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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될대로 될 인생 Feb 06. 2022

결혼도 하지 않은 언니가 임신을 했다.

갑자기 찾아온 생명체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우리 언니에 대한 이야기다. 작년 12월 초부터 언니가 조금씩 변했다. 잘 먹지 않던 저녁을 정갈하게 차려 먹기 시작했고, 평소 효소만 먹던 그녀가 비타민부터 엽산까지 다양한 종류의 영양제를 챙겨먹고, 야식과 함께 자주 먹던 맥주를 입에 대지도 않았다. 최근 건강에 관심이 생겼나 보다 생각하고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나.


12월 마지막 날, 어느 날과 다름없이 우리 가족은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 사실, 임신했어"

에스프레소 4샷을 한 번에 마신 듯 내 두 눈은 크게 확장되며 피가 돌았다. 나와 엄마는 큰 눈으로 언니를 바라봤다. 순식간에 언니의 변한 행동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여러 생각이 복합적으로 들었지만, 일단은 축하가 먼저다.


"축하해!"


당황한 어머니의 표정에 대고 제일 먼저 외친 말이다. 남자 친구가 있는지도 몰랐던 엄마는 많이. 무지. 상당히 어이없을 것이다. 틈을 타 제일 먼저 축하를 전하자. 그럼 엄마도 치밀어 오르는 화는 나중이고 축하라는 단어부터 꺼낼 것이다.


언니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이 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큰 고민과 염려를 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1년 정도 만난 남자 친구가 있고, 생리를 하지 않아 테스트를 해보니 두 줄이 나왔고, 산부인과에서 확인해보니 정말 임신이 맞단다.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나쁜 소식은 감당하기 몇 배 더 힘들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좋은 일은 몇 배 더

기쁘다. 축복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놀랍고 경이롭고, 지켜내고 싶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말 한마디로 이렇게 큰 책임감을 정통으로 맞은 건 처음이다. 내가 이모가 된다니, 우리 언니가 엄마가 된다니!


4살이라는 나이 차이지만 항상 친구처럼 함께 자라온 언니와 나. 나보다 더 애 같아서 동생인 내가 조언과 잔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래도 화 한 번 내지 않고 "헤헤 알았어"하던 우리 언니가.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며느리가 된다.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가족이 들어오는 일은 처음인지라, 많이 서툴고 많은 오랜 대화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 있는 건 이제 곧 태어날 내 조카는 내가 아낌없이 예뻐해 줄 것이란 거. 코로나라는 긴긴 어둠에 작은 불씨 하나로 견뎌내던 내 마음에 활활 타오르는 장작이 되어준 작고 소중한 생명체.


요즘 나는 연봉 상승을 목적으로 이직 준비를 시작했으며 출산 책을 구매해 평소 알지 못했던 지식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니의 행동 하나 말 하나하나를 예리하게 캐치해내는 심부름 센서가 되었다.




보석아, 이 세상 살아가는 일이 그리 밝지만은 않아 2세는 생각도 안했던 이모의 다짐에 네가 보기 좋게 나타나 해맑게 웃고 있겠구나. 너의 등장은 내 인생에 그 어떤 소식보다 큰 자극이 되었다. 네가 살아가기에 지금보다 더 나을 수 있도록, 이모가 많이 노력하고 공부하고 변화할게. 건강하게 잘 나오길 바라. 초록 나뭇잎이 빛을 받아 찬란하게 흔들리는 그 계절에, 너는 세상 빛을 보겠구나. 우리 싱그러운 여름에 만나자.


언니와 그 배에 있는 보석이를 닮은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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