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아트 뮤지엄
� 상상 속의 고귀함이 아닌 눈에 보이는 평범함을,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빛의 결대로, 생동감 있는 붓터치로 표현하기 시작한 북유럽풍 인상주의와 상징주의 작품들
� 스웨덴-대한민국 수교 65주년 기념 특별 전시, 북유럽의 19세기에서 20세기로의 전환기
� 전시 : 2024년 3월 21일 ~ 8월 25일 @ 마이아트 뮤지엄
� 영상
스웨덴 국립 미술관 컬렉션 '새벽부터 황혼까지' 해설 영상 (출처 : 미술왕 정우철)
�️전시
빛 : 영국 테이트 미술관 특별전
� 도서
<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묵
<산책자> 로베르트 발저
� 음악
Marble Machine 2000 연주_Wintergatan
Take On Me_A-ha
A Beautiful Life_크리스토퍼 (넷플릭스 '뷰티풀 라이프' OST)
말을 다르게 그리기 시작한다는 것은
세계를 다르게 보기 시작한다는 뜻이 되니까요.
<내 이름은 빨강 2> 오르한 파묵
그림자 하나 없는 신화와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을 그려내던 북유럽 화가들이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림을 배우러, 그림을 그리러.
스웨덴 왕립아카데미 출신의 화가들이 새로운 미술을 배우기 위해 자신의 마을, 나라를 등지고 프랑스로 떠난 것이다. 우리나라 궁중 화원인 단원 김홍도나 신윤복이 다른 화풍의 그림을 배우기 위해 고국을 떠났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빛의 결대로, 생동감있는 붓터치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상상 속의 고귀함이 아닌 눈에 보이는 평범함을,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그린 그림들은 북유럽만의 인상주의 화풍을 만들기에 이르렀고, 이는 북유럽 문화권 사람들의 기질과 관습을 알고 나면 얼마나 놀랍고 과감한 시도인지 알게 된다.
스웨덴국립미술관은 스톡홀름 중심가에 위치한 스웨덴 최대 규모의 예술, 디자인 미술관이다. 1792년 구스타프 3세의 개인 소장품을 전시하기 우해 왕립 미술관이라는 명칭으로 설립되었으며, 1866년에 스웨덴 국립 미술관으로 변경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스웨덴 국립 미술관 컬렉션
스칸디나비아 속담에 'There's no such thing as bad weather only bad clothing 나쁜 날씨란 없다, 부적합한 옷이 있을 뿐'이라는 말이 있다. (여담이지만 드라마 도깨비의 '날이 좋아서, 좋지 않아서, 적당해서'가 떠오른다.) 그만큼 북유럽은 긴 겨울과 궂은 날씨 탓에 실내 생활이 주를 이루는 라이프 스타일을 갖고 있고, 실내 인테리어가 발달했다. 한동안 북유럽 관련 전시는 건축과 연계한 의자나 가구, 조명 등 유려한 곡선을 살린 실내 디자인 전시회가 유행처럼 이루어졌다. 스티브 잡스가 사용해 유명해진 의자 제품을 포함해 눈을 즐겁게 하는 다양한 디자인 제품들을 매장이 아닌 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었고, 북유럽 출신의 유명 디자이너나 북유럽 브랜드의 의자, 소파, 조명은 가격이 고가여도 잘 팔려나갔다.
북유럽은 음악에서 탑라인(멜로디 라인)으로도 유명한데, 정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고립된 상태로 음악하기 좋은 환경이어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ABBA(스웨덴)나 A-ha(노르웨이) 등 전설적인 뮤지션이 알려져 있고, 최근에는 청하와 듀엣을 했던 크리스토퍼(덴마크)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그리고 여기 스웨덴 출신의 천재 뮤지션이 또 있다. Wintergatan (빈터가탄, 은하수 뜻)이라는 밴드의 마틴 몰린은 Marble Machine 2000을 제작해 독창적인 연주를 펼친다. 악기인지 기계인지 모를 창의성의 정체성이랄까.
Wintergatan - Marble Machine 2000 연주
Kinfolk 매거진 열풍이 불더니 휘게(Hygge, 아늑한), 라곰(Lagom, good enough의 의미)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는 북유럽 라이프 스타일이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의 붐과 함께 인기를 끌기도 한다. '정'이라는 암묵적인 관계에 얽매이는 한국 정서와 달리 개인의 공간과 시간, 삶을 중시하고 타인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문화가 공감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짤로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버스 정류장에 줄을 설 때도 북유럽 사람들은 앞뒤 적어도 1m 간격을 두고 서 있을 정도니, 서로의 거리를 지키는 것에 철저하다. 우리가 보기엔 그 거리가 좀 과한 면도 없잖아 있긴 하지만.
토르 같은 북유럽 신화나 괴물 요정 트롤 등의 이야기가 발달한 것도 아이들이 바깥에 나가지 않고 실내에서 안전하게 지내도록 무서운 이야기를 꾸며낸 것이라고 들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혼자이거나 가족과 집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외부와의 교류를 제한하니 저절로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나타나기 마련이고, 가족 중심이 된다. 외부에 나간다는 것은 큰 모험이니, 무언가 배우기 위해 해외에 나간다는 것은 엄두를 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가족이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을수록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가사일은 더욱 많았을 것이고, 사회 생활이나 예술활동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배경을 알고서 스웨덴 국립 미술관 컬렉션 전시를 보면, 북유럽 디자인이 아닌 순수 회화 전시가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 단란한 가정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고, 혁신의 의미와 상징성을 갖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여성 화가들의 용기와 활약에도 주목하게 된다. 스웨덴 국립 미술관 작품들의 경우 한국에는 처음 선보이는 전시라고 하는데, 마침 도슨트 분이 전시 관련 영상을 올려주셔서 전시 관람 전 미리 보고 가거나, 전시 관람을 하지 않더라도 주요 작품들을 볼 수 있어 도움이 될 듯 하다.
