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세레인
5월에 이직을 계획하면서 3,4월 두 달 동안 휴지기를 가졌다.
쉬는 기간이라 해도 마음은 벌써 알바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가만히 있는 성격도 못 되지만 이번 기회에 50이 넘은 전문직도 아닌 아줌마가 무얼 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현실적인 궁금증도 일었다.
'정말 더 이상 취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대체 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요즘 최대의 관심사며 하루도 허투루 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단 알바몬과 당근 위주로 단기 알바를 알아보기로 했다.
두 달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면서 보육교사 경력이 있는 내게 가장 적합한 아이 돌봄과 하원 도우미는 제외했다. 한두 달 적응 기간을 거쳐 겨우 낯선 이에게 마음을 열었을 아이들에게 이제 안녕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하루 종일 시간이 있는 나에게 3~4 시간은 조금 짧기도 했다.
특정 기술도 자격증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알바는 별로 없었다. 뭐 구직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일들도 딱히 전문적인 일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특히 단기 알바의 특성상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역설적이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힘든 일이다.
현실을 마주하기에 앞서 내가 가진 자격증을 모두 꺼내 보았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취득한 한식조리사가 시작이었다. 그리고 공인중개사, 보육교사, 직업상담사, 방화관리자까지 사연을 담아 하나씩 늘어난 자격증들.
내 능력 부족인지 두 달 동안 일하기에 적당한 자격증은 찾을 수 없었다.
한식 조리사 자격증이 있지만 정말 칼 쓰는 일만은 피하고 싶다. 주방 일을 좋아지도 않지만 성격 급한 내가 주방에서 칼이라도 들었다가 피라도 볼 것 같은 상상이 자꾸 떠올라서...
뭐 다시 말하지만 누가 단기 아르바이트생에게 칼을 주겠는가. 쓸데없는 걱정이지만 왠지 음식점으로는 마음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기술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음식적 서빙, 급식과 주방 보조, 물류 알바, 청소뿐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제하고 나면 지원할 곳이 없었다. 점점 마음이 급해지자 일주일이 지나면서부터는 시간과 거리가 맞으면 무조건 지원부터 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시급과 후기가 괜찮은 곳들은 몇 분 만에 수십 명이 몰리기도 한다. 많은 사람 중 먼저 지원한 이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것은 당연했기에 시간만 나면 알바몬과 당근 앱을 보게 됐다.
3월 초, 가장 많이 보이는 일자리는 물류회사였다. 각 물류 센터 지점마다 경쟁적으로 사람을 구하고 있어서 나도 다 안되면 최후 보루로 쿠팡 물류를 해볼 참이었다
물류 알바는 처음 해보는 일이라 솔직히 고민이 안 된 건 아니다.
'내 나이에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냥 쉬면서 천천히 알아볼까'
'굳이 내가 물류 창고를....'
별의별 생각이 들다가 하루해 보고 아님 말지 뭐 하려 할까 말까로 고민하며 시간을 축내는지 갑자기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한 번 지원한 내역이 있어서인지 문자도 자주 왔다. 프로모션이니 긴급이니 전화까지 여러 번 오는 통에 얼결에 출근 확정을 지어버렸다.
결정을 내리고 나니 좋은 방향으로 생각을 하게 되는 나.
'내가 되는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만큼 일할 수 있는 거잖아'
'쿠팡 배달도 했는데 물류라고 못할까'
마음을 편히 먹었다. 내가 지원한 파트가 어떤 일을 하는지도 좀 알아보고 필요한 것들도 준비했다. 물이며 간식거리를 챙겨가라는 이야기, 일할 때 갈아 신는 작업화가 불편하니 깔창을 따로 준비해서 가면 좋다는 이야기까지 꼼꼼히 챙겼다.
나름 준비를 했기에 괜찮겠다고 쉽게 생각했는데 문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물류 센터에 도착해서 보니 3월은 물량이 많은 건지 새로 온 분들이 엄청 많았다. 줄을 서서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앱을 켜고 하라는 대로 마친 다음 마지막으로 혈압을 체크했다.
혈압이 150을 넘기면 일을 할 수 없다고 들었지만 바로 며칠 전 병원에서 120 정도 정상 혈압 수치를 받은 터라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하지만 웬걸. 혈압 수치가 200이 넘게 나오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기계 오류인 줄 알고 옆에 있는 다른 자리에서 혈압을 다시 체크했다.
이번에는 180대... 이런....
수치가 나온 종이를 들고 관리자에게 말하니 잠깐 대기하시라고....
그리고 한참 후에 나를 사무실로 데려가서 손으로 눌러가며 혈압을 재는 수동 방식의 기계로 다시 한번 혈압을 쟀다.
그래도 170대...
관리자가 조용히 오더니 오늘은 일을 하실 수 없다고... 요즘 물량이 많아 일은 많으니 며칠 집에서 쉬시면서 혈압약도 먹고 관리하다가 다시 나오시라고....
아니, 정상인 내가 없는 혈압약을 어찌 먹냐고요ㅜㅜ
괜히 오며 가며 기다리고 쇼하는 동안 시간만 날려 버린 상황.
웃지 못할 해프닝에 기가 막혀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데 햇살은 어찌나 따스하던지...
혹시 나, 일 못하게 돼서 안심하는 중인가...
잠시 헷갈리기도 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예상치 못한 일이 점점 많아지는 일이다.
몰랐다.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대비하고 준비했는데도 알 수 없는 곳에서 문제가 터진다는 걸.
이만큼 살았으면 안정적인 삶을 살거라 생각하는 50대.
난 여전히 삶의 한가운데서 고군분투 중이다.
같은 자리에서 맴돌고 싶지 않아 작게라도 도전하는 중이며,
뭐라도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남들은 쉬는 기간 동안 여행도 하고 쉬지 뭐 하러 사서 고생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내가 이런 경험들로 무얼 배우고 무얼 깨닫게 되는지.
매일 같은 일을 하며 안정적인 삶을 사는 대신 나는 건너가는 자가 되기 위해 꾸준히 걷는다
그게 나니까.
버스를 타고 깜박 졸며 집으로 오는 데 지인에게서 전화가 온다.
여차저차 코미디 같은 상황을 이야기하니,
"쉬고 있었구나 그럼,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도와줘? 뭘???"
"내가 지금 사람을 못 구해서 그러는데...."
인력 소개소를 하고 있는 지인.
그 바람에 또 인생 첫 식당 서빙을 하게 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