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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을 따라 좋아하는 걸 계속할 뿐, 김지수 기자

에디터 커뮤니티 S.O.E.S <선배와의 대화> 김지수 기자

by 보리 Bori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도 빠지지 않고 정독하는 기사가 있다. 설령 깜빡하더라도 커뮤니티에서 꼭 다시 공유받게 되는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개인적으로 매년 스스로 꼽아보는 ‘올해의 책 베스트 5’ 안에 반드시 한 권씩은 기자님의 책이 있었다. 진짜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 노하우보다 중요한 건 삶을 대하는 태도라는 클래식한 진리를 깨닫게 한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죽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고 진짜 삶에서 중요한 가치가 뭔지 고민하게 했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그리고 일터의 문장들까지.

특히 일터의 문장들 4장 자아 챕터는 완벽주의와 인정욕구가 강한 나에게 공감과 동시에 도움이 되는 문장이 정말 많았다. 통째로 필타하고 나와 비슷한 성향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야기도 해주고 선물도 해가며 곱씹어 소화했던 책이다.


나에게 최근 2~3년은 환경도 많이 바뀌고,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도 많이 달라지면서 내적 성장이 컸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김지수 기자님은 그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 분 중에 한 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이분을 에디터 커뮤니티 S.O.E.S 에서 선배와의 대화라는 기회로 만나게 되었다.


공감되는, 위로하는, 당연하지만 늘 잊고 지내게 되는 진리를 상기시키는, 냉정하게 허를 찌르는, 생각해보도록 질문을 던져주셔서 모바일 메모장에 오타를 내가며 귀한 이야기들을 미친 듯이 받아 적었다.


글로 잘 써봐야지 하고는 계속 또 미루면서 바쁜 연말을 보내는데 그 사이 계속 떠오르는 몇 가지 문장과 키워드들이 있었다. 잘 정리하려니 쓸데없이 힘이 들어가 그냥 나에게 의미 있었던 키워드로 편집해서 남겨보는 글. Q&A형태로 진행되었는데 인상 깊었던 문장이나 이야기들을 나에게 와닿은 포인트대로 편집해 보았다. 자연스러움, 꾸준함, 드러남, 용기, 이상,,, 이런 것들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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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홍보팀에서 사보를 쓰는 일을 할 때 공적인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당장은 방법이 없어서 우선 내 열망을 여기저기 이야기하고 다녔어요. 그러면서 저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했죠.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나를 찾게 하도록이요.


인터뷰를 처음 하게 되었을 때 섭외부터 주제까지 막막했어요. 막연히 영화를 좋아했으니까 영화배우를 인터뷰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배우 인터뷰를 시작했고, 영화에 관심이 많았으니 인터뷰를 할 때 도움이 많이 되었죠.



높은 이상을 바라보며 나아가면, 자연스럽게 나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생긴다.


저는 이상주의자예요. 보그에서 피처에디터로 일할 때 전 휴머니즘과 저널리즘을 꿈꿨어요. 당시 피처에디터는 문화적 레이더를 제공하는 역할을 주로 했는데 전 페미니즘이나 전쟁 등을 다루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패션지 내에서 저널리스트라는 포지션을 가지게 되었어요.

언론사에 왔을 때도 이곳의 룰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제가 잘할 수 있는 서정적인 글을 썼어요. 객관적이고 건조한 글이 많은 곳에서 저만의 미학적인 문체가 오히려 차별화 포인트가 된 거죠.


사실 매 순간 대단한 다짐이 있었다기보다는 뭘 해야 할지 잘 몰라서, 내가 잘하자는 걸 하자는 생각으로 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 그런 선택들이 모여 내 높은 이상에 가까이 가게 만들어주고 나만의 차별화 포인트도 생기게 한 것 같아요.


현재 하고 있는 것과 다르게 하고 싶다면 조금 더 높은 이상의 방향을 제시해 보세요. 그럼 ‘왜 이런 걸 하는 거지?’라는 저항을 덜 받고 조금 더 편하게 갈 수 있어요. 설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는 거죠. 힘 있는 콘텐츠가 목소리를 만들어주니까요.




