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세레인
작은 아이의 중간고사 기간이다.
공부하는 아이가 제일 무섭다고
2주 넘게 서재로 쓰던 내 방을 아이에게 내주었다
수능도 아니지만 공부라는 단어는 늘 부모를 약하게 만든다.
방을 뺏긴 나는 다시 식탁으로�
공부는 엉덩이로 한다고 했던가.
방에서 휴대폰을 하는지, 강의를 듣는지, 책을 보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번 들어가면 두문불출 나오지 않는 딸이 기특했다.
커피만 계속 리필해 가던 딸을 보며 '나름 열심히구나' 싶었는데,
"으아아악!!!"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괴성을 지르는 딸.
"엄마! 내 글 좀 읽어봐 줄 수 있어?"
"글? 공부한 거 아니었어?"
"아니.. 리포트 마쳐야 공부하는데 지금 일주일째 글만 쓰고 있어서 미치겠어...."
영화예술 수업에서 장르를 주제로 리포트를 쓰고 있다고 했다.
"엄마가 본다고 뭘 알까?"
"그래도 좀 읽어봐 줘. 특히 이 부분. 바로 앞의 주장과 충돌하는 것 같지 않아? 갑자기 엉뚱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 한 편을 바탕으로 장르의 특성을 분석한 비평 글이었다
아이가 짚어준 부분을 집중해서 읽다가 문득, 낯익은 느낌이 스쳤다
'이거... 데자뷔인가...'
아.
얼마 전 공저책 원고를 쓰며 내가 아이에게 똑같은 부탁을 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 아이의 냉철한 피드백에 주눅이 들었던 내 모습까지 떠오르며 슬며시 웃음이 났다.
내 글을 비관하며 그냥 달렸던 기억까지;;
퀭한 얼굴로 고민하는 아이를 보니 리포트 하나에도 자신의 기준에 못 미쳐서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딸아, 지금 네 마음이 그때 내 마음이었단다.'
딸은 글을 잘 쓰는 편이다
하지만 나처럼 글 쓰는 걸 몹시 어려워한다.
논술로 대학을 들어갔으니 기본기는 있다.
욕심도 분명히 있다.
다만 꾸준히 쓰려고 하지 않는다.
엄마인 나는 그게 아쉬워서 블로그라도 해보라고 권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한결같다.
"난 글 쓰는 게 너무 힘들어.... 잘 쓰고 싶으니까 더 그래.... 그러니까 처음부터 안 하고 싶어 진단 말이야...."
그 마음 누구보다 잘 안다.
나도 그랬다.
처음엔 호기롭게 시작했던 글이 어느 순간부터 내보내기 부끄럽고 마음에 들지 않고 다른 글들과 비교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스트레스받으면서 왜 써야 하지?”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특히 블로그나 브런치에서 유려한 글을 읽고 나면 그런 소심함은 더 커진다.
그럼에도 다시 하얀 화면 앞에 앉는 이유는 글을 쓰며 내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글로 정리한 내 마음이 내 삶으로 이어지고 그 삶이 다시 글로 돌아오는 경험.
그저 글을 쓰다 보니 책을 읽어도 허투루 읽지 않았고 일상에서 소중함을 찾았고 매일 보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 그런 마음을 글로 적으면 다음날도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게 됐다.
성장한다는 건, 나아지고 있다는 건 실은 별거 아닐지도 모른다.
아이를 안으면서도 다른 할 일을 생각하지 않고 마주하는 체온에 감사하게 되는 나.
혼자 있는 시간을 외로움이기보다 세상을 넓게 보기 위한 채움으로 느끼는 것.
무거운 발걸음으로 떠밀려 갔던 출근을 웃으며 인사할 수 있는 여유로 바뀌는 변화까지.
그 모든 시간은 성장이었다는 걸 글을 쓰며 알게 되었다.
난 조금씩 자라고 있었고 배우며 내 인생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으로 성장해 가고 있었다.
특히 50이 넘어가니 난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조언만 늘어놓는 어른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보며 "저 사람은 참 괜찮다"라고 느껴지는 어른.
아이가 글을 쓰며 힘들어하는 걸 알지만 내 삶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걸 아이도 느끼길 바란다.
그래서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툭 던지듯 말한다.
"딸~ 그 좋은 솜씨 그냥 둘 거야?
휴대폰 그만하고 글 한 번 써봐~~"
애교 섞인 엄마의 말에도 아직은 묵묵부답이지만,
내가 계속 쓰다 보면,
아이도 언젠가는 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