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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 Bori Aug 18. 2024

사수 없이 일하는 내가 에디터 선배를 만난다면?

『Society of Editors: 질문하고 설득하는 사람들』편집 회고

2023년 멤버로 활동 중인 에디터 커뮤니티 SOES에서『Society of Editors: 질문하고 설득하는 사람들』을 발간했다. 그동안 에디터가 하는 일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선배와의 대화>를 정기적으로 진행하며, 멤버들이 만나고 싶은 선배를 직접 섭외하고, 고민과 질문을 주고받으며 깊은 대화를 나눴다. 같은 업을 한다는 동질감은 금세 공감대를 만들었고, 스파크가 튀는 문답과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귀한 조언과 인사이트가 쌓여갈수록 이 자료를 커뮤니티 안에만 두기에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차곡차곡 남겨두었던 기록을 꺼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편집 TF에 합류하여 책을 세상에 꺼내놓기까지 약 6개월 동안의 경험은 두 가지를 남겼다. 첫 번째는 콘텐츠와 책을 만드는 ‘프로들의 ‘편집 과정’을 들여다보고 맛보기로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 두 번째는 잡지 에디터부터 온라인 콘텐츠 에디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일하는 에디터들과 긴밀하게 논의하고 소통하며 각 영역에서 에디터에 중요한 역량이나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것. 이 글은 커뮤니티에서 차곡차곡 쌓은 콘텐츠를 바탕으로 책을 만든 프로젝트 회고 일지이자 가벼운 소회이다. 



Society of Editors (SOES)

매거진 에디터·콘텐츠 에디터·프리랜스 에디터 등 다양한 필드에서 일하는 에디터들이 소속과 관계없이 만나고 교류하는 동료애 기반의 에디터 커뮤니티. 2022년 2월, 30여 명의 에디터가 1기로 시작해 현재 3기 활동이 진행 중이다. 오프라인 모임 <선배와의 대화>, 온라인 <경험 공유회>, 멤버들의 소모임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SNS에서 활동 내용과 새 기수 모집 소식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홈페이지: https://www.society-editors.com/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ociety.editors/


선배와의 대화 

멤버들이 만나고 싶은 에디터 선배, 혹은 에디터에서 업을 확장해 다른 영역으로 간 선배, 혹은 크리에이터로서 존경할 만한 점이 있는 선배를 섭외해 대화를 나누는 SOES의 공식 프로그램.

모더레이터가 멤버들과 함께 만나고 싶은 선배를 선정하여 섭외하고, 당일 선배와 대화를 나누고 에디터들의 Q&A도 진행한다. 주로 에디터로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당시의 고민과 업력을 키워온 과정, 요즘 에디터들의 고민 등을 나눈다. 멤버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매 회 스크립트와 현장 사진도 빠짐없이 남길 수 있었다. 




SOES의 편집 TF 활동 과정 


2023년 5월 초. TF가 꾸려지고 킥오프 미팅

2기를 마무리하던 2022년 연말 파티에서 그간 공식적으로 나눈 7명의 <선배와의 대화>를 책으로 엮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SOES 멤버들만 듣고 보기에 너무 아깝다는 것. 이왕이면 독립출판물로 만들어 이 책으로 페어에 참여해 보기로 했고 그렇게 언리미티드 에디션(UE)을 목표로 5명의 TF가 꾸려졌다. 


TF팀이 하게 될 업무는 

UE 신청 조건에 맞추어서 서류 준비

사업비 관리 (예상 부수와 제작비 계산 후 시드머니 모금 방식 기획) 

책 기획, 편집

외주 디자이너 소통 

SOES 커뮤니티 내에 프로젝트 진행 상황 공유    


킥오프 미팅에서는 전체 제작 일정, 디자이너 후보, 사업비 예산과 제작비 모금을 위한 방법 등을 논의했다. 

킥오프 미팅 회의록


2023년 5월 말. 온라인으로 긴밀하게 소통하여 UE 참가신청 완료

이후 카톡방과 노션으로 온라인에서 긴밀한 논의와 소통이 시작되었다. 귀하디 귀한 선배와의 대화 합본 파일을 공유하고 각자 읽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고, UE 참가 신청 서류의 핵심이 될 ‘제목’을 정하기 위해 첫 온라인 미팅도 진행했다. 온라인 미팅은 노션과 단톡방을 오가며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합의해야 하는 질문 

주요 독자는 누구?

독자가 이 책에서 가장 찾고 싶은 정보는? 

전체 내용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추가 질문과 의견

에디터, 에디팅, 에디터십 중에 어떤 키워드에 집중할 것인가

큰 제목에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부제로 메시지를 뾰족하게 보여주면 어떨까

부제에 필수로 들어가야 할 키워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제목과 함께 표지에 연사분들 이름이 기재될 거라는 점 고려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각자 담당파일을 업로드하고 댓글로 논의한 노션 페이지



두 시간 동안 노션과 채팅으로 열띤 토론과 투표를 반복한 끝에 제목이 가장 먼저 확정되었다. 

