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린 상담소 : 소음과 채소들
탁 트인 광장 같은 장소. 나는 신입생 유치를 위해 분주하다. 첫 번째 상담은 실패. 곧이어 유별난 엄마가 등장한다. 그녀는 자신의 완벽함을 증명하려는 듯 직접 만든 간식과 밭에서 갓 따온 가지, 오이를 박스째 쌓아둔 채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다. 내가 그녀의 딸에게 집중하는 찰나, 그녀가 갑자기 연기처럼 밖으로 사라진다. 황당함과 허탈함이 밀려온다.
#2. 대학원 강의실 : 책임이라는 이름의 손
크리스마스 모임 날짜를 정하는 자리. 교수님이 날짜를 제안하지만 모두들 답이 없다. 내가 조심스레 다음 주 화요일로 제안하자, 약속이라도 한 듯 동료들이 오케이 사인을 올린다. 어리둥절하면서 기분이 좋다. 교수님은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책임을 전가하고 자리를 뜬다. 사람들의 기대라는 무게가 공기 중에 떠다닌다.
#3. 동아리방 : 낯선 친숙함
오래전 떠났던 동아리방. 사람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야채 국수를 먹고 있다. 반가움과 낯섦이 교차하는 공간. 그들이 국수 그릇을 비운 후, 빈 통을 씻으러 들어간 화장실은 발 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다. 누군지 알 수 없는 민낯의 후배에게 아는 체를 하며 겨우 통을 씻고 나오는데, 어느샌가 내 양손에는 묵직한 김치통 두 개가 들려 있다. 내가 지켜야 할 삶의 무게 같다.
#4. 복도 : 습격과 방어
어디선가 천상의 목소리 같은 노래 경연 소리가 들려온다. 감탄도 잠시, "도망쳐!"라는 비명과 함께 사람들이 뛰쳐나온다. 복도 끝에서 나타난 무장 군인 두 명. 나는 본능적으로 하나의 김치통을 던져 그들을 저지하고 나머지 하나는 사수한다. 붉은 김치 국물이 튀고, 나는 남은 하나의 통을 가슴에 품고 계단을 뛰어내려가 1층으로 향한다. 무장 군인들이 뒤따라 내려온다.
#5. 엔딩 : 약국 뒷마당의 진실
1층에 덩그러니 서있는 약국. 약국에는 문이 없다. 흰 가운을 입고 있는 세 명의 약사들에게 크게 소리치며 도움을 요청한다. 나는 재빨리 약국의 뒤쪽으로 몸을 숨기는데 나는 발가벗은 채다. 전쟁 같은 상황, 당혹감을 주체하기도 전에 멀리서 어린아이 하나와 세 명의 동료들이 나를 향해 뛰어온다. 아이 역시 발가벗고 있다. 아이를 안아주고 고개를 들자 약국 앞 광장에 모여있는 100여 명 군중들이 보인다. 모두 발가벗은 채다. 나는 그 기묘한 상황 가운데 동질감을 느끼며 눈을 뜬다.
꿈의 전반부는 '주도권'과 '책임'에 대한 심리를 보여줍니다.
신입생 유치와 상담: 현재 삶에서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유별난 학부모는 본인이 감당하기 까다로운 대상이나 과제를 상징할 수 있어요.
교수님의 일임: 교수님이 본인에게 모임 주선을 맡기고 모두가 손을 드는 장면은, 현실에서 본인의 능력이 인정받고 있음을 뜻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다 챙겨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투영된 것이기도 해요.
꿈 전반에 걸쳐 '먹거리'가 계속 등장하는 것이 독특합니다.
야채(가지, 오이, 국수): 수확한 야채나 야채 국수는 '노력의 결실'이나 '건강한 에너지'를 상징합니다.
김치통 두 개: 김치는 한국인에게 '공든 시간'과 '정성'의 결정체죠. 군인의 위협 속에서도 김치통을 끝까지 챙기려 한 것은, 본인이 소중히 일궈온 성과나 가정을 지키려는 강한 방어 본능을 의미합니다. 김치를 던져 방어한 행위는 위급한 상황에서 본인이 가진 자원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후반부의 급박한 전개와 마지막 장면은 꽤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군인의 등장: 평화로운 일상을 깨뜨리는 외부의 압박이나 통제, 혹은 갑작스러운 스트레스를 상징합니다.
