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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부 Feb 05. 2022

지독한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을 겪고나서

나는 내향인이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어려워하고, 발표공포증이 심해 조금이라도 주목을 받으면 목소리가 염소처럼 떨린다.


중학생 시절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수학여행을 가지 않았다.

수학여행을 간 친구들을 뒤로하고 혼자 텅 빈 학교에 나와 교실 창문 사이로 비추는 따스한 햇빛을 받으며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 오히려 잔잔한 행복을 느꼈다.


고등학생 시절 가장 두려워했던 시간은 국어시간이었다.

선생님은 매주 한명씩 지목해 교실 앞으로 나와 큰 소리로 독후감을 읽도록 시켰고, 발표공포증이 심한 나는 혹여나 내 이름이 불릴까 한없이 불안에 떨어야 했다. 수업이 다가오는 며칠 전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나는 선생님을 찾아가 울면서 내 고충을 얘기하기에 이르렀다.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어서도 "어쩜 그렇게 말이 없냐", "왜 이렇게 조용하냐"는 말을 들었고, 여러 인원이 모인 자리라면 항상 기름이 물에 섞이지 못하듯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여러명의 사람보다는 깊은 속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편했고, 내 얘기를 하는 것보단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좋았다.





그리고 2020년 초, 코로나가 찾아왔다.


금방 지나갈거라 생각했던 코로나 팬데믹은 두 달이 넘고, 반 년이 넘고, 1년이 넘게 지속되었다.

계속된 재택근무와 거리두기로 사람들을 만날 일이 눈에 띄게 적어졌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가까운 친구들과도 연락이 뜸해지는 시기가 찾아왔다.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일에만 집중하던 일상에 사적인 연락은 0 가까워졌고, 그렇게  달에 걸쳐 극심한 사회적 고립을 겪었다.


사회적 고립.


고립은 나에게 있어 가장 큰 두려움이자 트라우마이다.

지독히 외로웠던 유학생 시절 숱하게 경험했던 그 익숙한 적막은 넓은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듯한 느낌을 주었고,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듯 보였다. 당장 내게 어떤 위험이 닥치거나 무슨 일이 생겨도 도와줄 사람이 없을 거란 생각에 두려움이 엄습했고, 고립된 나만의 세상에서 외로움에 허덕였다.


갈급한 마음에 다급히 친구를 불렀지만 바로 옆에 있는 친구의 존재에도 여전히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고, 공허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더 깊은 외로움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외로움에 허덕이는 마음을 표현한 아트워크 | 제목 : Sinking (침잠)



고립의 시간이 길어지며 우울의 골은 점점 더 깊어져갔고,

점차 나의 성격, 나의 인생, 그리고 내 존재까지도 부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내 성격에 어떤 문제가 있는걸까.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하고 친구가 많지 않은 이런 인생도 가치가 있는 삶일까.
가치 없는 삶이라면 차라리 죽는게 낫지 않을까.
...


마음이 한번 무너지니 너무나도 쉽게 삶의 다른 영역까지도 부정하게 되었다.

전혀 연관이 없고 멀쩡했던 부분들까지.


저 사람도 나를 싫어할거야.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하겠지.
이렇게 소심하고 내성적인데 어떻게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내 인생은 의미없어.
...


마음 속 심연에는 어떤 아이가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을까.  | 제목 : Abyss (심연)



그렇게 오랜 시간 나는 홀로 외로움과 싸웠다.


많은 눈물을 흘렸고,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닥으로 한없이 가라앉았다.

매일같이 나를 잠식하는 우울한 생각들과 싸워야했고, 매순간 내면에서 들려오는 부정적인 생각들로부터 버텨냈다.


힘든 나날을 하루하루 보내다보니 시간이 조금씩 흘러갔고, 거리두기도 점차 완화되며 상황이 바뀌는 듯 했다. 사람들과도 다시 소통하기 시작했고, 출구가 보이지 않았던 긴 터널 끝에 서서히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독했던 사회적 고립의 시기를 빠져나온 지금, 여전히 내 마음 속 깊은 곳엔 본질적인 공허함과 외로움이 있다. 언젠가 이 외로움이 완전히 없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했던 적이 있지만 이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고독은 인간의 삶과 뗄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했고, 앞으로 인류가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하듯 외로움이라는 감정도 어르고 달래며 일평생을 함께 살아가야 함을 깨달았다.


다행인 것은 긴 우울의 시기를 지나며 외로움이라는 감기에도 나름의 내성을 기를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우울이 찾아와도 이전보다는 좀 더 빠르게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마음 근육을 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느끼고 있다. 


오늘도 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과 싸우며 내면의 근육을 쌓아가고 있고,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과 감사한 순간들을 발견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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