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ori s resume

나를 위한 글쓰기

2025 REVIEW

by 보리 Bori

“전 그런 생각을 합니다. 무인도에서도 글을 쓸까 하고요.”


달과 6펜스를 읽다가 만난 한 문장이 가만히 생각하게 만들었다. ‘내 글을 읽어줄 사람이 없다면 나는 글을 쓸까?’ 인정하기 싫지만 나의 대답은 언제나 'No'였다. 그 점이 늘 불편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글을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사실 이 문제는 글쓰기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인정 욕구를 혐오하는 마음이 내 안에서 점점 번져갔다. 일에 매달린 이유도 인정받고 싶어서 아닌가? 내가 살아온 방식도 모두 명성을 얻고 싶어서였다. 글을 쓰는 이유는 삶의 곳곳에 똑같이 적용되어 왔다. 인정받고 싶고 나를 드러내고 싶다는 욕망. 그게 내가 글을 쓰고, 일을 하고, 살아가는 진짜 동력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해온 모든 것들이 잘못된 동기에서 비롯된 걸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나를 여기까지 성장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서 했던 일들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데 있다. 방향을 읽은 듯 허무했다. 글쓰기고 뭐고 다 멈추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철학책을 읽으며 내가 밑바닥에 다다랐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영혼의 위기, 동굴, 카오스, 텔로스 위기, 계곡…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어쨌든 그런 류의 어둠에 다다렀다는 건 명확했다. 세상이 정답이라 말하는 길을 무분별하게 좇기만 했을 뿐 나만의 이유와 방법을 진득하게 고민한 적이 없었다. 이제 나의 두 번째 산을 어떻게 올라갈 것인가.


마음의 고향에 이르게 하는 스피노자를 다시 찾았다. 본래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본성, 코나투스를 거스르면 부정적인 감정이 들고 코나투스와 일치하는 일을 할 때면 편안하다. 삶을 나아가게 하는 건 외부의 보상이나 평가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긍정하는 태도라 말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불편했던 순간은 참고 견뎌야 할 때가 아니라 맞지 않은 옷일 때가 많았다.


장자에게서도 비슷한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회와 권력이 만든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며 쓸모를 증명하려 애쓰지 말라는 말이 먼저 따뜻하게 손을 건넸다. 타인의 욕망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향유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몸담고 있는 곳에서 쿨하게 떠나라고.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 지금 이 순간은 미래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리니 현재에 충실하게 살라고 장자는 우화를 통해 툭툭 던진다. 그럼 그냥 본성에 충실하게 살아도 되나?


니체는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갔다. 자신이 존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넘어서야 한다고 했다. 니체가 말한 힘에의 의지는 욕망이 아니라 자신을 강화하려는 열정이었다. 낙타에서 사자로, 다시 아이가 되기 위해 몰락하고 건너가는 삶을 선택한 차라투스트라는 니체 자신이었다.

고통과 갈등, 긴장 자체가 삶이며, 삶은 본질적으로 투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병으로 평생을 고생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자신도 받아들이되 세상도 품어버리는 강인함을 배우고 싶었다. 원래 고통스럽고 불확실하고 계속 노력해야 하는 이 부조리한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인단 말인가.


카뮈는 세상에서 의미를 찾지 말아야 한다고 핬다. 그러나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 삶을 포기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더더욱 저항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지프스를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 태도에서, 나는 적어도 염세적으로 무너지고 싶지는 않은 마음을 확인했다.


“산다는 것, 거기에는 어떤 행복도 없다. 하지만 존재, 존재한다는 것은 행복이다.” 밀란 쿤데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철학자들은 저마다의 해답을 찾아나갔다.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으로 그를 보여주었다. 나는 어떤 철학을 실천하면서 살까. 앞으로 나만의 철학을 세우고 실천하기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호기심을 자극한 책들을 정리해 보니 나는, 나를 긍정하고 싶었나 보다. 더 이상 세상의 정답을 좇지 않고도 살 확신도 얻었다. 나만의 살아갈 목적을 가지고 정진해야 할지 그냥 물 흐르듯이 흘러가야 할지 아직 방법은 선명히 보이지 않지만 나에게 맞는 답도 천천히 드러나겠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나만의 가치관도 만들어 가겠지.


생각을 쌓고 다듬으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글을 썼던 이유에는 인정만 있었던 게 아니구나. 이렇게 내가 느끼고 생각한 걸 정리하는 쾌감도 분명 있었구나. 어쩌면 이렇게 읽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힌트 삼아 내 방향을 잡아나가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도 차오르면 흘러넘쳐서 써야 할 때가 오겠구나.


그때까지 호기심을 따라 도전하고 즐기면서 너무 무리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나만의 무인도에서 즐거이 글을 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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