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세레인
해마다 가을을 만나면 순간 떠오르는 추억이 있습니다.
큰 아이가 7살, 작은 아이가 4살쯤 됐던 그해 가을, 서울대공원으로 나들이를 갔어요. 집에서 가까운 서울대공원은 자주 가서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곳이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뛰고 즐거워했습니다.
매번 같은 코스로 동물원을 한 바퀴 돌고, 간식을 먹고,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늘 같은 나들이였기에 이제 집에 가야겠다 마음을 먹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도통 끝나지 않을 놀이를 이어갔죠.
숨바꼭질 (둘밖에 없는데 뭐가 그리 재밌을까), 소꿉놀이 (나뭇잎을 주워와 돌로 찧고 빻고 배부른 우리에게 계속 먹으라 해요), 시소 타기, 그러다 또 먹기... 냅다 뛰기...
일주일 내내 근무를 한 남편은 피곤하면서도 아이들과 몸으로 놀아주기에 정신이 없었고 저는 우아하게 앉아서 커피를 마신 거로 기억합니다 (미안 남편... 지금 생각하니 나 철이 없었네...)
그때만 해도 남편은 토요일 근무를 했기에 일주일에 쉬는 날은 일요일 하루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을 보면 외출을 할 수밖에 없었죠. 피곤해도 멀지 않은 곳으로 체험을 다니고 산책을 다니고 연극, 영화 관람을 하며 주말에 집에서 쉬어 본 기억이 없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힘들었을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한가득이지만 그때만 해도 아이들과 몸놀이를 하는 건 남편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아이들과의 놀이는 의무감으로 생각돼서 저는 놀아주는 척만 했고 그마저도 남편에게 미루기 바빴어요.
마음껏 놀아 힘이 빠진 아이들을 데리고 '이제 집에 가서 쉬겠구나' 하며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낙엽이 꽤 많이 쌓인 산책길을 만났는데 아이들이 "와~"하더니 냅다 달리기 시작합니다
또... 하며 맥이 풀린 저는 앉을 의자부터 찾으며 두리번거렸는데 그때 작은 아이와 남편이 낙엽을 모아 저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어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던져봤자 제 앞 저 멀리 떨어졌지만 아이는 그래도 좋은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어요. 그리고 다시 낙엽을 줍기 시작했습니다.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동참했어요. 낙엽을 있는 대로 모아 한 뭉치를 아이들에게 던지자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고 신이 나서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아마 흔치 않은 엄마의 모습에 당황 반, 즐거움 반이었던 거 같아요.
그렇게 시작된 가을 전투에 남편은 사진을 찍기 위해 빠지고 저와 아이들은 꽤 오랜 시간 낙엽놀이를 했어요. 던지고 흩뿌리고 하도 쓸어 담아 흙까지 날리던 통에 아이들과 애를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나중에 사진을 보고 알았습니다. 내가 이런 표정이었구나. 평소 감정 표현에 인색하기에 드러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는데 아이들과 놀이를 하는 제 표정은 영락없는 초등학생 그 자체였어요.
아이들과 놀아주는 시간이 아니라 함께 즐기는 시간이 된 가을 낙엽놀이. 의무감이 아닌 진심으로 함께 놀아줬으니 아이들이 얼마나 즐거웠을지 상상이 갑니다.
지금도 가을이 되어 울긋불긋 낙엽들을 보면 꼭 그맘때 가을이 떠올라요. 그 가을은 제 가슴에 사진으로 남아 평생 간직하는 앨범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커서 큰 아이는 결혼을 하고 작은 아이는 대학생이 되었지만 가끔 모여 앨범을 볼 때마다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떠오릅니다. 아이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그 가을을 회상하며 행복한 표정을 지을 때면 내심 뿌듯하기까지 합니다.
거창한 나들이는 아니지만 주마다 가졌던 시간은 아이들에게 큰 자산으로 남아서 지금도 감사의 인사를 듣습니다. 아이들도 알더라고요. 엄마 아빠가 애써준 시간들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을.
그때 저보다 더 아이들에게 사랑 표현을 해준 남편에게 고맙고,
사랑으로 잘 자라준 나의 아이들에게 고맙습니다.
이 가을에 아이들과 낙엽길을 걸어볼까 생각해 봅니다.
손주가 태어나면 또 놀아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