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미 글쓰기 리추얼을 시작한 리추얼 메이커의 감동 경험기
"밑미에서 일하고 계신데 보리님의 리추얼은 무엇인가요?"
"전 주말에 에세이 쓰는 거요!"
"매일 하는 리추얼은 없으신가요?"
"감정일기, 일회고, 문장일기, 감사일기… 다양한 리추얼을 하는 게 저의 리추얼이에요!
공통점이 있다면 글로 정리한다는 거고 주제는 모두 나의 이야기라는 거예요!"
밑미에 함께 하게 된 것도, 나만의 창작물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을 이루게 해 준 것도 모두 글쓰기였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사적인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공적인 글쓰기까지 함께 해보고 싶었다. 비밀스러운 글을 공공장소로 꺼내기 위한 고민의 시간은 나에게 중요한 터닝포인트였으니까
언젠가 나도 리추얼 메이커로 함께 해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갑작스럽게 기회가 찾아왔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싶은데 용기가 필요한 분들! 저와 함께 <내 이야기로 시작하는 글쓰기> 해보아요. 주중에는 일기를 쓰고 거기서 글감을 찾아 주말에는 에세이 초안을 쓸 수 있답니다!"
혼자 하던 리추얼을 12명의 메이트와 함께 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시작이었다.
첫 온라인 미팅에서 나눈 자기소개 시간. 역시나 직장인이 가장 많았고 퇴사 후 자유의 몸이 된 도비들도, 그리고 프리 워커도 있었다. 요즘의 내 인간관계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분들도 계셨다. 에디터로 취업을 준비 중인 분, 캐나다에서 개발자로 일하시는 분, 3년간 준비한 어려운 시험을 마시고 휴식 중인 분까지 여러 일상이 모였다.
다채로움 속에서도 두 가지 큰 공통점이 보였는데,
하나는 (당연하게도) 글쓰기 시작을 하고 싶다는 것
첫 글을 시작하기가 어려워요
긴 글을 잘 못쓰겠어요
글쓰기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싶어요
함께 쓰면 꾸준히 쓸 수 있겠죠?
매일 쓰는 일기로 에세이를 쓸 수 있다니?! 궁금해요.
내 이야기로 내 창작물을 써보고 싶어요
독립출판까지도 하게 된다면 좋겠어요.
또 다른 하나는 (희한하게도) 완벽주의자들이 많았다는 것
리추얼 담당자로 여러 리추얼을 보면서 커뮤니티마다 리추얼 메이커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이는 게 신기하다 싶었는데, 내 리추얼에도 그랬다. 완벽주의자, 계획형, 그리고 걱정인형 (하하)
"아마도 그렇기에 글쓰기 시작이 힘들어서 이렇게 리추얼도 시작하셨겠지요? 잘 찾아오셨습니다. 완벽주의 부셔보자고요!"
꾸준히 쓰기의 가장 큰 적이 완벽주의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욕심이 생기면 글은 어려워지고, 무거워지고, 재미가 없어진다. 첫 온라인 미팅에서 우리가 제일 많이 했던 말이 ‘힘 빼고 가볍게!’였다. 리추얼을 하는 3주 동안에도 누군가 외치고 메아리처럼 주고받았다. 가볍게~ 가볍게~
기본적으로 다들 글쓰기를 좋아하는 분들임이 틀림없다. 매일의 일기는 가벼운 끄적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첫 번째 주, 깔끔하게 정리된 메모장의 글들이 후두둑 올라왔다. 대단하다 엄지를 들어 올리면서도 계속 덧붙였다. "더 가볍게 써도 괜찮아요. 피곤한 날은 세 줄 만, 5분만 써도 되어요."
조금만 써도 된다는 조언이 무색하게 멋쟁이 메이트들은 아주 스무스하게 1주 차 일기를 첫날의 수준으로 꾸준히 유지했다. 5분만 쓰고 자야지 하며 시작했다가 한 바닥을 가득 채우기도, 너무 피곤하지만 다 썼을 때으 그 뿌듯함을 느끼고 싶다며 새벽 두 시에도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언니들! 너무 멋져!)
에세이 초고를 써야 하는 첫 번째 주말에는 추가로 온라인 미팅을 해야겠다 싶었다. 실제로 내가 에세이를 쓰려고 할 때 도움받았던 책이자, 많은 글쓰기 강의에서 첫 시간에 인용하는 부분을 활용했다. 바로 이유미 작가님의 책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에 소개된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를 설명한 표. 에세이가 갖춰야 할 많은 것들이 있지만 이제 시작하는 우리에게 맞게 몇 가지만 먼저 생각해보자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각자가 자신의 첫 주 일기를 돌아보며 첫 에세이의 글감을 찾았다. 생각보다 글감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은 듯했다. 오히려 쓰고 싶은 글에 대한 생각은 이미 오래전부터 하고 계신 듯했다.
10분 만에 정리된 내 에세이의 글감들
퇴사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과정
캐나다 독립일기
글쓰기 트라우마 극복기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위한 글쓰기
쉼에 대한 글쓰기
식사일기
달리기 에세이
얼굴만큼이나 다양한 글감들. 이제 잘 쓰기만 하면 되겠구나! 하며 훈훈하게 다들 파이팅을 나누었다.