인터뷰에 대한 관점의 변화


한때는 인터뷰를 문학의 장르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작가주의처럼 문장의 톤이나 분위기까지 인터뷰이에 어울리게 미학적 재미를 추구하면서 굉장히 다양한 플롯을 구사했어요. (소설가 김훈의 인터뷰면 그 문장도 비장하고 담대하게. 배우 이영애의 인터뷰면 그 문장도 실키하고 나긋나긋하게. 마치 배우가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듯이)

이제는 인터뷰로 내가 뭘 해보겠다기보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인터뷰를 구사하고 활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요. 아들의 장애를 발견하고 2천 명의 장애인을 인터뷰하면서 해답을 찾아간 『마이너리티 디자인』의 저자 사와다 도모히로처럼 인터뷰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거라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인터뷰의 힘을 많이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이전에는 인터뷰어가 상담사이거나 변호사라고 생각했어요. 때로는 심리상담사처럼 힐러가 되고, 때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저 사람의 편에서 그를 지키는 역할을 했거든요. 요즘에는 전문성의 밀도가 높은 언어를 대중의 언어로 풀어내는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ㄴ ‘이상’이라는 단어가 생경하게 들렸다. 그동안 나와는 거리가 먼 저 세상에 있다고 생각한 개념이 갑자기 훅 다가온 느낌이랄까. 난 지금껏 개인적인 목표를 위해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뭘 해야 할 것인가만 생각했던 것 같다. 뒤에 이어질 내용에도 나오지만 기자님은 ‘내가 뭘 하고 싶은가’에만 국한되지 않고 ‘내가 뭘 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하셨다. 인터뷰를 생각하는 기자님의 관점 전환이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듯했다. 이 세상에 필요한 변화가 무엇인지도 촉을 세우고 고민해 봐야 한다는 것. 그래서 개인적인 목표가 아닌 이상이라는 표현이 와닿았다.

인터뷰어를 변호사라고 생각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의 인터뷰이들은 얼마나 든든했을까. 그가 자신의 직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명 같은 단어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실패에 좌절하지 말고 꾸준히!


열망을 이야기하고 다니면서 잘 준비하면 결국 기회가 와요. 하지만 모든 기회를 다 잡을 수 있는 건 아니죠. 고배를 마시는 때도 있어요. 중요한 건 거기서 무너지지 않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면서 다시 준비하는 거예요. 기회는 또 와요. 그 사이 내가 준비가 되면 다시 찾아온 기회는 잡을 수 있어요. 돌아보니 그렇더라고요. 실패했을 때는 내 준비가 부족했던 때였어요.


마감은 자기 의심을 이겨내는 과정인 것 같아요. 끝은 옵니다. 그러니 스스로를 토닥여주세요. 사람에게 업다운은 있기 마련이지만 꾸준히 해나가면 컨트롤할 수 있어요. 괜찮아집니다.




호기심 그리고 꾸준함


인터뷰를 할 때는 과감함과 관심도 필요해요. 성실하고 철저한 준비가 뒷받침되어야만 자신감이 생겨요. 그럼 과감해질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호기심 있는 눈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려는 관심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인터뷰에서는 내가 너를 ‘알고 있다’와 ‘알고 싶다’가 적정히 섞인 선이 중요해요.


저는 호기심 많은 사람을 좋아해요. 호기심을 따르는 사람들은 천진난만하죠. 방향을 제시해주고 그걸 즐기는 사람을 따라가요. 호기심을 따라 내가 좋아하는 걸 계속할 뿐이죠.


저는 브랜딩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어요. 호기심을 따라 내가 좋아하는 걸 계속했을 뿐이에요. 나의 관심사, 나다운 건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마련이에요. 의도적이고 계획적이고 전략적인 브랜딩보다 더 투명하고 정확해요.


기사를 쓰고, 책을 내고, 방송도 하면서 여러 플랫폼을 개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도한 건 아니에요. 저는 녹음기도 안 쓸 정도로 아날로그적인 사람이에요. 다만 뭐든 시작하면 계속, 꾸준히 해요. 그러다 보니 제안이나 기회가 온 거예요. (영화가 인터뷰로, 인터뷰 기사가 다시 영화를 소개하는 방송으로 연결된 것처럼) 꾸준함이 제일 힘든 일이거든요. 압점만 명확하다면, 그냥 계속하면 뭐가 돼도 돼요.


인간은 흐름을 타야 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꾸준함이에요.


ㄴ 이날 기자님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호기심’이었다. 이 단어를 말할 때 얼굴에 아이 같은 표정이 퍼지는 걸 보았다. 나에게 기자님의 호기심은 사람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관심처럼 보였다. 최근 ‘자연스럽게’와 ‘드러난다’는 단어를 자주 말하고 다녔는데 그래서인지 ‘호기심을 따라 계속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드러났다’는 말이 오늘의 문장으로 콕 와서 박혔다. 요즘은 자신을 어떻게 차별화하고 브랜딩 해서 어떻게 보이게 할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진짜 욕구와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찾아서(압점) 자신을 믿고 꾸준히 노력하는 게 결국 중요한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자기 고용


운 좋은 사람이 나를 스카우트하게 만드세요. 희망적 이게도 세상은 예전보다 더 공평해질 수 있는 환경이 됐어요. 하고 싶은 일, 열망을 이야기하고 다니면서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나를 찾도록 실력을 키워야 하고 친절해야 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꾸준히 하면 됩니다. 나를 발견되게 만드세요.