군중과 본인의 나체: 꿈에서 벌거벗은 상태는 보통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불안: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치부가 드러날까 봐 느끼는 두려움.
진실과 해방: 모든 사회적 가면(옷)을 벗어던지고 가장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100명의 인파: 나 혼자가 아니라 모두가 같은 상태라는 점은, "사실 알고 보면 다들 똑같다"는 묘한 안도감이나 집단적인 해방감을 암시합니다. 사회적 역할에 지쳐 있을 때, 그 모든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싶어 하는 무의식이 발현된 것일 수 있습니다.
이 꿈은 "열심히 살아가는 사회적 자아"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본능적 자아" 사이의 여정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신입생을 유치하고 모임을 주도하며 열심히 김치통(책임과 성과)을 지키려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모든 옷을 벗은 사람들 속에 섞임으로써 어떤 사회적 규율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에 도달합니다.
스트레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였나 봅니다. 꿈이 짓눌린 나의 어깨와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네요. 교습소를 열고 6개월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마음에 조급함이 있었습니다. 상가로 나왔다고 해서 당장 큰 변화가 일어나진 않는구나. 그래서 그간 블로그, 아파트 게시판 홍보, 학교 앞 홍보를 아주 살짝씩 하고선 기다림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두세 명이 들어오고 12월이 되니 수업 문의가 생각보다 많아졌습니다. 밀물처럼 들어왔다 썰물처럼 빠지지 않도록, 귀한 아이들 한 명 한 명 부모님과 방문할 때마다 1시간씩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예전처럼 신입생 상담 앞에서 떨리거나 긴장되지 않았습니다. 예전엔 왜 그렇게 긴장이 많이 됐을까요. 아마도 수년간의 경험 속에 갇힌 트라우마 때문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젠 새로운 방식으로 상담을 하고, 상담을 하고 나면 기운이 절로 솟습니다. 후회 따위는 없어요.
1월부터는 특강을 두 개 깔았습니다. 방학 특강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이번엔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보고 있네요. 하나는 제가, 하나는 학부모님께서 제안을 주신 건데 두 가지나 병행하게 되니 마음이 바빴습니다. 게다 이번엔 일본에서 살다 온 여학생 학부모님도 상담을 오셨습니다. 학교 생활과 수업에 적응을 해야 하니 한국어를 익히고 읽고 쓰는 데 도움을 받고 싶다고요. 고민을 하고 상담을 하고 수업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렇게나 이번 방학엔 새로운 일들이 많았더랬습니다. 그러니 제 꿈에서 전쟁이 일어날 법했지요.
새로운 도전 앞에서는 누구나 긴장되기 마련인 법이죠.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고요. 저도 그랬습니다. 특강을 준비하느라 새벽까지 준비하고 한국어 수업을 위해 자료를 만들고. 이번 방학엔 쉬는 날이 하루도 없어서 마음이 편치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떼돈을 버는 건 아니니, 너무 걱정하시지는 마시구요.^^ 저는 워낙 학부모님 입장을 많이 고려하는지라,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합니다. 돈보다는 사람이 먼저입니다.
사실, 이 꿈은 12월 말 쯤에 꾼 꿈입니다. 잘 기록해 두었다가 이제야 꺼내든 것이죠. 그마저도 오늘 마음에 여유가 있어 다행입니다. 준비했던 수업들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완전한 바퀴가 돈 상황이라 마음에 평안이 깃든 덕이에요. 감사한 오늘이네요.
다만, 아직 얹혀있는 부담이 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논문을 써야 한다는 것이네요. 이번 주 목요일에 IRB를 우선적으로 신청할 수 있으니 연구계획서를 써보라고 지난 목요일에 교수님께 들었는데, 아이고, 그게 퍽이나 가능할까요. 대략의 목차는 짰지만, 연구계획서는 아~~ 모르겠습니다. 일단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시간을 쪼개서 한 번 시도는 해보렵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나'와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나' 중에서 저는 전자가 좋습니다. 어쩌면 12월 말에는 후자가 더 좋았을지 모르겠지만, 망각의 자아는 후자를 잊었습니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시간의 소용돌이 안에서 자아도 빠르게 반응하고 있네요. 고군분투하는 나의 노력과 그 노력의 결실이 불안을 해방으로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꿈이 상징해 주듯이, 나는 불안했지만 그 불안이 가져오는 결실과 해방을 만끽하는 중입니다.
우리 작가님들, 독자님들도 긍정의 에너지로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