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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May 20. 2024

해외보다는 전라도지!!


엄마도 머나먼 길을 걸어왔고

엄마 인생에서 자식한테 쏟은 마음이 거의 다니까

마음이 저렸겠지.

자식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래도 엄마의 남은 인생은 이제 엄마 자신한테 써~~

하고 싶은 거 하고, 먹고 싶은 거 먹고,

가고 싶은 데 다 가고~~

눈치 보지 말고 그동안 논밭에 뿌린 씨앗(돈)

다 엄마 거니까 편하게 쓰고 그래.


전라도에 가서 맛있는 음식 50만 원어치 사줄게~^^

마음껏 먹어~!!




예전 어느 초봄날, 아빠 엄마 모시고 갔던 영종도 해물칼국수 집에서 엄마는 여태껏 살면서 해외여행을 한 번도 안 가봤다는 얘기를 꺼냈다. (예전 글에 쓰긴 했지만). 해외 어느 나라라도 가보고 싶은데, 더 늙기 전에 가보고 싶은데, 언제 가볼 수 있을까 하는 거였다. 점점 다리도 무릎도 아파지고 허리는 고질병이고 이제 고관절도 걱정이 되는 나인데, 언제 한번 가보나... 엄마의 하소연이 귀딱지에 앉았다. 다른 집들은 다들 딸이 여행을 데리고 다니던데, 우리딸은 바빠서 여행 갈 시간도 없으니... 바쁜 딸 둔 엄마는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국내여행이라도 자주 다녔으면 좋겠다고 했다.


바쁘게 사는 게 나름 즐거운 딸인 나는 바쁜 게 송구스럽게 느껴졌다. 물론 엄마는 그럴 의사가 없었겠지만, 듣는 딸은 다른 딸들처럼 엄마 모시고 여기저기 구경도 안 시켜드리고 자기 살 궁리만 하는 얌통쟁이가 된 것만 같아 부끄러움에 어깨가 괜시리 비좁아지고 가슴께도 답답해졌다. 올해는 엄마가 가고 싶어하는 곳으로 꼭 여행시켜드려야지.


그러고서 시간이 흘렀다. 엄마가 어느 날 전화로 말했다. 엄마의 일터에서 동료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다들 해외여행을 많이들 다녔는데 엄마만 가본 곳이 없어 민망했다고, 그래서 엄마도 일본에 다녀왔노라고 거짓말을 했다고 했다. 민망함을 덮기 위해 거짓말씩이나 해야 하나, 이제는 해외여행을 안 가 본 게 흉이 되는 세상인가 싶었다.


아빠는 아예 여행을 싫어하시지만, 엄마도 어디 멀리 가는 걸 그다지 안 좋아하시는데, 늘 어디를 가자고 약속을 해놓으면 가기 직전에 몸이 힘들다며 변덕을 부리는 통에 수포가 된 적이 많았었다. 그래서 품이 많이 들기도 하고 신경 쓸 것도 많은 해외여행은 계획하기가 어려웠던 것인데, 정황상 엄마가 간절히 가고 싶은 거라면 그래, 이참에 가자고 했다.


엄마가 진짜 가보고 싶은 곳은 어디인지 물었다. 엄마는 딱히 가고 싶은 나라는 없다고 했다. 엄마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이모들도 동남아 나라들은 여러 곳 다녀온 듯한데, 많이 덥겠지만 그런 이색적인 나라를 가보겠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고모가 이번에 베트남에 다녀왔는데 일정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며 비행기도 오래 타야 하고 허리가 아파서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럼 일본이나 중국, 대만은 어떠냐고 물었다. 엄마는 다른 분들과 얘기를 해보고 다시 얘기해 주겠다고 했다.


또 시간이 흘렀다. 엄마가 연락이 없어 내가 어제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나오는 길에 전화를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끝도 없이 나왔다. 엄마의 하고픈 얘기들을 모조리 들어주고 가고 싶은 여행지는 정했냐고 물었다. 엄마는 해외는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냥 우리나라 안 가본 곳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충청도 서산에서 태어나 10대까지 그곳에서 살다가 10대 후반에 구미 공장에 가서 일하고 경기도 어딘가로 옮겨갔다가 인천으로 시집을 갔다. 안 가본 곳은 부산과 전라도인데 전부터 부산 해운대 구경을 하고 싶다고 해서 작년에도 예약을 했다가 엄마의 변덕으로 취소를 한 이력이 있었다. 그럼 이번엔 꼭 부산에 가겠냐고 물었다. 엄마는 부산보다 전라도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부산보다는 전라도 음식이 일품이라는 이유였다. 엄마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는 거라고 했다. 야구 KIA 팬인 큰아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지역이 전라도인지라 우리 아들들도 데려가는 것은 어떤지 물었다. 엄마는 그냥 우리 둘이 가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결론이 나왔다. 이번 여름휴가에는 전라도에 엄마랑 단둘이 여행 가는 것으로. 엄마와의 단둘 여행은 처음이다. 성향이 다른 엄마와 내가 2박 3일을 즐겁게 보내게 될지 여부는 알 수가 없다. 즐거운 여행이 되려면 최대한 엄마한테 내가 맞춰주어야 할 것이다. 여행은 최대한 심플하게! 맛있는 거 먹기! 그리고 편안하고 좋은 숙소에서 잠자기. 이 두 가지면 충분하다.




아는 분이 공유해 주신 동영상에 눈물이 나서 엄마는 오빠한테 그 동영상을 보냈다고 했다. 동영상을 본 오빠는 언니랑 같이 엄마를 모시고 영종도에 가서 엄마가 좋아하는 칼국수를 사드렸고, 그렇게 어제 엄마는 잠깐의 나들이로 마음이 좋았다. 1시간 반 동안의 통화를 마치고 집에 들어왔는데, 엄마한테 톡이 왔다. 엄마의 톡에 답을 달았다. 엄마는 내 답에 다시 답을 달았다. 엄마도 나도 행복했다. 전라도 여행이 직전에 취소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제 나는 비행기 티켓과 포근한 침대가 있는 숙소가 있는지 검색할 참이다.   


엄마와의 톡~^^


엄마가 공유해 주신 동영상이에요~^^ 뭉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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