『Society of Editors: 질문하고 설득하는 사람들』


제목을 정한 것도 기뻤지만, 카톡으로 진행한 밀도 있는 회의의 즐거움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책을 만들며 경험한 감각 중 top3에 기억될 만한 감각. 



이후 북디자인을 의뢰한 스튜디오도 결정하고 미팅진행하며 제작 취지와 목표도 공유하고, 간단한 목업 이미지를 받아서 5/30 마감일 전 UE 참사 신청 서류도 제출도 완료했다. 추가로 책과 디자인을 위한 콘셉트를 논의하며 ‘사전’이라는 콘셉트와 ‘낯설고 실험적인’ 이미지로 방향을 정하고, <낯선 사전>이라는 키워드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핀터레스트에 모았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디자인 스튜디오와 미팅도 진행했다. 


 

디자인 스튜디오에 소개하기 위한 책 소개서와 디자인 레퍼런스 자료



독립출판페어 참가신청 소개서 중 일부




2023년 7월. 독립출판 대신 전자책으로 방향 선회

UE 지원팀이 600팀이 훌쩍 넘는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불안했으면서도 콘텐츠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고 동료들과 함께 하기에 자신도 있었지만 탈락하고 말았다. 이럴 수가! 창작물이 많아야 유리한데 단 한 권의 책으로 두 개의 부스를 신청해서 그렇다, 아트북페어라서 그렇다 등등 다양한 위로를 많이 받고 다른 독립출판페어를 준비하자고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책으로 독립출판페어에 참여하는 것이 맞을까?’ 하는 본질적인 의문이 들었다.


꼭 종이책 만들어서 독립출판페어에 나가야 할까? 

- 우리가 출판하려는 책과 독립출판물의 결이 맞지 않다는 판단

- 인쇄하여 물성 있는 책의 형태로 만들어내기에 제작비 부담  


독립출판하려고 했던 목적이 뭐였지?

- 선배와의 대화내용을 정돈된 결과물로 완성 

- 커뮤니티 활성화

- 3기 모집 전, 그간의 활동 내역 소개 


그렇다면 독립출판이 아닌 대안을 생각해 보자!

- 타깃 : SOES나 에디터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

- 조건 : 상업적 목적 없어야 함 (선배들이 후배를 위해 참여했던 목적 고려)  

- 제작형태 : PDF (제작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 

- 가격 : 편집과 디자인 비용 등을 감안하여 설정

- 판매형태 : 타 플랫폼 사용하지 않고 SNS나 홈페이지에서 구글폼 등 통해서 직접 판매

- 추가 콘텐츠 : SOES 멤버들의 이야기 추가


독립출판하려고 했던 기존의 목적을 다시 상기하고 독립출판페어 참여의 대안은 없을지 고민한 결과 독립출판물이 아닌 전자책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디자인 스튜디오와도 협의하여 계약을 종료하고 SOES 멤버들과도 이 내용을 소통했다. 

그리고 프로젝트의 속도를 내기 위해 TF장을 정했다. 회사를 다니는 멤버들과 달리 프리랜서로 여유롭게 일하던 내가 자연스럽게 리드하기로 했지만 사실 편집도 전자책 발행도 처음이라 내심 걱정되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전자책 제작 완료 후 판매까지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게 정말 많아서 귀한 경험이 되었다. 



2023년 8월 초. 전자책에 맞는 기획 및 디자인 의뢰

뜨거운 한여름, 우리는 다시 한번 오프라인으로 만났다. ‘사전’이라는 전체 기획 방향을 세밀하게 조정했다. 각자 담당할 편집 범위를 나누고 각자가 담당하는 영역에서의 키워드들도 중복되지 않도록 논의했다. SOES 멤버들의 목소리도 담기 위해 설문폼을 활용해 각자가 에디터로 일하며 느끼고 깨닫고 결심한 이야기를 담기로 했다. 

이후 전자책 디자인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디자이너도 다시 수소문하여 미팅을 했다. 전자책 콘셉트와 디자인 레퍼런스 등을 공유하며 방향을 논의했다. 디자이너는 이 프로젝트 자체에 흥미를 가지고 디자인 이외의 부분에서도 적극 의견을 주었다. 다양하게 제안해 준 표지와 내지 디자인 안을 보고 멤버들과 논의하여 디자인 작업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이때 함께한 디자이너는 3기 멤버로 함께 하기도 했다. 