모두가 나눈 3주간의 작은 목표
부담되지 않는 글쓰기
가볍게 가볍게 쓰기
자기 검열 없는 솔직한 글쓰기
잘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쓰기
글쓰기가 즐거움이 되게 하자
하루 마무리를 일기로 하기
강박도 있고 계획도 높게 잡는 우리에게는 정말 작은 목표가 중요했다. 한 번만 이야기도 모두 찰떡같이 알아채시고는 각자의 작은 목표를 세우고, 우리의 강점을 발휘해 잘 지켰다. 미션 클리어!
저녁 리추얼이지만 해보니 저녁보다 아침에 글이 더 잘 써진다며 아침에 인증하는 글이 올라왔다. "오! 너무 좋아요. 저녁에 한다는 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 잘 되는 방식을 찾아가는 게 중요한 거지요."
메모장에 타이핑으로 정리하다가 손글씨로 바꿔보고 노트에 손글씨가 좋다고 남겨주시는 분도 생겼고, 글을 쓸 때도 말하듯 쓰는 게 편해서 자신에게 편지 쓰듯 자신만의 문체를 찾아가는 분도 있었다.
각자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두 번째 주였다.
에세이 초고에 대한 부담이 있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너무 압박받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대로 주말의 에세이를 써갔다. 누군가는 계속 여러 개의 초고를 썼고, 초고를 쓰고 둘째 주에 다듬어 글을 완성하기도 하고, 에세이 같은 매일의 글을 주말에도 꾸준히 계속 쓰기도 했다.
깨끗하던 페이지에 매주 하나씩 두 개의 글이 올라온 브런치를 보는데 뭉클해지고, '글 한 편을 쓰고 나니 너무 뿌듯하고 개운하다.'는 말에 내 첫 글을 썼을 때보다 더 큰 감동이 몰려오는 듯했다.
최근 밑미 리추얼에서 리사손님이 해주신 말씀이 며칠 동안 머리에 콕 박혔다.
메타인지는 그 순간순간의 나를 관찰하고 모니터링하는 거예요.
"‘난 이런 사람이야’ 결론짓는 게 메타인지가 아니에요. 그런 면에서 각종 유형의 심리검사는 가끔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타고난 나를 그냥 받아들이게 만들어버리니까요."
가만히보면 나도 최근 일년간 나의 트루타입을 찾으려 조금은 집착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타고난 기질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거겠거니 그냥 받아들이려 하기도 했다. 그러다 이번에 리사손님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내가 어떻게 생긴 사람이면 어떤가 그냥 하고 싶은 거 다양하게 도전해보고 그 과정을 즐기면서 ‘나 이런 거 좋아하네? 의외로 이런 거 잘하네?’ 하며 발견하기만 해도 되지 뭐.'
마지막 온라인 미팅에서 각자가 멀리서 다른 사람의 일기를 읽듯 자신을 관찰하는 시간을 갖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분간 음악 들으며 자신의 기록을 읽어보고 새롭게 발견한 내 모습이나 느낀 점을 나누었다.
생각보다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거, 무던하다고 생각했는데 예민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주된 글감이 부정적인 감정이었는데 의외로 액티브한 모습들을 발견하고 놀랐어요.
스스로 별로라고 여기고 외면하고 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첫 일기는 출장에 대한 걱정으로 시작했는데 그 출장이 내일로 다가왔고 지금은 기대감만 들어요.
체력적으로 지친다고 시작했다가 글 쓰며 최선을 다한 내 모습이 뿌듯하다고 끝난 일기가 정말 많았어요.
10월 초에 이렇게 살고 싶다 바랬던 마음이 이뤄져서 좋아요
글이 남아서 다시 읽게 되니 그날의 순간순간이 떠올라서 좋네요
글쓰기 너무 재미있어요.
그 말을 인증글로 보았을 때도 찌릿한 감동이 몰려왔는데, 얼굴 보며 리추얼의 소회를 나누는 자리에서 다시 이 말을 듣는데 너무 설렜다. 마음속에서 되감기와 다시 듣기를 했다.
'글쓰기가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글쓰기가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글쓰기가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이 맛에 리추얼 메이커를 2년씩 하시는 건가 싶었다. 이렇게 큰 감동을 받아도 되는 건가 싶었다. 이런 기분을 표현할 단어로 감동, 감격, 뭉클 등의 단어밖에 쓸 수 없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
북페어에 참여한다는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생각했다. '함께 리추얼 한 글을 모아 독립출판을 하는 분이 생긴다면 너무 좋겠다. 각자가 하기 힘들다면? 조금씩 나눠서 함께 한 권의 책을 만들어볼까? 그럼 역시 글이 먼저니까 함께 쓰는 매거진을 만들어볼까? 브런치 작가 되기가 목표이신 분들도 있는데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각자가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글을 쓰지만 우리가 함께 하는 목표도 만들어보고 싶다. 다음 달에도 함께 할 분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꾸준히 쓰고, 바쁘면 쉬다가 또다시 돌아와서 언제든 함께 쓸 수 있는 그런 울타리가 되고 싶다.
최근 고수리 작가님의 책 <마음 쓰는 밤>을 읽으며 혼자 쓰는 글에서 함께 하며 확장하는 글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 제일 와닿았었다. 아마도 리추얼을 함께하는 나의 이런 경험과 맞물려서 더 그랬을 거다. 북토크에서 작가님이 나지막이 말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하루에 단 한 번이라도 한 사람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본 적이 있는지."
3주 동안 매일의 우리의 하루를 글로 남기고, 서로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누군가의 고민에 도움을 주고 싶어서 나도 더 배우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도 생긴다.
함께 할 수 있어 너무 감사했어요 그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