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집의 소파에 내가 앉아 있었다. 집은 낯설 만큼 넓었고, 사람들은 넘쳐났다. 크리스마스 파티라도 열린 것처럼 모두들 쉴 새 없이 오가며 웃고 떠들었다. 유리잔이 부딪히는 소리, 여기저기서 터지는 웃음, 말들의 잔향이 공기처럼 떠다녔다. 나는 그 틈에 섞여 있었지만, 혼자였다. 그렇다고 외롭지는 않았다. 이런 분위기, 즐거워하는 사람들, 서로 처음 만난 듯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장면이 좋았다. 나는 혼자 앉아 있었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낯익은 얼굴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한때는 꽤 친했지만 지금은 연락이 끊긴, 나와 동갑인 지인이었다. 원래 말이 많고, 사람들을 모으고, 무언가를 추진하는 걸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그곳에서도 여전히 중심에 서 있었다. 사람들을 이끌며 분주히 움직이다가, 그녀와 내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새우눈을 하며 환하게 웃더니 안쪽 방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그녀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잠시 뒤 또 다른 지인이 쪼르르 들어와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했다. 그녀는 빠르고 급한 목소리로 오늘 행사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말을 이어가는 호흡과 분위기를 보며, 오늘 이 파티를 주선한 사람이 바로 그녀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내게도 참여를 권했다. 나는 괜찮다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녀는 자기 키만 한 바퀴 달린 도구를 잡고 서 있었다. 그 도구의 가장 아랫부분에는 큰북과 작은북의 중간쯤 되는 드럼 하나가 세로로 달려 있었다. 그녀는 능숙한 몸짓으로 북을 쳤다. "둥두르릉둥, 둥두르릉둥. 두리두리둥둥, 두리두리둥둥"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쟤가 언제 드럼을 배웠지, 속으로 감탄하며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는 바퀴 달린 도구를 밀며 안방을 빠져나갔고, 잠시 고요해졌던 방 안으로 다시 거실의 북적거림이 밀려 들어왔다.
그 뒤로 어떻게 이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그곳에서 나는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 전해준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스스로 알게 된 것 같기도 했다.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 앞에서, 나는 이상하리만큼 담담했다. 놀라지도, 소리 내 울지도 않았다.
밖으로 나와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내 차 조수석에 앉았고, 나는 운전대를 잡았다. 우리는 계속 달렸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운전을 했다. 복잡하고 거친 길들을 뚫고 달리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는 유일한 휴식이자 짧은 여행이었다.
장면은 또 바뀌어 있었다. 큰아들이 처음으로 대학교에 가는 날이었다. 전에 한 번 가봤던 그 대학, 그 강의실에서 첫 수업이 열릴 참이었다. 강의실에는 백 명쯤 되는 학생들이 이미 자리를 채우고 있었고, 턱에 희끗한 수염이 매력적인, 신뢰감 가는 인상의 교수가 단상에 서 있었다. 교수 옆에는 조교가 학생들을 돕고 있었다. 아직 수업은 시작되지 않았다. 아들은 앞번호라 왼쪽 어딘가에 앉아 있을 거라 짐작했다. 예상대로, 가장 왼쪽 줄 두 번째 자리에 아들이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자리까지 가서 아들에게 첫 수업을 축하한다고 속삭였다. 계단식 강의실을 올라 넓은 뒷문으로 나가면서, 예닐곱 명의 다른 학부모들과 마주쳤다.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자식이라는 세계를 끔찍이도 사랑하며 지켜내고 있구나, 묘한 위안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와 설거지를 했다. 물소리 사이로 문득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그제야 또렷해졌다.
아, 엄마가 돌아가셨다니. 우리 엄마가.
이제 엄마를 다시는 볼 수 없는 건가. 엄마 얼굴을 떠올렸다. 백발이 된 엄마였다. 치매에 걸릴까 봐 걱정하던 엄마. 이제는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엄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현실 같지 않아, 꿈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아빠가 떠올랐다. 혼자 남아 있을 아빠는 어떨까. 아빠를 위해 드라이브를 시켜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장거리 운전은 남편이 더 잘하지만, 남편이 아빠를 어려워할 걸 생각하면 그냥 내가 운전하는 게 낫겠다고.
꿈은 그렇게 끝났다.
