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REVIEW
나는 휴양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덥고 습한 날씨는 질색이었고, 깨끗하고 쾌적한 곳이 좋아 해외여행을 가도 늘 유럽이나 도쿄였다. 그러다 워케이션으로 가게 된 발리 우붓. 업무는 한국에서 최대한 처리하고 발리에서는 필수로 해야 하는 일만 하기로 했으니 워케이션은 사실상 휴식에 가까웠다. 목적에 걸맞게 논밭뷰의 한적한 숙소를 골랐다. 떠나기 전 치러야 할 큰 프로젝트도 있었고 가서 마음 편히 쉬기 위해 전력질주를 하다가 출발하기도 전에 지쳐버렸다. 휴식하려다 불타버릴 것 같아서 그냥 일상을 여유 있게 보내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내가 발리병에 걸리게 될 줄은.
아침 명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우붓에서의 아침. 알람을 꺼두었지만 여전히 6시면 기상소리가 들려왔다. 새소리, 찌짝소리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북 치는 듯한 울음소리. 거실로 나와 모든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며 앉아 있으면 논밭 너머로 하늘이 붉어지고 구름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며 해가 떠올랐다. 우주의 에너지를 충전받는 느낌. 태양의 정기를 받아 좋은 글을 써보겠다며 노트북을 올려두었지만, 시시각각 색이 변하는 하늘을 보느라 좀처럼 노트북은 열리지 않았다. 어떤 생각도 나지 않았고 가만히 멍 때리는 아침. 나는 발리에서 그 시간이 제일 좋았다.
일곱 시가 되면 요가원을 갔다. 내가 경험한 요가는 대학생 때 시도했던 작심삼일 새벽 운동이 전부였다. 운동이 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선생님은 자꾸 무리하지 말라고 했다. 영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발리까지 왔으니 한 번쯤은 해봐야 하지 않나 싶었다. 근처에 요가지도자 과정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요가원이 있었고 아침 딱 한 타임만 일반 수업이 열리는데 후기도 좋았다. 무엇보다 걸어갈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요가도 처음이고 영어도 잘 안 들려서 옆을 힐끔거리며 동작을 따라 했다. 한 동작에 다섯 번씩 호흡을 하며 아주 느리게 느리게 움직이는데 땀구멍에서 용암이 분출하는 기분이었다. 요가는 유연한 스트레칭이라 생각했었는데 웬걸, 근력운동에 가까웠다.
낑낑대는 내가 어떻게 보일지, 누가 잘하는지, 신경 쓸 여유 따위 없었다. 중간중간 쉬어가며 겨우 버티다가 점점 정신이 아득해지고 눈앞이 하얘지는 느낌이 들 때쯤이면 쉴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다. 몇몇 만이 해내는 피크 포즈, 나는 매트 위에 철퍼덕 주저앉아 ‘저게 된다고?’ 눈으로 말하며 쳐다보았다. 두 손으로 자기 몸을 들어 올리는 고수들. 세상 멋있다. 나도 내 한 몸을 건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왕이면 멋들어지게!
탈탈탈탈 털려 말할 힘도 없이 집에 와서 먹는 샐러드는 비워낸 몸을 깨끗하게 채워주는 듯했다. 나른하게 늘어져서 해야 하는 일을 끝내놓고 더위가 절정에 이르면 수영을 했다. 초저녁이면 하품을 연거푸 하다가 신생아처럼 잤다. 한국에서처럼 일을 하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 했다면 변화가 더디 느껴졌을 텐데, 며칠 만에 수영복의 타이트함이 달라졌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몸무게를 숫자로 확인하진 못했지만 분명 부피가 줄어들었다는 느낌에 동기부여가 되었다. 함께 온 선배도 비슷했다. 늘 일로만 달려오던 우리는 잠시 쉬어주는 시간이 왜 필요한지, 몸을 챙기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주 이야기했다.