2023년 8월 말. 원고 마감 

TF 멤버들은 각자 2명 분의 원고를 담당하며 스크립트를 윤문 하며 각 원고 당 2개의 키워드를 뽑고, 발문을 뽑았다. 편집 TF를 진행하며 가장 만족스러웠던 건 선배들의 주옥같은 이야기를 꼭꼭 씹어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직접 참여했던 <선배와의 대화>였지만 원고를 정리하며 꼼꼼히 읽다 보니 당시에 와닿지 않았거나 놓쳤던 귀한 내용들이 다시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와닿았다. 또한 같은 시간 같은 내용을 듣고 정리한 사람의 관점에 따라 미묘하게 다르게 정리된 자료를 확인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당시에는 에디터로서의 경험이 충분히 않을 때였지만 나중에 에디터로 일하며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쓰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이때 접했던 선배들의 조언이 떠오르는 순간들도 많았다. 전설과도 같은 선배들의 이야기를 읽고 또 읽고 반복해서 읽으면서 마음에 새길 수 있어서 감사했다. 

에디터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태도로 일해야 하는지, 선배들의 인터뷰관, 글을 잘 쓴다는 건 무엇인지, 인터뷰를 잘하고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지, 지치지 않고 장기간 즐겁게 일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접할 수 있다



2023년 9월. 표지와 내지 디자인 결정 및 교정교열

디자이너가 전해준 표지와 내지 디자인 안을 보고 의견을 나누고 최종 확정했고, 이후 교정교열이 시작되었다. 편집 TF로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단계에서 진행된 교정교열이었다. 교정 기호를 새로 접하고 괄호 책표기기호, 발췌 형식 등 규칙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온라인 콘텐츠를 주로 발행했던 나에게 n회차의 교정교열 과정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오타는 기본, 매의 눈으로 띄어쓰기가 두 번 된 오류까지 발견해 내고, 편집자들이 각자의 기준으로 사용한 용어나 매체 표기법을 통일하는 등  종이로 된 매거진을 발행하면서 매월 책 한 권을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내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동안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마지막 완성도를 높이는 일에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력이 들어가는지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을 하나하나 지켜보면서, 이후 일에 대한 관점이 변하는 계기가 되었다. 품위 있는 글을 쓰기 위해 교정교열이 필수적인 역량이며, 사소하다고 느꼈던 이 능력이 큰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이 기회로 교정 기호, 참고 문헌 표기법 등을 알게 된 것은 물론, 한글 맞춤법 규정을 살펴보며 띄어쓰기 규칙이나 문장 기호 사용법도 제대로 배우고, 표준어 규정을 보며 우리말 문법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2024년 2월. 책 소개 

SOES 3기 멤버의 웰컴 기프트로 세상에 처음 소개한 이후, 멤버들의 눈으로 최종 오타 등을 체크하고 공식적으로 외부에 오픈하게 되었다. 책을 완성하고 나면 그 이후는 별거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긴 시간 고민하고 논의한 결과물을 끝까지 세상에 잘 꺼내기 위한 마지막 작업이 남아있었다. 

우리가 이 책을 왜 만들었는지, 어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어떤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지 전달하기 위한 콘텐츠를 만들면서, 그간 배우고 느낀 에디터의 태도와 역량을 실전에서 적용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얼마나 기계적이고 관성적으로 뻔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지도 깨달을 수 있었고. 





에디터로 일한 지 1년이 되어간다. 운이 좋게도 베테랑 선배의 데스킹이나 촘촘한 조언을 듣고, 능력 있고 태도도 좋은 동료들과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제대로 일을 배우고 익혀가는 중이다. 이제 슬슬 감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다시 미로 속을 헤매는 느낌이 들어 컴퓨터에서 이 파일을 찾았다. 출력해서 밑줄 그으며 온전히 독자의 마음으로 꼼꼼하게 읽었다. 그렇게 문장을 수집하다가 회고까지 이어졌고. 

프린터로 출력한 전자책


다시 읽기의 매력은 역시나 '변화한 나를 발견'한다는 데 있다. 당시 분명 선배들의 말과 나 사이에 거리라는 것이 존재했는데, 이번엔 많은 생각과 고민이 나와 겹쳐 보이고 공감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문장들이 비로소 팔딱거리며 다가왔다. '전설이라 불리는 그들도 아직까지 힘들고 어렵다는 일이니 뜻대로 되지 않는 건 당연하다. 매 순간 치열하게 고민하면서도, 매일 돌을 하나씩 쌓는다는 느낌으로 무리하지 말고 묵묵하게 가자'는 마음을 새기며 잔잔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에디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에디터는 어떻게 질문하고 섭외하고 대화하고 글을 쓰고 설득하는지, 어떻게 역량과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지, 어떤 기준과 원칙을 세우며 일하는지, 그리고 에디터의 업은 어디까지 업을 확장할 수 있는지 이런 질문이 생겼다면, 책에서 이에 대한 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비단 에디터뿐만이 아니라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이 어떤 자세와 태도로 일할 수 있을지 인생 선배의 조언도 큰 힘이 될 거라 생각한다. 

책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SOES 인스타그램『SOES: 질문하고 설득하는 사람들』소개 피드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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