얼리버드로 예매를 해놓은 전시여서 틈이 날 때 잠시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긴 시간 머물렀던 전시였다. 도슨트 해설 진행 시간에 맞춰 가지 않아 중간 부분부터 듣기 시작했는데, 일단 놀랐던 것은 마치 예전에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보려고 발 뒤꿈치를 들었다놨다 했던 것처럼 정말 많은 분들이 전시 설명을 경청하고 계신 것. 처음엔 누군지도 모르고 듣다 다시 보니,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전시 때 전시 설명을 들었던 정우철 도슨트 분이셨다. 해설이 끝나고 한 시간동안 전시장을 돌며 감상하고 나니, 다시 마지막 4시 타임이 시작되어서 처음부터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이번 전시는 스웨덴 국민화가라 불리는 칼 라르손에서부터 한나 파울리, 빌헬름 함메르쇠이, 앤더스 소른, 칼 빌헬름손, 휴고 삼손, 외젠 얀손 등의 작가들 작품이 걸려 있는데, 잘 알려진 작가도 있지만, 조금은 낯선 이름의 작가들도 많았다.
빌헬름 함메르쇠이는 뒷모습을 그리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빛 : 영국테이트 미술관 전'에서는 특정 순간에 '고정된 빛'에 주목한 작가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날 이 작가를 소개하면서 도슨트 분이 말씀하시길, 인간이 그림을 그리게 된 유래가 연인이 헤어질 때 돌아서는 그림자를 따라 그리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또한 뒷모습은 많은 것을 이야기 한다며, 마주 보고 헤어진 연인은 돌아서서 금세 잊지만 헤어질 때 뒷모습을 보았다면 잊기 힘들어 한다고... (문득 샤이니의 투명우산이라는 곡이 떠오른다. '마지막 인사를 대신해 내민 투명우산에 잊지못할 너의 뒷모습도 가릴 수가 없는 걸'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엘리프.
그림은 정신이 보는 것을 눈의 즐거움을 위해 재현하는 것이다.
람.
눈이 세상에서 보는 것은 정신이 허락하는 만큼 그림에 반영된다.
밈.
따라서 아름다움이란 정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눈을 통해 세상에서 다시 발견하는 것이다.
<내 이름은 빨강 2> 오르한 파묵
한때 왕립 아카데미는 여성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으려했고, 여성은 신성한 신화를 그려서도 안 되었다. 그런 폐쇄적인 인식과 환경에서 미술을 해온 여성 화가들은 결혼 후 커리어를 포기하거나 집안에서 그림을 그려야했지만, 한나 파울리는 야외에 나가 태양빛에 따라 달라지는 인상주의 화풍의 그림을 그렸다. 안나 보베르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극지 탐험가이자 북극 화가로 불리며 노르웨이 북부 지역의 다양한 풍경을 직접 가서 보고 그리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19세기 북유럽 회화의 특징이 인상주의 화풍과 외부로 나간 것만으로 혁신이라 말하지 않는다. 이제 눈으로 보고 있는 풍경이 아닌, 내면에서 느끼는 심상을 그린 '상징주의' 역시 또다른 시도이자 도전이 되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풍경화이지만, 실제와 다른 이유는 마음의 날씨를 표현했기 때문. 내 마음의 풍경화인 셈이다.
바로 앞에 풍요로운 대지가 펼쳐져 있었지만
나는 가장 작고 가장 허름한 것만을 주시했다.
지극한 사랑의 몸짓으로 하늘이 위로 솟아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나는 하나의 내면이 되었으며, 그렇게 내면을 산책했다.
<산책자> 로베르트 발저 p349
칼 라르손은 스웨덴의 국민화가이다. 그는 아내 카린 베르구와 함께 스웨덴의 순드본에 있는 별장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고 그들의 집은 곧 거주하는 곳이자 작업장이자 가족의 놀이터가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 '릴라 히트나스'라는 이름을 붙여 꿈의 보금자리로 재탄생시켰다. (...)
라르손 부부는 바로크, 스웨디시 구스타비안 양식, 스웨덴 달라르나 민속 예술, 미술공예운동, 세기말 감성, 독일 및 프랑스 아르누보 그리고 자포니즘에서 가져온 요소를 혼합하여 매우 독보적인 스타일을 창조했다. 라르손 부부의 스타일은 이케아에 특히 잘 녹아 있는데, 이케아의 창립자 잉그바르 캄프라드는 두 사람의 삶의 늘 영감을 받고 있다고 했다.
스웨덴 국립 미술관 컬렉션
스웨덴 화가 이야기를 하면서 칼 라르손을 빼놓을 수 없다. 스웨덴 국민화가라 칭하는 그는 스웨덴 국민 가구라 할만한 이케아 창립에 영감을 준 인물이기도 하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과 달리 결혼 후 행복한 가정 생활로 행복을 그리는 화가가 된 그의 수채화 작품들이 바다를 건너 따뜻한 정서를 나눈다.
A Beautiful Life_Christopher (넷플릭스 뷰티풀 라이프 OST)
별도의 설명없이 그림만 본다면 예쁜 풍경화나 요즘은 흔히 접하는 인상주의 작품들이지만, 조금이라도 그 배경과 내막을 이해하고 본다면 훨씬 풍부한 감상이 될 수 있는 전시다. 마이아트 뮤지엄 자체가 큰 규모는 아니어서 작품의 수가 아주 많지는 않기에 작품 하나 하나 의미있게 볼 수 있는 전시라 여겨진다. 도슨트 해설 시간에 한 곳에 몰려 있어 그렇지, 적절한 간격으로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