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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람 Feb 29. 2024

그냥 나가지 말자

바위섬은 더 이상 슬프지 않다

주말 아침, 역시나 둘째 아이의 울음소리로 지친 몸을 일으켜본다. 나를 보자마자 방긋 웃어주는 모습에 잠시 피곤함을 잊어본다. 아이의 첫 수유로 하루를 시작한다.

밤사이 배고팠던 아이는 젖병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면서 열심히도 먹는다. 그 모습에 웃음이 피식. 배부르게 먹은 아이를 안고 등을 토닥토닥. 토닥토닥. 갑자기 마음에 쓰나미 같은 것이 울렁거린다. 울컥.


아이를 안은 채로 남편에게 향했다.      

“오늘은 잠깐이라도 나가야겠어. 근처에 사람 없는 조용한 카페라도 가면 어때요?”     

아이들을 데리고 바람 쐬러 나간 지가 한참이었다. 둘째가 아직 어리기도 하고, 한번 나갔다 오거나 고된 일정 후에는 유독 게우거나 힘들어했던 탓에 나 하나 시원하자고 나가기가 저어했다. 하지만 엄마도 사람이었다. 애 둘을 거의 혼자 가정 보육하고 있자니,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한 번씩 외출하자던 남편은 나가자는 나의 말에 흔쾌히 수락했다.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한 번씩 나가고는 싶지만, 어디 한번 가려고 마음먹으면 더 바빠지는 것이 엄마이지 않은가. 전날의 고단함으로 쌓아두었던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점심은 간단히 배달시켜 먹기로 했다. 점심식사까지 준비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편은 첫째 아이와 방에 들어가더니 이윽고 잠에 빠져들었다. 첫째 아이는 “아빠요~”하면서 아빠를 깨우기도 하고, 혼자 뽀작뽀작 놀기도 했다.


한창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둘째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방에 있는 남편에게 점심 좀 주문해 달라고 한 뒤, 바운서를 주방에 두고 엄마가 옆에 있다며 안심시켰다. 가스레인지를 쓰면서 다시 아이를 거실로 옮겼다.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 아이는 결국 멈추지 않는 울음을 터뜨려댔다. 잠에 빠져든 남편은 아이의 울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점심을 주문했냐는 물음에 “아니, 해야지.”라고 했다. 얼른 하라고 말한 뒤, 서럽게 우는 둘째를 살펴보니 응가를 한 상태였다. 찝찝함에 울고 있었구나.     


건티슈에 물을 적시러 가면서 다시 한번 방으로 가서 주문 좀 하라고 했다.

하… 폰을 좀 달라는 말에 살펴봐도 없어서 어디 있냐고 했더니 소파 위에 없냐고 묻는다. 자다 깨서 첫째랑 웃고 떠들고 난리가 났다. 없다고 어디 있냐고 말하는 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챘다. 직접 찾아볼 테니 둘째를 돌보란다.      


아이의 기저귀를 풀고 닦이면서 속이 답답하고 울컥했다. 바람 좀 쐬러 가보겠다고 겨우 마음을 내었다.  아이들의 취침시간 때문에 일어나자마자부터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던 터였다. 둘째를 잠깐도 봐주지 않고, 점심을 주문해 달라는 것도 안 하다가, 몇 번이나 뭐라고 하니까 그제야 폰 갖다 달라는 소리를 한다. 음… 나는 이러나저러나 힘든데, 왜 나가려는 거지? 차라리 남자들 둘만 내보내고 둘째 아이와 집에 있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눈치를 살피며, 첫째를 안고 나오는 남편에게 말했다.      

“그냥 나가지 말자.”      

남편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처럼 허둥대기 시작했다.      

“왜~ 나가자~ 나갈 거다.”

“내가 왜 나가자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둘이서 나갔다 오세요.”     


말을 던지고 둘째 수유를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를 안고 수유를 하는데, 왜 그렇게도 서러웠는지 모르겠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일어나자마자 쉴 새 없이 휘몰아친 육아와 집안일. 시월드에서 벌어진 억울했던 일. 친정엄마에게 편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 누구보다 나의 편이고, 무엇이든 말할 수 있어야 할 친정엄마이지만, 나를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조차 포기하는 과정에서 받은 상처. 그렇게 결국 나의 입을 닫아버려야 했던 일. 자꾸만 수렁으로 빠지는 느낌이었다.


아이를 웃는 얼굴로 바라보고 싶은데, 자꾸만 눈물이 새 나왔다. 한 팔은 아이를 안고, 한 손은 젖병을 든 채로 눈물을 닦을 재간이 없었다. 젖병을 들고 있는 팔을 살짝 들어 눈물을 닦아내 봤지만, 소용없었다. 응가도 하고, 배부르게 먹은 아이는 쌔근쌔근 잠에 빠져 들었다. 아이를 눕히고 또다시 집안일을 하러 방을 나섰다.      


