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부 Jan 24. 2022

창작자들이 경험하는 무아지경의 시간, 몰입

문화컨텐츠 산업이 전성기를 맞이하며 창작자 또는 크리에이터 직군이 주목을 받고 있다.


본래 창작이라고 하면 예술/디자인/방송/미디어 업계의 영역으로 간주되었고,  

영화 감독이나 프로듀서, 작가, 배우, 포토그래퍼, 아티스트 등 창작 직군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들에게만 부여된 자질이라 여겨져왔다.   


하지만 최근엔 직업적 창작자들과 일반인들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훨씬 더 넓은 범주의 창작자들이 탄생했고, 자신에게 맞는 플랫폼만 있다면 이제는 누구나 자신의 창작물들을 세상에 손쉽게 선보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사실 창작이라는 일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하루를 돌아보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일기에 기록하는 일,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집안의 분위기를 바꿔보는 일, 또는 아이를 낳아 새 생명을 양육하는 일도 모두 고귀한 창작의 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인생을 살아가며 한번쯤 창작이라는 활동을 경험하고, 이런 창의적 활동은 우리의 일상 생활 곳곳에 녹아 있다.




'신 또는 창조주'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 Creator(크리에이터)는 구글 사전에서 A person who brings something into life/existence 으로 풀이되어 있다.


'무언가를 창조해 세상에 선보이는 사람'으로 해석해볼 수 있는데, 아이를 잉태하다, 창조하다의 뜻을 가진 영어표현 bring (something) into life/existence을 사용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창작이라는 작업은 인간 고유의 감성과 창의적 지능을 사용하여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숭고한 작업이다. 인간의 철학과 가치, 정수가 들어간 창작물은 로봇이나 AI가 구현해내지 못하며 대체가 불가능하다.




창작을 하는 이들은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이다.

글쓰기가 너무 좋아서, 음악이 너무 좋아서, 그림이 너무 좋아서, 또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영감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사람들이다.  


다양한 형태로 자신만의 숨결과 땀방울이 들어간 창작물을 세상에 선보여 본 사람들이라면 창작 과정에 오롯이 ‘심취'해 본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가슴속 몽글몽글한 생각과 감정을 선율로, 문장으로, 색감으로 표현하며 희열을 느끼고, 머릿속에서 부유하던 아이디어에 살과 피를 덧붙여 실체를 만들어갈 때 짜릿함을 느낀다. 이 과정 속에서 점차 자기 자신을 잊어가며 오롯이 그 순간 안에 존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창작자들이 경험하는 '몰입'이다.

집중을 하는지도 모르는 사이 창작의 세계로 빠져들며 무아지경의 세계를 탐험하는, 그야말로 황홀한 시간이다. 이런 몰입의 상태에 들어가게 되면 경험하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다.


     -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일어나고 가슴이 뜨거워진다. 온 우주 만물이 영감의 소재가 된다.

     - 그동안 흩어져있던 영감의 조각들이 하나의 큰 아이디어로 관통한다.

     - 무서운 집중력이 발휘되고, 생산력이 극대화된다. 그동안 진척이 없던 작업들이 순식간에 완성된다.

     -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이 상당히 지나있다.

     - 시간이 멈춘 듯 세상이 고요해지고 무의식의 상태로 들어선다. 마치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특이점에 도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디즈니 영화 <소울>에서도 이런 '몰입'의 상태를 조명했는데, 투엔티투(22)는 이곳을 '영혼과 육체 사이의 공간'으로 소개한다.


디즈니 코리아 유튜브 캡쳐


몰입의 상태를 경험해본 세계 뮤지션들은 'the zone(몰입의 순간)'을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lupBvqlC1I [소울] 'In the zone' 영상


"I'm a firm believer of getting lost in the process. That's when real creativity starts."
 창작 과정에서 발휘되는 몰입의 힘을 믿어요. 그때야말로 진짜 창의력이 발휘되는 순간이에요.
 -- 미국 뮤지션, 퀘스트러브

"You forget everything else. It's just the moment."
 다른 건 모두 잊어버리게 돼요. 그냥 그 순간 안에 존재하죠.        
 -- 프랑스 보컬리스트, 아비 베르나돗

"It's spiritual. It takes you to a different place."
 영적인 순간이에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돼요.
 -- 미국 아티스트, 다비드 딕스

"계산하고 생각하지 않아도 무언가가 막 이루어지는 순간. 그런 일들은 가끔 분명 일어나지만 그게 가끔 일어나서 신기한 창작의 순간인 것 같아요."  
 -- 한국 가수, 이적




몰입의 상태로 들어가는 방법은 각자 다양하다.


작업실에서 혼자 오랜 시간 골몰하다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갓 내린 커피 향이 잠들어 있는 두뇌를 자극할 때,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신작을 보고 영감을 받았을 때,

우연히 읽은 문장에서 마음이 동요됐을 때,

또는 취향에 맞는 음악을 듣거나 공원을 산책할 때, 등


각자 자신만의 '영감의 존'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엔 늦은 밤에서 꼭두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 세상이 잠들고 주변 모든 것이 고요해지기 시작할 때 몰입의 시간을 경험한다.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이 시간에는 마치 세상에 나와 창작물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현실 속에서 받았던 제약과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창작 세계에선 나의 자아와 세계관을 자유롭게 표출한다.


몰입을 경험하며 만든 그래픽 아트 작품. 무한한 상상이 가능한 창작의 세계에서 불가능한 일은 없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창작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다.

원하는 순간에 필요한 영감이 딱 떠오르면 좋으련만 창작은 필연코 길고 긴 인내와 고통의 시간을 수반한다. 이 때문에 많은 창작자들이 창작의 고통을 호소하는데 영감이 오지 않는다며 오랜 휴식기를 가지는 작가나 배우들도 있고, 심한 경우 아예 활동을 접고 창작의 세계를 떠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길고 긴 인내 끝에 맞이하는 몰입의 순간은 지난 모든 괴로움을 상쇄할만큼 짜릿하며 달콤하다. 잠잠하던 99'C 미완의 작품들이 물의 끓는점처럼 마지막 1'C를 더해 눈 깜짝할 사이 완성되는 마법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 찰나의 순간이 주는 달콤함, 그 황홀함을 알기에 우리는 지금도 창작의 고통을 지속하는게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오징어게임과 한류에 가려진 한국의 부끄러운 민낯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