이 꿈은 단순히 뒤섞인 장면들이 아니라, '내 삶의 한 단락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질서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심리적 여정으로 읽힙니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지인이 등장해 드럼을 치며 행사를 알리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드럼 리듬 : 꿈속의 북소리는 심장 박동이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경종입니다. 그녀가 치는 숙련된 리듬은 당신의 무의식에 "이제 새로운 국면이 시작될 거야"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가부좌를 틀고 앉음 : 소란스러운 파티 중에도 중심을 잡고 앉아 있는 당신의 모습은, 주변의 변화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내면을 지키려는 단단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꿈에서 부모님의 죽음은 실제 불행을 예고하기보다, '정신적인 독립'이나 '한 시대의 종언'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백발과 치매 걱정 : 백발은 지혜와 세월을 상징합니다. '이제 걱정이 없어진 걸까'라는 생각은 어머니에 대한 깊은 연민과 동시에, 이제는 당신이 그 '돌봄의 의무'로부터 놓여나 홀로 서야 함을 암시합니다.
뒤늦은 깨달음: 설거지라는 일상적인 행위 중에 슬픔이 찾아온 것은, 상실의 아픔이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일상 속에서 문득문득 확인될 것임을 보여줍니다.
남편과 함께 어려운 길을 뚫고 운전하는 장면은 현재 당신이 인생의 핸들을 직접 잡고 역경을 헤쳐 나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들의 대학 입학 : 아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 앉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위안을 얻는 장면은 부모로서의 큰 숙제를 하나 마쳤다는 안도감입니다.
교수의 얼굴 : 세련되고 믿음직한 교수의 모습은 당신이 세상(혹은 아들의 미래)을 바라보는 시선이 기본적으로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꿈의 마지막에서 아버지를 위해 직접 운전대를 잡겠다고 다짐하는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내가 운전하는 게 낫겠다 : 이는 남편에게 의지하기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수고로움을 감수하겠다는 주체적인 사랑의 발현입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슬픔을 아버지를 돌보는 에너지로 승화시키려는 건강한 심리가 투영되어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 꿈은 '성숙한 어른으로서의 작별과 시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로 대변되는 '나를 돌봐주던 세대'와 작별하고, 대학생이 된 아들로 대변되는 '내가 돌보던 세대'를 세상으로 내보내며, 이제는 당신이 가족의 중심이 되어 그들을 이끌고(드라이브) 보듬어야 하는 시기에 와 있음을 말해주고 있네요.
꿈에서 깨어났을 때 마음이 먹먹하셨겠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이제 어려운 길도 직접 운전해서 갈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무의식의 자신감을 확인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꿈을 꾸다 깨서 의식이 차츰 돌아오면, 나는 직전에 꾸었던 꿈을 기억하려고 애쓴다. 눈을 그대로 감고 비디오를 되감는 것처럼, 꾸었던 꿈을 되돌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꿈이 기억 너머로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꿈을 깰 때 꿈의 끝자락을 붙들어야만 이렇게 생생한 기록을 남길 수 있다. 나는 이런 꿈의 감각에 매료되었다.
몇 년 전부터 꿈이 너무 생생하고 상징성이 강하다고 느끼면 일기장에 그걸 기록했다. 그리고 그게 무슨 의미였을지 나름대로 분석해 보았다. 전문성은 없지만, 그냥 내 방식대로 해석하는 게 좋았다. 꿈은 내 안의 무의식을 보여주는 장치고, 생각지 못했던 내 마음의 조각이니까.
몇 달 전부터는 챗 지피티 창에 내 꿈을 기록했다. 그러면 그 녀석이 꿈의 상징적 의미를 분석해 주었다. 어느 정도 신뢰가 갔다. 내 마음을 읽어주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분석된 내 꿈을 이해하고 나면 더 개운했다. 그렇게 내 꿈은 잊히지 않고 기록으로 쌓여갔다. 그러다 최근 제미나이가 좀 더 정밀한 분석을 내놓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은 꿈을 대입했다. 제미나이의 분석이 더 나았다. 브런치에 제미나이의 해석을 싣는 것이 약간은 마음에 걸리지만, 꿈 분석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지금으로선 나의 무의식에 닿을 수 있는 괜찮은 방법이라 여긴다.
