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를 담는 오늘
이슬비가 옅게 흩날리는 아침 출근길, 죽은 채 하수구 근처에 누워있는 새끼 새 한 마리를 발견했다. 비바람에 나무에서 떨어졌나 하고 주변 나무들을 올려다보았지만 안식처였을 둥지는 찾을 수 없었다. 검고 탁한 눈동자는 작디작은 얼굴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고, 아직 뻗지 못한 날개는 털 몇 가닥만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발은 실오라기처럼 가늘었다.
새끼 새를 뒤로하고 출근해 이것저것 준비하는데, 그 커다란 눈이 머릿속 이곳저곳에서 자꾸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따뜻한 두유 라테를 마시자. 스테인리스 피처 안에서 두유가 빙빙 돌며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죽은 새가 소용돌이에 힘없이 몸을 맡기고 있었다. 두꺼운 종이와 티슈 두어 장을 들고 다시 새끼 새가 있던 골목으로 가야만 했다.
대학생 때, 소설 창작 수업에 제출할 단편 소설에 죽은 새에 관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비 내리던 늦은 밤 아파트 단지 안 좁은 도로에서 죽은 새를 만났었는데, 그때의 경험을 소설에 넣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아무 기척 없는 새를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고 어떤 종류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두꺼운 엽서 한 장이 손에 잡혔다. 그 엽서를 단단하지만 축축한 아스팔트 바닥과 가냘프게 가라앉은 죽은 새 사이로 슬며시 넣었다. 아스팔트의 뒤틀린 표면을 따라 엽서가 조금씩 흔들렸는데, 그 위에 놓인 새도 따라 움직였다. 마치 새가 다시 심장을 움직이기 시작하고, 곧 머리를 두어 번 젓다가, 정신을 차리고 훌훌 날아가 버릴 것처럼. 혹은 마지막 몸부림을 치는 것처럼. 마르고 앙상한 날개뼈가 곧 펄럭일 듯 움직이는데 아스팔트의 단단함에도 밀리지 않을 응축된 힘이 엽서를 쥔 내 손에 진동으로 전달됐다. 죽은 새의 얇디얇은 뼈에서 그토록 큰 파동을 느끼다니, 그렇지만 죽은 새는 이미 죽었고 나는 땅속 깊은 곳, 어떠한 소리도 진동도 없는 암흑에 어쩌면 기운차게 날아올랐을 그를 묻어주는 것밖에는 달리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보다 훨씬 작은 새끼 새였다, 오늘 발견한 새는. 굽혀진 다리를 펴도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었을까, 티슈를 덮은 종이 위의 새는 아무런 무게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마당으로 가 작은 호미를 들고 포도나무 아래에 섰다. 아직 땅에 뿌리를 뻗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무는 연두색 잎사귀 몇몇을 달고는 여름의 강렬한 햇빛을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색 돌들을 옆으로 치우고 10cm 정도로 흙을 파내어 새끼 새를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티슈로 새를 들어 흙 안에 넣었다. 고작 한 뼘도 안 되는 무덤이 너무 깊게만 보였다. 흙에 있던 작은 식물들의 잔뿌리와 새끼 새의 다리가 섞여 무엇이 잔꽃의 잔뿌리인지 무엇이 새의 발가락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흙을 덮고 그 위에 돌을 쌓았다. 옆에 있던 보라색 꽃을 꺾어 돌 위에 올리고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 모르겠기에 그저 한참을 쳐다보기만 했다. 새끼 새가 푸르른 포도알이 되어 뜨거운 여름을 맞이하다가 짙은 보라색의 포도로 익어 나의 입안에서 톡 하고 터지는 상상을 했다. 나는 새끼 새를 위해 어떤 기도를 해야 했을까. (2025. 0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