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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월 Apr 25. 2020

이 껍질을 평생 안고 가느냐 깨고 나가느냐의 문제야

『희망 대신 욕망』 같이 읽기 2




108.

“형, 저 아무래도 그냥 재활학교 고등부에 진학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괜히 시설 불편한 곳에 가서 고생하고 공부도 제대로 못 하느니. 여기서 선생님들 도움 받고, 열심히 하면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래?”

“네…….”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언제나처럼 그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럼, 이건 어때? 만약 네가 여기서 열심히 공부해서 네가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합격했다고 치자. 근데 거기도 장애인 편의시설 같은 건 없어. 그럼 그 다음에는 또 포기하고 장애인을 위한 특수 대학에 가야 하나? 하지만 그런 데는 세상에 없지. 아니, 만약 있다고 치자. 그럼 그 다음엔? 장애인을 위한 특수 회사, 특수 마을, 특수 국가 뭐 그런 곳으로 가는 건가?

“물론…… 그러고 싶진 않지요.”

나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이건 고등학교를 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이건 네가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야. 이 껍질을 평생 안고 가느냐 깨고 나가느냐.”

찬오 형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바로 지금이야.”

그랬다. 나는 재활원에 처음 입학했던 순간을 기억했다. 만약 아버지가 나에게 “다음 주에 데리러 갈 테니, 일단 일주일만 있어 봐”라고 말하지 않고, 약한 마음에 나를 데리러 왔다면 어땠을까. 우리 인생에 다가오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 중에서 아주 강력한 운명의 순간은 스스로 지금이 운명적인 순간이라고 말하는 법이다.      






김원영 작가는 자신의 에피소드를 통해 장애를 개인적 차원에만 한정짓지 않고, 사회적인 문제로 확장시켜 다양한 담론을 이끌어낸다. 더불어 어떤 '운명적' 순간에 대해서 말한 위 에피소드는 이 책을 소개할 때 많이 인용되기도 한다. 작은 세계 속 안온함, 익숙한 사람들과 안정된 커뮤니케이션 대신 낯설고 불편하고 어디까지 확장되어있을 지 모를 거대한 세계로 나아가길 선택하는 것, 장애인의 수가 매우 적고 나의 장애가 생활 곳곳에서 문제가 되는 곳으로 발 뻗어 나갈 것이라 선택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선택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장애인이면서 서울대에 다니는 대학생임을 자각했고, 매순간 두 세계에 살고 있는 자신의 장애인 친구들과 서울대 친구들을 떠올렸다. 더불어 그들의 개인적 문제를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장애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학교, 공공기관, 정부 등)에 요청, 요구해서 문제 있는 시스템을 개선하고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143.

그렇다. 나는 장애인이 맞다. 그러나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과 “나는 장애인이다”라고 외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나는 장애인 중 50퍼센트가 초등학교만 졸업하는 대한민국에서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이었다. 나의 자부심과 나의 꿈 앞에서 또다시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우고 싶지는 않았다. 추락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장애와 아무런 관련 없이 살 수 없을까. 그냥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는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내가 장애인이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의 능력, 직업, 학식, 유머, 경쾌함 같은 것을 갖출 수는 없을까.    


 

157-158

개인이 생물학적인 ‘손상impairment’을 입엇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사회로부터 배제되는 ‘장애disability’를 갖게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장애는 사회가 특정한 신체적, 정신적 특징을 수용할 수 있는 문화적, 물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규정된다. 이런 연구들은 ‘장애의 사회적 모델’의 강력한 근거다.

위와 같은 근거를 바탕으로 장애의 사회적 모델에 우리의 관점을 고정시켜보면, 이제 더 이상 장애는 누군가의 배려로 간신히 극복할 수 있는 개인의 슬픈 비극이 아니다. 장애인은 병원이나 수용시설에서 살아가야 할 ‘환자’가 아니라, 그 상태 자체가 하나의 존재를 구성하는 정체성이 된다. 그러므로 장애인도 세계 속에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살아갈 주체적인 권리를 갖는다. 


    

171.

우리는 장애와 질병으로부터 건강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와 질병의 경험을 건강의 담론으로부터 지켜야 한다. 모든 인류는 질병에 상시적으로 노출되며, 노인이 되면 결국 ‘장애’라고 공인될 정도의 몸상태로 변화한다. 이 모든 것이 ‘비정상적인 일탈’이라고 규정되고, 제거되어야 할 상태가 된다면 인간은 자기 몸을 긍정할 순간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모두 예비 장애인입니다”라는 표어를 통해 장애 문제를 보편화하려는 접근은 개인적으로 세련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우리가 장애인이 될 ‘가능성’ 때문에 장애인의 권리를 생각해야 한다는, 다소 비굴한 접근법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분명히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장애와 질병을 소거하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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