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rene Oct 27. 2021

인지 왜곡

힘든 일이 있어도 부모님이 걱정할까 봐 말 안 하는 자식들이 많다던데 나는 부모가 뻥튀기 기계처럼 내 불안을 풀리기 때문에 하고 싶지가 않. '괜찮아, 잘될 거야.'라는 위로가 받고 싶어 얘기라도 할라치면, 을 뱉는 동시에 괜히 말했다후회 파고든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을 두고 "그러니까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지."라고 질책하며 자책하도록 하고, 과거에 대한 고문이 끝나면 큰일 났다며 이번 일로 앞으로 내가 더 안 좋아질 것이라고 굳이 반복해서 상기시키며 계속해서 두려움에 머물 수밖에 없도록 가둬버린다. 특히 본인의 불안이 만든 추측을 나의 생각인 양 뒤집어씌워 억울하고 화가 날 때가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엄마 민영이 있잖아. 코로나 시국에도 어떻게 돈을 모았는지 이번에 집 샀데. 겠지."라고 말했을 뿐인데 "너,  주식하려고 하지? 너 벌써 한 거 아니야? 어쩌려고 그래! 그런 거 하면 큰일 난다고 하지 말랬잖아!" 하는 식이다. 주식의 '주'자를 꺼내기는커녕 내 평생 머릿속에 있지도 않던 단어인데 이미 주식한 사, 주식으로 크게 망하기 직전인 사람이 되어 억울함이라는 가중처벌 가해지니 부모와 무슨 대화 하고 싶겠나. 원래 빈번하게 있던 일이지만 그날 유독 그런 엄마의 모습이 불편해 일기에 썼었는데.. 그렇게 한번 적어서일까. 오늘 나에게서 엄마와 같은 모습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남편이 A가 싫다고 말하고 있는데 나는 '아 그래서 A가 싫으니 B를 하겠다는 거구나.'라고 자동적으로 생각이 흘러가고 B를 할 것 같은 걱정에 상기된 말투로 "B 하면 안 돼!  해 진짜. 거 뉴스에서 봤더니~" 하고 이야기하는 순간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다는 생각. 자기 부 소음이 사라지고 마치 남의 일을 보는 것처럼 상황이 느린 속도로 재생되 영혼이 나를 지켜보듯 떠들고 있는 나의 모습관찰할 수 있었다. 엄마처럼 하지 않겠다던 다짐은 가루가 된 건지 기가 막히고 '와. 하다 하다 이런 것까지 닮았구나.'라는 생각에 서글퍼지는데 남편의 말이 낱말로 쪼개져 또박또박 들려왔다.

“내언제 B어? A가 싫다고 했지. B 할 거라는 건 당. 신. 혼. 자. 만. 의. 생. 각. 이야!” 

그토록 부모와 다르게 살고자 했건만 부터 획득한 유산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내가 또 이렇게 생사람 잡을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나도 모르게 그런다면 오늘처럼 바로 알아차렸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희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