰랐다.



여행 중 어느 날 오후, 브라이언트 파크에 다시 왔다. 내가 사랑하는 블루보틀 아이스 라떼와 함께!

적당히 해가 진 오후에 고소운 라떼를 들고 공원에 앉으니 기분이 정-말 좋았다.

아직도 이 사진을 보면 내가 이때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가 생각이 난다. 정말 신기하다.

브라이언트 파크가 숙소 주변이고 아침마다 근처 블루보틀 커피를 사러 갔기 때문에 꽤 익숙한 장소였다.

하루 종일 바쁘게 돌아다니고 익숙한 장소에 오니 기분이 좋았다.



낯선 공간을 보기 위해 쉴 새 없이 돌아다닌 하루였다.

하나라도 더 보고, 조금이라도 더 걸으려고 애를 썼다. 눈에 많이 담을수록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날 기분이 제일 좋았던 순간은 이 공원에 있을 때였다.

여행도 이런 게 아닐까,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설렘을 향해 가지만 결국 다시 돌아온 나의 공간에서 편안한 감정을 느낀다.



8월의 일정 기간에는 영화를 상영한다.


그렇게 앉아서 1시간을 넘게 있었다.


사진도 찍고, 사람들은 뭘 하나 천천히 보기도 하고, Begin Again의 OST 인 Tell me if you wanna go home을 적어도 10번을 들었다. 평소에 걸을 때 늘 이어폰을 끼고 다니는데 미국에 와서는 한 번도 그러지 못했다. 뭔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내재되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이날 이후로 그런 게 없어져서 내내 이어폰을 끼고 살았지만...


아직도 Tell me if you wanna go home을 들으면 뉴욕이 생각난다.

설레고 행복했던 나의 감정과, 적당히 해 질 무렵의 바쁜 뉴욕이 생각난다.

각자 여행을 기억하기 위해 누군가는 여행지마다 다른 향수를, 누군가는 여행지마다 특정한 노래를 듣는다든데 정말 신기하리만치 아직도 노래를 들으면 그때 내가 봤던 장면들이 스치듯이 생각난다. 



여행 중 어느 날 밤, 브라이언트 파크에 다시 갔다.

보자마자 카메라를 안들 수 없던 순간.

어두운 밤이 브라이언트 파크를 더 낭만적이게 만들었다.



꽤 늦은 저녁이었는데도 사람들로 가득 찼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잔디에 앉아서 얘기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처음으로 여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뉴욕이 정말 좋았지만 '살고 싶다.'는 마음은 절대 안 드는 도시였는데.




뮤지컬이 끝나고 배가 고파서 사온 치킨랩을 먹으며 브라이언트 파크의 밤을 누렸다.

저녁 10시가 되면 잔디를 닫아서 (사람들이 잔디에 못 들어가게 한다.) 10시 이후에는 사람들이 꽤 없어졌다.

이때도 Tell me if you wanna go home을 들었다.



이날을 이후로 브라이언트 파크는 나의 최애 공원이 되었다.

10월에 뉴욕에 한 번 갔을 때도 브라이언트 파크에 갔는데 공사를 하고 있어서 잔디를 아예 볼 수도 없었다.

아쉬운 마음 한 가득 안고 블루보틀 라떼만 사서 주변 의자에 앉아서 마셨다.

처음 뉴욕을 여행할 때는 당연히 아이스 라떼를 시켰는데 이번엔 따뜻한 라떼를 시켰다.

주문하는 커피로도 느껴지는 계절의 변화가 새삼스럽다.

조금 추워진 날씨에 뉴욕에 한 번 더 오게 된 것을 감사하며, 좋아하는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또 한참을 있었다.



인스타그램 @seoyoungparkk

블로그

http://blog.naver.com/cheese_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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