인터뷰에서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섭외일 거예요. 한 때는 인기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섭외하는 게 어렵고 그게 파워처럼 보여서 그걸 드러내려고 했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게 나를 깎아내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힘 빼지 말고,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야 해요. 내 글에 정당성을 주기 위해 누구를 만나야 할지 고민하고, 이 시대에 어떤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세요. 이 주관으로 나만의 경쟁력을 만들고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드러내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가다 보면 섭외하지 않아도 내가 만나야 할 사람에게 역으로 연락이 오기도 합니다.


ㄴ 희망적인 메시지로 응원을 주는 마음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여기서도 계속 이어진다. 내가 나아가고 싶은 방향을 설정하는 데 있어 이 시대에 어떤 목소리가 필요한지 고민하는 것.



경청


모든 사람에게는 고유한 자신의 소리가 있어요. 하지만 잘 들어주는 사람이 없지요. 취재와 인터뷰는 모든 작업의 굉장히 중요한 근간입니다.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주 소중해요.


인터뷰에서 이 사람의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가에 대한 목적이 있어야 그에 맞는 것을 들을 수 있어요. 이런 맥락에서 초반의 경청과 후반의 경청이 달라요. 초반의 경청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수면 위로 올라오도록 돕는 응원의 경청이라면 후반에는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위한 선택적 경청입니다. 현장에서 듣는 경청만큼이나 인터뷰하며 흘려 쓴 텍스트 사이사이를 알아차리는 경청도 중요하지요. 숨겨진 것을 발견하는 경청의 순간이 있거든요. 그 과정에서 중요하지 않은 말이 중요한 것으로 재배치되는 경우도 많아요.


ㄴ 리추얼 메이트들의 글을 읽으면서 각자가 가진 자신의 소리와 개성에 대해 느끼고 있던 터라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인터뷰한다는 생각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온전히 꺼낼 수 있게 응원하고, 그들이 선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찾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느라 잠시 집중이 흐트러졌다.



새 언어를 제시하는 사람


그간 만난 인터뷰이는 모두 새로운 언어를 제시하는 사람이었어요. 예를 들면 예일대 심리학 교수 폴 블룸(Paul Bloom)은 ‘왜 우리가 고통을 추구하는지’에 대해 말해요. 진화는 고통을 통해 개선되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고, 때문에 인간은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에 의해 고통을 선택하게 된다는 거죠. 인간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럼 행복이 당연한 것에서 고통이 당연한 걸로 바뀌게 되죠.


한 때 전 많은 후회를 하고 살아서 후회를 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런데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위험을 부담하지 않아야 하니까 제자리에서 맴돌게 되더라고요. 그러던 와중에 미래학자인 다니엘 핑크(Daniel H. Pink)를 만나 후회가 인생을 재구성할 수 있는 통찰의 기회를 어떻게 제시하는지 알게 되었어요. 리스크 테이킹을 하게 저 스스로도 변했어요.


모두가 느끼고 있는 걸 재해석해서 새로운 언어로 제시해주는 사람들을 찾아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어요.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흥분이 되고, 나아가 인생이 바뀌거든요. 제가 리스크 테이킹하게 된 것처럼요.


ㄴ 어렴풋한 느낌적 느낌을 누군가 명쾌하게 정리해주고 그것에 너무 공감되는 순간, 김지수의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기사는 나에게도 그럴 때가 많았다.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인터뷰가 본인에게도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흥분하는 아이 같은 모습에 사람은 역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걸,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전해지는 메시지에 힘이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앞으로 어떤 문체를 쓰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셨다.

"동화의 문체, 아이 같은 문체를 쓰고 싶어요. 스위스나 베를린, 혹은 제주도 같은 다른 공간에서 천진난만한 문체로 글을 쓰고 있었으면 합니다."


높은 이상, 성실함, 꾸준함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그는 자신의 일을 너무 사랑하고 즐기는 아이 같은 모습을 자주 내비쳤었다. 호기심이 동력이라는 말도, 천진난만한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이야말로 가장 김지수 기자님에게 잘 어울리는 표현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세상에 필요한 새 언어를 제시하는 그의 따뜻한 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마지막 문장.


전 요즘 쉬고 싶기도 새롭게 시작해 보고 싶기도 한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 있어요. 그럼에도 스스로를 너무 불안해하지 않는 지금의 모습이 마음에 들어요. 하지 않은 것보다는 한 것이 나아요. 실패했더라도 시도했고, 경험을 했으며, 저변을 넓힌 거잖아요. 고민의 소용돌이를 잘 건너갔으면 좋겠어요. 평온해 보이는 사람도 사실 평온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크고 작은 소용돌이 속에 있답니다. 각자의 소용돌이를 함께 잘 건너가 보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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