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에는 영화 <뺑반>에 대한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 어디까지나 영화의 만듦새에 대한 평론이 아닌, 영화에서 다루는 ‘경찰’의 모습에 대해 해학적 시각으로 써 내려간 글이니 가볍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보이는 게 전부고 진실이죠
영화를 보는 내내 입을 다물 수 없었다.
ㅡ 잠깐만. 경찰청장이 콧수염을 기르고 있잖아? 품위유지의무(국가공무원법 제63조, 지방공무원법 제55조) 위반 아니야? 청문회는 어떻게 통과한 거지? 통과하고 기른 건가? 제법 얍삽한데?
ㅡ 왜 다들 경례하라고 하는 거지? 여긴 군대도 아닌데?
ㅡ 교통조사계 소속 경찰관이 개인 차량(그것도 외제차인 디스커버리)을 몰고 현장에 간다고?
ㅡ 뭐? 순경이 조거팬츠를 입고 현장을 누벼?
ㅡ 순경이 경위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잖아?(이게 얼마나 당황스러운 사실인지는, 아래의 계급도를 참고해 보자)
영화가 후반부로 향하면서 주인공인 순경 서민재(류준열 배우)의 과거가 밝혀지는데, 현실과 너무도 거리가 먼 <뺑반> 속 경찰관의 모습에 웃으면 안 되는 장면이 분명함에도 실소가 흘러나왔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나의 직업이 경찰관인 탓이다. 영화는 영화로만 감상해야 하는데 현실을 알고 있으니 도무지 집중할 수 없는 상태랄까.
가령, 이런 부분이다.
알고 보니 서민재는 과거 마약 배달, 폭주족과 같은 불법적인 세계에 몸을 담았고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양팔엔 긴팔이레즈미 문신이 가득한 모습. 영화 초반에 얼핏 서민재의 팔에 완벽히 지워지지 않은 문신의 흔적이 비치는데, 설마설마했다. 설마, 문신은 아니겠지. 화상 자국이겠지. 하지만 문신이 맞았다.
우선 경찰채용시험은 필기시험 이후 체력 시험, 인·적성 시험과 신체검사, 최종 면접 순으로 이어진다. 요즘에는 순서가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신체검사는 반드시 진행하는 절차다. 경찰채용기준에도 ‘시술동기, 의미 및 크기가 경찰공무원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문신이 없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문신이 비교적 자유로운 소방과는 제법 다른 분위기다.
나도 어느덧 옛날 사람인지라 현재 신체검사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내가 응시할 당시에는 필기시험에 합격한 응시생 20명 가량이 짧은 옷만 입고 선 상태로 감독관의 지시에 따라 다양한 자세(팔 벌려 서기, 기마 자세 등)를 취하며 몸에 별다른 문신이나 상처가 없는지를 확인받았다.
체력 시험을 마친 직후여서 근육통에 시달린 몇몇이 파스를 붙이고 있는 경우가 있었는데, 감독관이 파스도 다 벗겨보며 내부를 확인했었다. 큰 상처가 있는 사람에겐 어떤 이유로 생긴 상처인지 파악하는 절차도 있었고.
이렇게 엄격한 기준 때문에 문신을 했다가 지운 흔적만 있어도 신체검사에서 탈락할 수 있으니, 애초에 문신을 시작한 사람은 경찰공무원엔 도전하지 않는 게 좋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했는데.
긴팔이레즈미라니.
심지어 마약 배달 혐의로 징역을 살았고, 도주 과정에서 담당 형사의 다리에 영구적인 장애까지 남긴 남자가 경찰관이 되었다는 건… 영화는 영화일 뿐, 너무 현실에 비춰보지 말자고 생각해도… 보이는 게 진실… 맞나요?
영화가 ‘카레이싱’을 표방한 만큼, 뺑소니로 사람을 죽인 혐의를 받는 정재철(조정석 배우)을 서민재가 레이싱카로 추격하는 장면이 상당히 길게 나온다. 트랙이 아닌 공도에서 행해지는 무차별 추격에 파손되는 차량과 다치는 시민도 다수.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생각해 보자. 다음날 언론엔 이와 같은 헤드라인으로 도배가 될 것이다.
[경찰인지 폭주자인지]
[사람 하나 잡다가 ‘진짜’ 사람 여럿 잡네]
[피해 차량 n대에 부상자만 nn명… 경찰청은 “적법한 추격이었다”]
[시내에서 무차별 추격으로 난동 부린 경찰관, 알고 보니 전과자 출신… 경찰 채용 거름망에 구멍 뚫렸나]
[인천 시내 한복판 추격전 피해자들, 경찰청 상대 집단 소송 예고]
[범인만 잡으면 된다? 피해 본 죄 없는 시민들은 어쩌나]
이후에도 황당한 장면은 이어졌다.
경정은 총경 계급으로 승진하는 길이 심사 승진뿐인데 정재철을 잡은 공로로 특진했다거나. 경정에서 총경으로 특진이라… 갑자기 이 제도가 생겨서 특진을 했다 해도, 국민적 비난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추격전 벌여 놓고 공적 나누기… 담당자 총경으로 특진한 사실 알려져 뭇매]와 같은 기사가 또다시 도배될 테니까.
ㅡ 일개 경찰서 교통조사계장이 상황실을 쥐락펴락한다고?
ㅡ 상황실 직원들 옷이 왜 제각각이지? 누구는 제복, 누구는 사복… 뭐야?
ㅡ 교통조사계 소속 직원이 권총은 왜 갖고 다니는 거야? 심지어 거침없이 실탄 발포?(경찰 과잉 진압에 대한 수많은 헤드라인이 떠오르는 중)
이렇게 물음표만 잔뜩 띄우다 영화는 끝났다.
후배를 위해서라면 총알도 대신 맞아줄 수 있는 선배라니. 실탄을 발포해도 민원인에게 고소당하지 않다니.
어쩌면 가장 영화 같았던 부분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