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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월 May 21. 2020

성능요? 그건 모르겠고 … 기분이 너무 좋아요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신예희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신예희, 드렁큰에디터, 2020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이 책을 sns에서 우연히 알게 되어 제목만 보고 당장에 데려와 읽었다. '돈지랄'을 소재로 한 너무도 유쾌한 에피소드는 마치 저자의 표정과 목소리를 옆에서 보고 듣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만큼 이 책에 수록된 글 한편 한편에 저자의 고유한 목소리와 개성있는 (말투같기도한) 문체가 담겨있다. 그는 시종일관 효율과 합리를 최적의 소비패턴으로 보는 일각의 시선에 다른 경로로 이탈해도 좋다며, 혹은 애초에 그것은 이탈이 아닌 다른 방향의 길일 뿐이라며 돈지랄이라는 굳은 소비언어에 균열을 낸다. 직접 써본 좋은 물건들을 소개하며 물건과 얽힌 에피소드를 가볍게 들려준다. 그중 하나를 발췌해본다.     



p.72-75     

친구: 예희 씨, 그거 어때요? 괜찮아요?

나: 너무 좋아요.

친구: 오, 그래요? 성능이 많이 달라요?

나: 그건 모르겠고 … 기분이 너무 좋아요.     



예쁘다는 이유로 사고 싶은 물건들, 누군가는 이런 것을 두고 ‘예쁜 쓰레기’라는 표현을 쓰던데, 그보다는 더 좋은 대우를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내 기분을 좋게 해주는 고마운 물건인데요.

평소엔 우선순위를 잘 따져가며 최대한 합리적인 소비를 하기 위해 무척 애쓴다. 그런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훨씬 훨씬 더 많다. 갖고 싶은 물건이 생겨도 내가 나를 말린다. 에이, 저게 정말 필요해? 사서 뽕 뽑을 자신이 있어? 저기 말고도 돈 들어갈 데 많은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김이 팍 샌다. (...) 가끔은 필요와 쓸모 따위는 제쳐두고, 그저 내 눈에 아름답고 흐뭇하다는 이유만으로 쇼핑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물건을 남에게도 선물하고 싶은 거고요.          


  굳이 약간의 단점을 곱자면 '~하지 않을까요, ~인데요'라는 어투를 썼다가 '~한다, 이다.'라고 바뀌기도 한다. 그 점이 읽으면서 살짝씩 눈에 띄긴 하지만 크게 거슬리는 점은 아니다. 먼저 살펴보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맞다. 돈지랄. 나도 종종 쓰는 말이다. '야 그거 너무 돈지랄 하는 거 아니냐.' 

돈지랄, 예쁜 쓰레기 모두 한쪽으로 굳어진 소비관에서 비롯된 언어다. 마치 소중하게 번 돈으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지랄을 한다고 보는 시선, 예쁘기만할 뿐 쓸모는 없으니 쓰레기라고 퉁치고 자조섞인 비난의 말. 게다가 그 말에는 힘이 있어서 소비 주체가 발화할 때와 제 3자가 발화할 때는 다르게 들리기 마련이다. 이를 간파한 저자 신예희는 단지 자신이 써봐서 좋았던 물건들을 재밌는 에피소드에 담아 내놓은 것뿐 아니라, 물욕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고 다스릴 무엇으로만 생각하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글을 통해 외친다.  

 

p.12

‘온 세상이 내가 내 돈 쓰는 것에 죄책감을 심어주려고 무지하게 애쓴다. 헛돈 쓰지마라, 낭비하지 마라, 니 한 몸 편하자고 쓸데없는 거 사지마라. 그거 다 돈지랄이다. (...) 그렇다면 내 쪽에서도 굳이 입을 열고 소리 내어 더 크게 말해야겠다. 돈지랄이 얼마나 재밌는데요, 얼마나 달콤한데요, 얼마나 신나는데요. 나는 그렇게, 돈지랄이란 단어의 누명을 벗겨주고 싶었다.' 



'돈을 쓴다는 건 마음을 쓴다는 거다. 돈지랄은 가난한 내 기분을 돌보는 일이 될 때가 있다.'



백 명의 사람이 있으면 백 가지의 소비관이 있다. 그만큼 자신이 번 돈을 어떻게 쓸지, 무엇을 우선순위에 둘 지에 대한 최종결정권자는 바로 자신이다. 신예희 작가는 인간의 물욕, 외면하고 싶은 욕망의 진실, 소비언어에 대한 통찰을 작고 얇은 에세이 한 권에 담았다. '이러한 소비관을 가진 사람도 있다' 정도로 찬찬히 읽어보면 좋겠다. 몇 번을 웃다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마침내 책을 다 읽고 나니, 돈지랄의 역사를 계속 쓰고 싶다는 저자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쌓아나갈, 변화해갈 돈지랄의 역사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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