무의식과 연결된 엄마
엄마가 며칠 전 열 돈 짜리 금팔찌를 잃어버렸다고 전화를 했다. 어느 모임에 금팔찌를 하고 나갔는데 집에 오니 손목에서 사라져 있었다고 말이다. 집을 아무리 뒤져도 없고 옷주머니 안에도 없었다고. 엄마는 요즘 깜박거리는 당신의 기억력 때문에, 특히 이렇게 물건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오면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해진다. 물론 요즘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처음에 구입했던 금가격보다 몇 배가 오른 것도 잃어버린 금붙이에 대한 아까운 마음을 증폭시키긴 했다. 유일한 금팔찌라 그만큼 애지중지했던 것인데, 몹쓸 기억력이 그걸 못 찾으니 더 애타는 마음이 든 것이다. 나는 엄마한테 속상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물건에 집착하는 마음은 버리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계속 찾고 또 찾지도 말고, 그냥 기부했다고 치고 이번 일은 잊기로 하자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의 불안은 더 큰 불안을 낳고 자신을 자책하는 마음으로 이어져 마음도 몸도 병들 거라고. 엄마는 이미 몸이 너무 아파서 밥도 못 먹고 있는 지경에 왔다고 했다. 에고. 엄마, 금팔찌가 엄마의 건강보다 중하지는 않아. 엄마 몸을 더 애지중지하길 바라. 딱한 우리 엄마. 엄마에게 이런 얘길 해주었던 것과 엄마의 걱정이 꿈에서 엄마의 백발로 탄생했다. 엄마의 걱정이 새하얀 백발이 되어 있었다.
새 출발을 앞둔 큰아들
큰아들은 어제 대학교 합격 소식을 받았다. 아직 원하는 대학에선 날아들지 않은 소식이지만, 어제 첫 합격 소식을 받고 우리 가족은 어젯밤 '밤새 먹소'에 가서 소고기를 먹었다. 이제 아들은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마음속 불안과 설렘 사이를 오가고 있는 중이다. 남편과 나는 그런 아들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다. 그저께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해서 필기도 합격하고 왔고,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았던 애송이가 자기 앞가림을 하나하나 해나가는 모습이 대견하기만 하다. 불안은 언제나 늘 함께 하는 것임을 알기에, 불안을 잘 다스리고 호기심과 동경에 더 큰 비중을 두기를. 그런 마음이 꿈에 나타났다. 19년의 세월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아들의 인생에 때론 참견하고 때론 걱정도 하고 때론 격려도 했던 날들이 얼마던가. 이제는 아이가 스스로 세상을 향해 걸어가야 할 때가 되었다. 아들은 언제나 불안할 때면 나에게 호소한다. 엄마와 대화하면서 용기도 얻고 안정도 얻는다. 꿈속에서 아들은 자기의 자리를 잘 찾아 앉아 있었고 불안해 보이지 않았다. 아들의 덤덤한 모습에 나도 안도했다. 아들이 불안해하지 않으니 나도 그랬다.
나의 새 출발
'경쾌한 드럼 소리'와 '엄마의 죽음'은 나의 새로운 국면을 상징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이번 겨울방학을 시점으로 내 인생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동안의 침체가 끝이 나고 교습소에는 신입생들이 들어왔다. 1월부터 진행할 특강 수업에 대한 문의도 여럿 들어왔고, 새로운 반이 구성되었다. 재원생의 학부모님들도 나에게 신뢰감을 표현해 주셨다. 대학원 다니는 동안 축소했던 수업에 다시 봇물이 터질 것 같아 설렌다. 얼마간 힘들었지만 이제는 포문을 연다. 나의 교실은 열려 있다. 내 마음도 열려 있다.
1월부터는 논문도 쓰기 시작해야 한다. 주제와 연구 방법은 정했다. 이제는 더 많은 논문을 읽고 정리하고 그런 후에 논문의 서론은 써야 한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래도 감사하다.
내 인생의 드라이브
운전대는 내가 잡았다. 꿈속에서 나는 자주 운전을 한다. 낑낑거리며 오르막도 오른다. 하지만 오늘 꿈에선 오르막이 아니었다. 다만 복잡하고 어려운 길이었다. 나의 1월부턴 복잡하고 어려운 길이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드라이브를 즐기는 사람이고, 복잡하고 힘들어도 그 드라이브는 여행이 되고 휴식과 안정이 될 것이다. 조수석에는 남편도 앉히고, 아빠도 앉히고, 꿈에서 돌아가신 엄마도 앉힐 것이다. 나는 돌봄의 습관을 깨기로 마음먹긴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멀리한다는 뜻은 아니다. 먼저 나를 살피고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지.
이제 내 인생의 달콤한 드라이브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