그때 남편이 사과의 손길을 내밀었다. 자신이 정신이 나갔던 것인지 어쩌다 보니 계속 누워서 잠만 잤다며, 나가기 위한 체력보충을 한 것이라는 나름의 자기변호를 했다. 안절부절못하며 안아주는 남편에게 못 이기는 척 넘어가 주기로 했다. 내 속을 말하는 법을 잘 모르는 나의 맞춤형 남편. 말하지 않아도 나의 마음을 알아차리려 노력하는 고마운 남편 덕분에 마음속에 샘솟던 울음은 안정을 찾았다.      


여러 우여곡절을 지나 결국 집을 나섰다. 근처 조용한 카페를 가려고 했지만, 둘째의 갑작스러운 수면과 남편의 ‘오직 와이프를 위한 시간 만들기’로 인해 해안도로 드라이브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다 ‘다무포 고래마을’이라는 곳에 다다랐다.  

그곳은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촬영지였다.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벤치도 있었다. 각자 아이들을 한 명씩 안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세찬 바람은 아이들을 더욱 세게 안도록 만들었다.     

방파제 쪽으로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32개월 첫째와 배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장난감으로 뱃고동 소리를 기억하던 아이는 배를 보며 반가워했다. 하늘의 구름은 솜사탕을 펼쳐놓은 것만 같았다. 따뜻한 솜이불 같기도 해서 자꾸만 하늘을 바라보게 했다.  

멀리 등대가 보였다. 뱃길을 비춰주고, 위험한 곳 등을 알리며, 나아가야 할 길을 밝혀주는 등대의 존재가 우리 가족이 지향할 모습 같아서 손을 내밀면 닿을 듯 느껴졌다. 투명하고 영롱한 바닷물이 이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아이들처럼 보여서 괜스레 뭉클해졌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계속 머물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펼쳐진 도로와 그림 같은 하늘이 우리의 걸음을 응원하는 것만 같았다.

둘째의 거센 울음소리에 다시금 길을 멈췄다. 뒷자리 좁은 카시트 틈에 몸을 구기고 앉아 둘째 아이를 안아 들고 수유를 시작했다. 엄마의 팔을 감으며 얼굴을 쳐다보는 첫째를 바라보다 바위에 앉은 비둘기 떼를 발견했다. 간혹 가다 청둥오리도 보였다. 아이는 무섭다며 연신 외쳐댔다. 둘째를 계속 안고 있는 엄마의 관심을 구하기 위해 더욱 크게 외쳐대는 아이가 귀여우면서도 짠했다.

다시 앞자리로 돌아왔다. 숨을 한번 크게 쉬고 창문을 내려 사진을 찍었다. 나의 예술혼이 이 사진 한 장에 담겼나 보다. 좀. 잘 찍은 것 같다. 이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바위섬’이 생각났다. 어릴 때부터 그 노래를 들으면 항상 눈물이 났다. 왜일까. ‘아무도 없는 바위섬’에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웬걸. 이 사진을 보면서 ‘바위섬’ 노래가 떠올랐지만 그다지 슬프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바위와 파도, 하늘, 구름 등이 따로가 아니라 하나같았다. 서로를 따뜻하고 포근하게 안아주는 듯했다. 그래서 자꾸만 이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안정적인 가정을 꿈꿨다. 오래도록 기다려왔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지금의 가정을 이루었다. ‘바위섬’이 더 이상 슬프지 않은 이유는 이것이었다. 나에게는 편안하고 아늑한 우리 집, 우리 가족이 생겼다. 나의 바위섬은 더 이상 슬프지 않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역시 쉽지 않았다. 연신 울어대는 둘째를 계속해서 안아야 했다. 아이를 안고 있노라니 현타가 휘몰아쳤다. 남편은 좋아하는 뉴스를 보며, ‘바람 쐬러 나와도 엄마가 제일 힘들다.’라면서 나를 위로했다. 미안하게도 완전한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바람 쐬고자 했던 나의 욕심 때문에 아이들이 힘들어졌다는 생각에 시무룩해졌다. 그런 나를 알아차린 남편은 연거푸 ‘아니다, 그런 거 아니니까 빠져들면 안 된다.’고 나를 붙잡아 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해맑고, 발랄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풀렸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냥 나가지 말자.’라고 해서 진짜 나가지 않았다면, 시간이 흘러 웃으며 떠올릴 추억하나를 놓쳤을 것이다. 아마도 바위섬이 더 이상 슬프지 않은 것도 알 수 없었을 테다. 그 이유가 ‘우리’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맞아. 그랬지.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다. 하루 중 눈물, 힘듦이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이날의 감정은 감사와 행복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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