나의 룸메이트는 요가지도자 과정을 수료한 요기니였다. 초보자가 유의해아할 점도 알려주고, 내 체형에 맞게 자세도 잡아주었다. 다리가 너무 땡겨서 내일은 요가를 못하겠다고 걱정하면 말했다. “근육통은 원래 요가로 푸는 거야” 우리는 근육통에 뿌듯해하며 다음날 또 요가원을 갔다.
그렇게 몸에 충실한 12일을 보내면서 몸 안의 산소포화농도가 짙어지는 이 느낌을 유지하고 싶었다. 발리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집 근처 요가원을 검색해 체험 수업을 신청했다. 한국에 가서 요가를 꼭 일상에 들이리라 다짐했고 그렇게 나는 7개월째 요가 수련을 이어가고 있다.
발리에서의 요가가 기준이 되어버렸기에 한국에서 어쩌면 실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1시간 반씩 수련하다가 1시간씩 수련을 하니 뭔가 부족했다. 플로우가 빨라지면서 제대로 수련이 안된다는 느낌도 들었고 그곳에서 해오던 동작과 많이 달라서 다시 쌩초보가 된 느낌이었다.
처음엔 요가를 운동의 개념으로 접근해서 근력을 많이 사용하는 빈야사나 아쉬탕가만 만족스러웠고 다른 수업은 아쉬웠다. 하지만 컨디션이 안 좋을 때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풀어주기만 해도 좋고, 호흡만으로도 몸을 데울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면서 가리지 않고 다양한 수업을 듣게 되었다.
선생님마다 강조하는 지점이 달랐다. 누군가는 아사나 중심의 수련을, 누군가는 부상이 없도록 바른 자세를 강조했고, 누군가는 호흡을 중요하게 알려주기도 했다.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하면서 덕분에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알게 되고 내게 필요한 수련법을 찾아갈 수 있었다. 지금 당장 필요하다고 느껴지고 좋아 보이는 수련법이 아니어도 모든 수업이 의미 있게 느껴졌다. 그렇게 점점 더 자주 요가원을 찾았다.
내 몸은 내가 살아온 라이프스타일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골반 전방경사 때문에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했고, 의자 위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온 시간만큼 햄스트링도 짧아져 있어서 몸을 앞으로 굽히는 동작들이 거의 되지 않았다. 대신 후굴이나 외회전 동작들은 비교적 편했다.
키, 팔다리 길이, 유연성, 근력에 따라 누군가는 처음부터 수월하게 되는 동작이 있고, 전혀 따라 하지도 못하는 동작도 있었다. 타고난 체형과 형질의 영향이 생각보다 훨씬 컸다. 그런데 우월하지 않은 몸이 절망스럽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나는 팔이 짧으니까 이 동작은 여기까지면 충분해’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어딘가 부족한 나를 미워하지 말자, 비로소 이런 편안함이 찾아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동작 하나만 놓고 보면 잘하는 사람과 잘 안 되는 사람이 분명히 갈렸다. 하지만 여러 동작을 이어가면 이야기는 달랐다. 전굴이 잘 되는 사람이 후굴에는 약하고, 유연성이 좋은 대신 근력이 부족한 경우도 있었다. 모두가 수월한 동작만큼, 힘든 동작도 비슷하게 가지고 있다. 타고난 기질을 탓하거나 우월해할 이유가 없겠구나. 결국 우리는 각자 다른 장단점을 지니고 같은 자리에 있을 뿐이구나. 평생을 남과 비교하며 살아오면서 그러지 말자고 다짐해도 마음이 좀처럼 따라주지 않았는데, 요가를 하면서 비로소 비교하는 마음을 거둘 수 있었다.
요가에서는 하나의 아사나에 늘 여러 단계가 제시된다. 같은 동작이지만 각자의 몸에 맞는 선택지가 있다. 나는 이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실력에 따라 반을 나누지 않고 초보부터 고수까지 모두가 함께 수련을 하며 각자 자신의 단계에 맞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것. 초보자를 위한 설명을 들으며 놓쳤던 걸 깨닫기도 하고 고수의 동작을 보며 자극을 받기도 한다.
“이제 다음 단계도 해보셔도 될 것 같아요.”라는 말에 살포시 다리를 들어 올리는데 설마 될까 싶던 동작이 되는 것이 아닌가. 몸은 생각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안되던 동작이 조금씩 되기 시작하면서 성실함의 힘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타고난 체형도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쌓이면 바뀔 수 있구나. 조급해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 또 불가능한 건 없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천장을 바라본 채 누웠다가 두 손과 두 발로 바닥을 짚고 몸을 활처럼 들어 올리는 ‘우르드바 다누라’를 한참 연습하던 때였다. 수련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허리가 뻐근했다. 선생님은 골반 힘이 충분히 길러질 때까지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마음은 자꾸 앞서갔다. 어제는 분명히 됐는데 오늘은 안 되는 게 괜히 약이 올랐다.
그러다 이사하는 날, 결국 허리를 삐끗했다. 이 동작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지만, 그동안 허리에 무리가 쌓여 있었던 건 아닐까 싶었다. 결국 한동안 요가를 쉬어야 했다.
몸을 마음껏 쓰지 못하게 되니, 내 몸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준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실감하게 됐다. 다시 수련을 시작하면서는 무리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욕심을 내려놓고 되는 만큼만, 천천히 끌어올리기로.
발리에서 느낀 에너지는 나에게만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함께했던 모두가 긍정적인 변화를 느꼈고, 이런 시간을 정기적으로 갖고 싶다고 했다. 선배는 12월 발리행 티켓을 또 끊었다. 세 명으로 시작했던 첫 워케이션 6개월 후, 이번에는 함께 일하는 동료 에디터들까지 또다시 2주간 발리에 머물렀다.
이번에도 같은 동네, 같은 요가원에서 매일 아침 요가를 했다. 겨울한국을 떠나 따뜻한 나라에 오니 허리 부상 이후로 굳어 있던 몸도 서서히 풀리고, 오랜만에 시원하게 땀을 흘리고 나니 얼굴에 다시 핑크빛이 돌았다. 이번엔 다른 요가원들도 찾아다니며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하게 수련 경험을 넓혀보았다. 함께 수련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양평으로 이사한 뒤 다니게 된 요가원은 호흡에 중점을 두는 곳이다. 안 되던 아사나에 도전하다가 정적인 호흡에 집중하려니 오히려 몸이 정체되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이번 기회에 요가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호흡을 제대로 익혀보자는 마음으로 수련을 이어가고 있다.
예전의 나는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와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익숙했다. 그래서 늘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마음가짐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이 변화는 지난 2~3년 사이에 서서히 느껴온 것이지만, 요가가 그 확신을 단단히 심어주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어떤 수업이든, 어떤 일이든 내가 어떤 태도로 임하느냐에 따라 분명 도움이 되는 지점이 있다는 걸 느꼈으니까.
이 마음은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이어진다. 하고 싶은 일이나 해야 할 일을 위해 당장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을 가리고 배제하기보다는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 나를 찾아온 기회라면 성심껏 임하고 싶어졌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어디에선가 쓰임이 있을 거다. 그런 마음가짐 덕분에 지금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조급함도 줄어들었다.
허리를 다친 뒤 내 몸을 조금 더 제대로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계기로 해부학이나 올바른 요가 자세를 설명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그러다 자연스럽게 요가수트라에도 닿게 되었다. 점점 요가의 정신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생겼다. 발리에서 요가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던 동료가 추천해 준 대로 2026년에는 요가 지도자 과정을 수강해 볼까 한다.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기보다, 내 몸과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어서. 발리에서 시작된 요가는 나를 양평으로 이끌었고, 아사나에서 호흡으로, 다시 호흡에서 정신 수련으로 이어지고 있다.
뜨겁고 습한 기후를 질색하던 나는 어항 속 같았던 2025년의 여름이 싫지만은 않았다. 겨울이 되고 틈만 나면 발리에 다시 갈 수 없을지 생각한다. 동적인 운동을 좋아하던 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30분씩 명상을 한다. 인생은 참 알 수 없다. 2026년에는 요가가, 그리고 나의 삶이 또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